블로그 이미지
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박하차 한잔3-1 --- 부모 내공 키우기

2012. 7. 31. 17:51 | Posted by 허니즈맘

우리 삼형제는 각양 개성이 넘치는 민감한 아이들이죠.

정말 대안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둘째는 관계중심적인 아이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상처를 잘 받는 아이고

셋째는 아마도 좌충우돌 하다 보니 사회성이 최고로 발달한 편인데

모두 감성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틀에서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요.


둘째가 22개월 때 첨으로 떼어 놓고 남편과 홈스쿨링 세미나를 갔어요.

그 땐 모든 게 낙관적이어서 ‘오우~ 애가 셋은 되어야겠는데...’

여유 부리고 그때까진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사에 따라 스폰지효과 최고였지요.


그 때 즈음 셋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몸의 힘겨움과 저의 물리적 여건에 박약한 본연의 모습이 원색적으로 드러나면서

저의 자녀교육 성공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거 같아요.


홈스쿨링은 저의 성품이나 실력 그리고 환경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결론을 보고

그 후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지나보니 홈스쿨링 하시는 어머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성향의 차이로 적성에 좀 더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에 늘 노출되어 있을 테니

그 수고와 인내가 보통이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학습효과를 도와주면 성취감을 통해서 긍정적 성장을 맛보리라      

맹신하면서 아이의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요구를 버거워 하며

내가 판단한 최선의 계획에 대해 강요한 거 참 미안합니다.

저의 방법적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아이를 따뜻한 가슴으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기다려주기 보다

몸이 힘드니까 실은 내가 편하려고 시간을 다투며 효율을 강조했던 거 잘못했습니다.

내 아이의 상황과 의지를 보고 결정해야 하는 사랑의 수고가  마땅한데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해 지금 고생이 많습니다.    


첫째 아이가 워낙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고 이해력이 뛰어난 편이라

제가 적정한 개입으로 좀만 관리해 주면

그야말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습관을 익히고

줏대 있는 아이로 성장할 거라 기대했었습니다.


더구나 아이가 3학년까지는 담샘의 지지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대차고 은근히 기대를 싣기도 했고

첫 아이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옆에서 추임만 넣어 준다고 했는데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없으니까 도전에 대해 흥미를 잃더군요.


과정의 가치에 대해 강조해 왔고 때때로 첫째가 그것을 동생들에게 전수하지만

성과중심의 주류에 아이가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스트레스는 제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른다 싶어요.


어쨌든 전 큰애를 아이답게 대우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남편에게 여러 번 지적 받았지요

저희 남편이 저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군자인데 ㅜㅜ ;;

오죽했으면 참다가 말했을까 저도 참 속상했지요.   

 

공부는 남들처럼 학원 뺑뺑이 할 생각은 전혀 없고 재정적 여건도 안 되고

동생들이 유치원에 있는 동안 정해진 시간을 활용하면 될 거라 확신했었지요.

제가 아는 집들 엄마표 가정학습에 비하면 우리 집 분량은 정말 먹고 노는 건데 ^^;;

아이가 뭔가 원하는 보상이 걸리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안 되고(그건 해롭다는 결론;;)

한번 어긋나면 아주 당돌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숙제며 주변정리며 예의바른 소통 배려 -- 형제가 많으니 티가 많이 나죠-- 에 적신호가

...당연 잔소리 줄지어 하고 감정 충돌하고 악순환이 뭔지 보여주는 꼴이지요.


요즘은 1강 들은 후, 제가 화가 나는 상황에 -잔소리 폭발직전-

아예 자리를 피하고 나름 타임아웃을 해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건 개선되고 있어요.


한 동안은 학교숙제를 스스로 하라고 하고

(예전엔 꼭 개입했죠 “으아~~ 지울 건 좀 지우고 해라”

책가방 제대로 안 싸도 안 도와주고(책가방 쌌다는 거짓말 넘어가 버리고) 

방과후 컴 아이티큐 일주일에 2번, 농구하러 2번 하는 것 말고는

책보고 동네 동생들이랑 야구하고 그냥저냥 산책하고 ...

근데 잘 놀았다는 만족감은 없는 것 같아요

아이가 욕구불만을 인터넷게임으로 푸니까

중독 직전의 어려움도 겪었고

아이가 절제의 가치를 인정하니 노력은 하는데 (1주에 두 번 1시간씩)

어느 순간 무너져서 몰래 pc방도 가고 

여러 번의 사건으로 아이를 신뢰하지 못하는 제가 참 치사하고 싫었지요.

근데 제 가슴을 쳐야 하는데

아이에게 냉랭하게 대하는(딴에는 감정조절하느라) 모습으로 연명하던 중이었지요


첫째 아이는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면 그야말로 필 꽂히면 공부하는 스타일이고

아니면 여유롭게 “날 그냥 두세요”하며 자기가 매우 시달린다고 감정표현 확~해대니

사실 딱 제가 그랬지요. ㅜㅜ

그래도 우리 엄만 큰 테두리 안에서 그저 믿고 기다리시는 분이었고 전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애엄마가 되어 그 편했던 시절의 부작용에 힘들다 보니

(자기중심적인, 나약한, 의존적, 자유롭다 보니 무책임한, 편협한, 게으른 )

저처럼 되지 말라고 애를 닦달한 게 적지 않은가 가 봅니다. 

우리 첫째에게 필요한 것

좋은 습관 가지라고 들들 볶는 게 아니고

못 다한 어리광을 받아 주는 것인데 아직 어렵습니다.


저는 옆집 아줌마의 수다에 흔들리진 않고 살아 온 거 같습니다.

제겐 멘토 역할을 해 주는 선배가 있고

부족한 제게 겸손히 경청해 주는 동생들이 있기에

나름 교육에 있어서 안정적인 행보로 여기 왔네요.

자만하거나 스스로 모르는 척 대충 해 온 거,

겁나서 외면해 온 곪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시기가 되길 바라며

자녀교육에 있어 긍정적인 전환점을 기대하고 있어요.


당당하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있어서

사실 맥 빠지기도 하지만

제가 오해나 편견으로 잔뜩 힘을 주고 있던 거라면 그 힘은 그냥 빠져도 된다고

계속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네요.


예전부터 생각만 하던 내공의 요소를 바꾸고 실천해야 한다는 급박감에 긴장이 됩니다.

첫째, 공감대를 갖기 위해 우리 가족만의 전통이 필요하다.(명절, 생일, 기념일, 축하등)

둘째, 소통을 위해 가족회의가 필요하다(존중과 배려를 통한 발전)

셋째, 공동체적 대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제가 나이가 들수록 교육의 달인이 되기보다

실수와 무기력의 쳇바퀴에서 허덕거리는 것이 매우 부끄럽지만

어느덧 승승장구 하는 것보다 인간의 본질상 이것이 당연한 절벽직면이니 

더 진실에 가깝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습니다.


더욱 겸손하게 건강관리하며(^^;; 양질의 관계의 초석)

더욱 부지런 떨며 열심히 사랑하고

기다리는 수고를 잘 감내하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박하차 한잔4 - 책읽기 놀이

2012. 7. 31. 17:47 | Posted by 허니즈맘

                                                           


책은 내게 좋은 친구가 되겠답니다.

우리집 삼형제 삼헌이의 독서습관을 보니 역시 개성대로 가지가지이고 나름 책이랑 잘 사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로서 지켜본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삼헌이의 취향

 

첫째아들 :

"귀헌아요즘 넌 어떤 쟝르의 책이 재밌니?" "랜덤"

"뭐라고?(정말 뜻을 몰라 물어봄)" -아들은 자기보다 엄마가 영어를 잘 할거라고 확신함^^;

"요즘 보아서는 그냥 닥치는 대로 읽는 거 같던데..." "그니까 무작위라고요.." -.-;;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한글을 언제 떼었는지 잘 모릅니다^^:) 책을 즐기는 수준이 상당해서 때때로 기특하고 든든히 여겼습니다워낙 책읽는 속도가 느리고 편독을 하는 엄마보다 책읽는 습관이 더 나은 듯 했습니다.

초등 2학년까지는 과학분야에 넘 꽂혀서 흥미를 느끼는 과학분야에 연관된 소재로 다양한 영역의 책을 일부러 찾아 들이밀고 다행히 아들은 별 거부감 없이 척척척 읽어댔습니다읽는 속도가 넘 빨라서 제대로 읽는 건지 의심스러웠는데 지켜 보니 빨리 읽은 후 반복해서 여러 번 읽는 스타일이라 웬만하면 새로운 지식을 소화하고 설명까지 하길래 더 이상 걱정은 안했습니다.

다만다양한 책을 읽는 것에 비해 정서적 반응이 무덤덤한 것이 머리가 지끈할 지경이라 끝내는 제가 독서지도 샘으로 나서서 큰애 친구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이끌게 되었습니다지난 해부터는 제 자식 가르치기가 넘 어렵다는 걸 통감하며 삼형제의 독서지도는 매우 소극모드로(사실은 방치)전환한 상태입니다. ^^;

 

둘째아들:

속독에 있어 두번째라면 서러울 겁니다ㅎㅎ정말 페이지를 와락 빨리 넘기는데 읽는다기 보다 훑어내리는 것 같습니다눈에 띄는 몇몇 낱말들로 연상되는 내용을 그림과 그림 사이에 이어 붙이며 상상을 하고 다 읽었다면서 책을 덮습니다ㅜㅜ

때때로 얼추 내용이 맞아 떨어지기도 하고 엉뚱한 다른 재미난 이야기를 만든 것이 들통나기도(?)하고 문학류일 경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인문서적 쪽 내용은 당연히 이해를 못하고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아주 내용이 흥미로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충 읽은 척 하기 일쑤고 과학과 상식 쪽은 그런대로 형처럼 반복해서 읽는데 접하는 내용이 아주 좁아서 호기심이 깊어지거나 아는 범위가 넓어지지 않아 교과 내용도 생경해 하기도 합니다아시다시피 초등학교 3학년 이상 되면 과학과 사회는 기본 독서량이 받쳐 줘야 이해하고 익힐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저학년 때보다 학습이 어렵습니다.

그리고절대적으로 확연히 좋아하는 책은 "만화책"...

만화책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다만살상무기로 싸우는 게임 캐릭터나 귀신들선정적인 캐릭터들의 학습을 빙자한 활개가 영 맘에 안들고 속이 뻔한 출판사의 상술도 기분 나빠서 애들이 그것에 길들여질까 불사르고 싶은 책도 있습니다^^;;

작품성 있고 내용이 탄탄한 만화도 있고 제법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만화책들이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하지만동전의 양면... "알기 쉽고 간결"한 것은 책이 줄 수 있는 큰 유익과 매우 대립되는 개념이다 보니 좀 안타깝습니다그래도선별된 만화책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재미를 보는 아들의 즐거움은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아들:

역시 책을 후딱 잘 읽습니다형아들 중간 모드로 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 아직 편독이 심한 때인데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책을 아주 좋아하고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습니다실제로 자신이 흥미를 갖는 것에서 책을 선택하고 앎이 깊어지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그리고이야기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아주 잘 되어서 다양한 문학류를 읽히면 좋겠는데 뛰어 놀 시간이 충분히 확보 된 뒤에 책을 읽기 때문에 일단 책 읽기보다 바깥에서 노는 걸 우선시하고 읽고 싶은 만큼만 읽도록 둡니다그래도형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놀다가도 또는 자기 직전까지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책을 읽기 때문에 거기에 묻어가는 분위기도 있어서 따로 읽으라는 말은 안 합니다.

 

삼헌이의 독서 공통점:                             차이점:

1. 따로 시간 없이 수시로 책읽기        1. 귀헌 다양하게 읽는다이해수준이 높다.

2. 빠른 속도로 여러 번 읽기            2. 승헌 상상력과 관찰자로서 공감능력이 높다.

3. 독서장 쓰기 싫어함.                  3. 정헌 주인공과 동일시 감정이입이 깊다.

 

 

 

*요즘 학교에서의 독서지도

 

독서가 경쟁입니다저학년들은 학교생활 초입이기 때문에 더욱 가열차게 독서의 목적이 왜곡되는 지경입니다독서를 목적으로 삼는 이 시대의 독서환경은 분명 문제입니다책읽기는 가장 내밀한 행위이고절대 수치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어떤 학교는 독서통장발급해서 점수화하고제때 반납 안 하면 5점씩 깎고 만화책은 안되고 집에서 읽은 책 안되고..권장/필독 도서가 강화되어서 그것을 억지로 읽어야 하는 괴로움도 따르고... 어떤 학교는 독서장에 기록을 남겨야만 독서량으로 인정해 주고 같은 책을 다양하게 여러 편으로 독서장에 쓰면 1권으로만 인정해서 결과적으로 어떤 아이는 한 분기에 보이기 위한 몇 백편의 독서장을 쓰고 어떤 아이는 고작 몇 십권 쓰고...분기별로 몇 십편 이상이면 성과급으로 상장을 주고...

2학년 까지는 아이들이 학습이나 여러 가지 발달에 차이가 심하고 학교 적응만으로 버거운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무엇보다 평생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한 첫 경험들이 많은 시기인데 현재 초등학교의 독서지도는 집단 지도라는 한계도 있지만 강제성의 부정적인 영향이 만만치 않아서 세 아이를 겪으며 아쉬움이 많습니다끝내는 학교과제에 있어서 엄마의 재량이 요구되고 엄마의 교육철학과 내 아이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서서 아이가 공적인 입장을 이해하되 자신도 존중받도록 지켜 주는 엄마의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선택하고 즐겁게 읽은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고괜히 친구들이랑 독서를 경쟁하지 말라고부정적인 측면에 같이 쓸려가지 않도록 알려 줘야 합니다.

 

 

*독서의 힘나는 의미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에 아주 열심이신 한 아버지는 사람이 평생동안 함께 할 친구가 ''과 '악기'라고 생각해서 두 가지를 경험하도록 애쓰신다고 합니다그리고 무엇인가 궁금할 때문제가 발생했을 때, ''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독서를 강조하십니다.

또 한분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자주 찾으시는 독서광 어머니는 학교에서의 독서경쟁이 약간 지나친 점도 있을지 모르나 좋은 습관들이기의 방법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공교육의 방법이 수용가능하다고 하십니다경쟁을 위한 경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아이를 도와주면 된다 하십니다. "독서는 즐거움과 배움간접경험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중요합니다단정하고 단아한 생활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식사수면언어몸가짐 등을 바르게 교육시키는 게 중요한 것처럼 독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생각과 세상보기를 다듬는 훈련이지요."

 

*독서의 다양한 모습 인정

나들목도서관을 개관하면서 노혜영관장님이 우리 팀원들에게 선물하신 책, <소설처럼>에서는 속시원한 파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목차만 옮겨볼까요?

무엇을 어떻게 읽든 ......1.책을 읽지 않을 권리 2.건너 뛰며 읽을 권리 3.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책을 다시 읽을 권리 5.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7.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8.소리내서 읽을 권리 9.읽고 나서 아무말도 하지 않을 권리

 

 

*책읽어주기내가 못하는 것

책 읽어주기 포기한지 오래 되었습니다저의 자녀사랑이 모자람의 한 단면인 듯 하여 책을 못 읽어주는 것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 무거운 자책에서 자유하려고 무덤덤하게 애들이 스스로 읽으니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곤 합니다.

셋째가 하도 원해서 1년에 몇번 정도 읽어 주는데 그렇게 좋아합니다그런데그 좋아하는 것을 힘 달려서 또는 애들 잠들 무렵이면 대부분 뚜껑 열릴 일이 생기는 시간이라 기분좋게 재우는 것도 힘겹습니다.

애들 아빠가 주제가 좀 진부한 옛날 개그나 자기 옛날 경험담을 같이 누워서 들려주면 다들  웃느라 행복만발입니다그것도 지난 해부터는 넘 늦게 귀가하시니 거의 불가한데...웃으면서 평화롭게 준비하는 잠자리의 서막은 책 읽어주기가 딱입니다.

아시다시피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어릴 때는 글자를 못 읽어서 시작되었지만 책 읽어주기는 ...가족간 행복 만들기에 참 좋은 도구이지요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열어주는 길닦기이기도 하고요.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자녀의 몸과 맘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라면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음성(노력)은 자녀의 정서와 정신을 풍성하고 강하게 해주는 특별한 정성이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책을 맘껏 읽고 싶다고 합니다그에 대해 어머님들은 학원 다니느라 숙제하고 나면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쉴 시간이 생기면 꼼짝 않고 책만 보는 것도 안타까워 다른 활동도 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애들을 밖으로 보내기도 하는데,  숙제를 집중해서 하면 시간이 날 텐데 애가 느려서 숙제만 탓한다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저도 애가 아주 엽기적 자세로 어두운 곳에서 책 볼 때랑 숙제조차 안 하고 책에 빠져 있는 걸 보면 애를 다그칩니다.

 

그러먼서도, 어른들은 책 읽는 걸 왜 그리 권하고애들은 왜 책읽기에 빠지고또는 왜 부담스러워 할까요? 독서의 의미 그 유희에 대해서 우리가 바르게 인식해야 독서는 우리 생활 속에 친밀한 놀이가 되고 유익한 열매도 될 것입니다.

-----------------------

 

성경을 읽는 것과 묵상에 대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성찰과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깊어지는 관계의 성숙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요함...

그리고변화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사랑의 역사를 책으로 적게 하시고 우리가 읽게 하신 그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우리의 독서능력과 독서의 유익을 생각합니다.

세상은 그것조차 상품화하고 경쟁과 성공주의에 엮어 매고 우리 인간 고유의 유희를 빼앗으려고 합니다독서를 통해 우리가 영적통찰력을 개발하고 성경적인 가치를 삶으로 드러내는데 독서는 탁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독서를 즐길줄 알기를 바라는 부모로서 독서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성경적 가치 개념을 바로하고 안내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부담을 많이 느낍니다그 노력 중에 수많은 시행착오로 괴로움도 심하지만 영적인 유산을 제대로 물려 주기 위한 연단으로 내 삶을 인정하면 소망이 보입니다.

 

독서를 좋아하시나요?

어릴 때 독서의 추억은 어떤 그림인가요?

책과 사귀기를 시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면 각사람에게 주어진 고유한 누림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책은 우리 평생에 참 좋은 친구중 하나가 될 테니까요^^            

   

 

 


 


박하차 한잔3 -강건한 사람 되기

2012. 7. 31. 17:41 | Posted by 허니즈맘

투표하셨지요? 이 질문은 넘 늦은 인사가 되겠군요^^

지난 6월 선거를 맞이하며 저는 평생 처음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유권자로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기다리는 공보물이 넘 늦으니까 길가에 벽보 붙이자마자 우산 들고 서서 얼굴과 이름  익히기부터 했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분별력을 갖고 책임있는 투표와 지지에 열심을 갖고 하나님 앞에 겸허함을 갖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후보자 토론회도 열심히 들으며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블러깅하고 또 퍼 나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후보를 잘 모른다 하면 입 아프게 설명도 해 주고 ^^; 선거 전날에는 꼭 투표하자고 지인들에게 문자도 마구 돌렸습니다.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일방적인 강요도 권유도 안 했습니다. 물론,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사적인 의견이 담긴 후보 소개를 하기도 했고요...^^;

제가 이렇게 나랏일에 초관심을 드러내는 국민이 될지 저는 예전엔 몰랐습니다. 나라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작은 후원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렇게 열심을 갖게 된 이유는 지난 선거의 충격도 있었고(저조한 투표율) 무엇보다 학교교육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저의 유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민감해진 것입니다.   

저는 부모가 되기 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육과 자녀양육에는 실제적 차이가 많아서 가치관이나 자존감에 적잖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공교육이 무엇인지 알기 전부터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에 더 매력을 느꼈지만 세 영역을 깊이 알기도 전에 물리적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에 순응했고 공교육을 택하는 학부모가 되는 보편적인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 5월호 도시락 <박하차 한잔>에 ‘학부모로 살아남기’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쓰고 연이어 ‘부모교육 특강’을 소제목으로 두 개의 강의(등대지기학교와 기독학부모교육)를 소개하고 부모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학부모라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그냥 앉아서 고객처럼 요구를 하고 당연히 누릴 것들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사회라서 교육조차 시장이 되어 경쟁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고 소비할 것이 풍부한 듯 하지만 여차하면 학부모들은 정신없이 휘둘리고 돈이나 정보없이는 소외층이 되고 주객전도의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학부모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학부모들의 교육철학(가치관)이 바로 서고 내 자녀를 지킬 뿐 아니라 엄마도 행복하고 더 나아가 이 땅에 바른 교육을 세워나갈 수 있는 희망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독학부모교육에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기독+학부모>의 균형이 잘 잡힌, 신앙과 공교육에 대한 가치개념이 바로 서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임원엄마의 학교현장  


제가 이번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학교에서 임원엄마로서 나름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고군분투한 경험입니다. 

학교에서의 기금마련은 어떤 면에서는 일,이십년 전보다는 아니어도 학교발전을 위해 또는 꼭 필요한 영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학부모의 학교 자원봉사는 꼭 필요하고 더욱 발전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찬조금을 비롯한 근절되지 않는 금전및 물량공세문제와 학부모들의 교내 활약의 부정인 모습들은 뿌리가 깊고 마치 이제는 없어도 되는 대들보가 자리를 내 놓지 않으려는 형세로 존재의 이유를 연명해 가고 있습니다.

학교의 공적 표명이 어떠하든 학부모들의 물량공세의 개입이 학교행사에 버젓한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 임원 엄마의 기부에 대해 자의든 타의든 부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소수 임원엄마들의 물량공세와 대접 등 본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임원의 타이틀로써 위해가 될 문화를 만드는 것들과 순수한 자원하는 마음의 미덕이 아니라 원색적인 생색내기 등의 악영향에 대해서 임원 엄마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지난 5월에는 학교 행사가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임원엄마를 비롯하여 엄마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큰 행사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회원인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벌어진 학교풍경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     

3월 초에 치닫던 긴장과 투지^^;;는 나름 안정되었고 3.4월 좀 바쁘게 그리고 머릿속보다 현장에서는 그리 치열하지 않게 큰 갈등없이 지냈습니다.

지난주에는 운동회며 연기되었던 바자회가 연달아 있는 바람에 학교에 자주 가느라 공사다망했습니다. 그 두 건과 함께 스승의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4월 내내(계속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랑 학급지원 입장이 다른 임원 엄마와 긴장모드라서 골치가 좀 아팠습니다. 아마 그 어머니는 저보다 더 골치 아프고 속 터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생각하며 저도 참았습니다. ㅜㅜ:;;

 

예전에 쓴 대로 우리 여회장맘은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었고 초등학교에 들어선지 오래니 고로 학급임원 엄마로서 나름의 노하우가 단단한 고수입니다. 제가 그 동안 모금이나 운영비 문제를 더 다루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말을 풀다보면 당연 그 분의 인격에 대한 비방과 저의 소소한 분노가 공공의 것처럼 둔갑되어 쏟아질까 조심스러워 자중하는 중이었습니다.

 

3월 초, 우리 학급운영비 제안을 무산시킬 수 없어 먼저 지출내역을 상의하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반 확 깎는 조치를 했었습니다. 그 분도 나름 양보하여 “분명히 모자랄 텐데 부족하면 나중에 모금을 더 추가하죠?” 뒤끝을 남기고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중순되니 대지출이 예상되는 어린이날 간식과 바자회 건과 스승의날...그리고 말로 옮기기 거시기한 두 건을 두고 그 분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니 부회장 엄마들 다 모여 더 모금을 해야겠다고 제가 단지 남자회장 엄마라는 이유로 결정권을 제게 넘겼습니다

(한번도 그걸 주장한 적이 없지만 그것도 관행이라 하네요, 배려였을까요? 이 경우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기록해 놓은 걸 보니 이미 우리가 하지 않기로 한 건을 제안한 거여서 어찌 거절하는 게 맘이 덜 상할까 고민하던 차에 학교가 저를 많이 도왔습니다.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 전에 학교 공문이 왔습니다.

<불법찬조금 모금하지마라 / 어린이날 선물 넣지 마라 / 운동회 기념품 맞추지 말아라/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 간식 주지 말아라/... 스승의 날 선물과 꽃, 대접 등 하지마라..>

ㅎㅎㅎ 그런 공문을 들이밀며 “하지 말아야 한다” 하니 “그런 게 왔어요? 우리 애가 안 보여 줘서 몰랐네요” 하시는데 사실 저는 5년째 그걸 읽었고 대부분의 지원책 엄마들은 그걸 무시했고 학교는 복사비 낭비했던 겁니다. 저랑 그런 대화가 오가는데도 그 분의 절친은 옆에서 기념품 맞추러 동대문 같이 가자고 합니다 --;; 제가 그런 한 가운데 있자니 이제껏 나랑 놀던 엄마들은 다 어디가셨나... 패싸움 하고 싶은(물론 심리전^^;) 유치한 심정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전 생전 안 해 본 언행 많이 했을 것입니다;;

 

어린이날은 제가 처음부터 주장한 얼음물 가져가서 먹이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초등학교나 1학년 엄마들이 극성인데 한 학부모가 교육청에 신고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혀 선물 사놓고 못 주고 회장 엄마들은 속병 나고... 1학년 어떤 반은 그 선물을 열흘이 지나서야 기어코 나눠 주었더군요. 한 꾸러미가 족히 만원은 되어 보이던데....

낼 ‘스승의 날’ 건은 제가 어이없이 좀 양보했던 건인데 그제 공문이나 어제 알림장을 통해서 학교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했는데... 기다리다 지친 여회장맘께서 아침에 전화하셨길래 공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낼 가신답니다.

“그럼 **엄마는 낼 가는 것에 대해 뭐라 마세요. 다른 엄마들이랑 갈거니까요”

“네~ 제가 뭐라 하겠어요. 개인적으로 하시는 거죠? 공적으론 안 합니다.”

아이구~~ 이게 뭔 시베리아에서 조깅하는 시추에이션입니까!!!

제가 사람 마주하고 이런 냉랭한 대화를 하는 것이 영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거든요 ㅜㅜ

 

우리 학급 임원엄마들의 성향은--

여회장맘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뭐든지 다 할 거에요” 극단적 물량공세 생색내기.

남부회장맘은 “미안하니까 난 재정은 말하시면 다 도우리라” 하시는 아리까리 직장맘

여부회장맘은 “제발 강하게 밀어 붙이셔서 뿌리 뽑아 주세요. 왜 이리 괴롭히나요? 직장 다니는 엄마한테 미안한 맘 주는 거 자체가 틀렸어요. 불필요한 지출이 무슨 덕이 되나요? 내 이래서 임원 나가지 말랬는데...” 왕 부담되는 날카로운 개인주의 직장맘.

이런 가운데에서 조율하는 게 제 일이었는데 여회장맘과는 다들 상당히 적대적이고 제가 뭐라고 학교일 달인이신 여회장맘께 의의를 제기하면

“그럼 **엄마가 다 알아서 하세요. 한번 해보시면 아실 거에요”

존댓말 겨우 차리고 만화책에서나 볼 듯한 상황설정에 대화 뉘앙스 아주 불쾌해지기 쉽죠. 그래도 전화가 낫더군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엄마인데 나이대접 받을 생각 전혀 없었지만 때때로 오기가 나는 상황에서는 나이를 내세우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소소한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구~~그래도 그 분은 저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미워도 그분의 두터운 인간관계로 절친이신 같은 반 어머니, 두 분이 학급 일을 도우셔서 행사들을 세 건이나 무사히 넘겼습니다. 착하신 의리파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전 정말 쌩고생이 뭔지 첨으로 체험했을 겁니다.

전교어린이회 모금 건은 저의 제안으로 모두 놀라서 (물론 회장엄마랑은 좀 설전하고) 모금 안하기로 했는데 제 지인들의 말로는 아마 저만 빼고 자기들끼리 모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네요. 제 (모금)분량을 다른 사람들이 더 지고 갈 수밖에 없다면 좀 미안해지기도 하는데...이 판국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고 조언들을 하더군요.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교장 선생님과 교무주임 선생님의 학부모들에 대한 일관된 처사와 상당수의 담임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사양노력에 감사드립니다.(일부러 장문의 편지를 쓰셔서 왜 선물과 꽃조차 사양하시는지 정중히 마음을 전하십니다. 알림장에라도...) 웬만한 선생님들은 엄마들이 들이밀면 못 이기시고 그냥 받으십니다. 그러고는 뭘 바라시는 선생님 대우를 받으시고 엄마들 정보족보에 올라가십니다. 학교의 물량공세 엄마들 행보의 악순환은 대개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큰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왜 이런(같은 내용) 공문이 자꾸 나와요?” / “중요한 지침인데 잘 따르지 않으니까 때마다 강조하시는 거지.” / “그냥 안 하면 되는데 그걸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아이들은 학급에서 엄마들이 주면 좋은 게 좋은 거라 받고 없으면 말고 별 생각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공적인 지침과 일반적 선택은 달라도 되는구나’ 그리고 ‘왜 저 선생님(엄마)은 규칙을 지키지 않지?’ 존경심에 위험요소가 생기겠지요.

 

저희 학교는 강북에 넉넉하지 않은 동네에 있습니다. 새 교장선생님이 3년 전에 오셔서 각고의 헌신으로 시와 구에서 지원을 받아오셔서 대대적인 물량적 개선을 이루셨습니다. 그 전의 교장선생님은 말하면 입 아픕니다. 분명 우리 학교는 아직 개인적 기부금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제 안목에서는 부족한 것이 큰 불편도 아니고 흠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맘이 절실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몇 학부모님들의 개탄할 작태와 객관적으로 호평 받을 수 없는 지원 방법들은 아주 많이 본질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들이 확실합니다. 3월에 교장선생님께 편지 쓰려던 내용도 그런 것이고 특별히 임원엄마들 부모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시고 공적인 통제를 일관성 있게 또는 강경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려던 겁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에게(다른 일로 교육청신고에 놀라신 직후) 넘 깊은 상처나 오해가 생길까 봐 제가 참고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저의 간절한 맘이 닿았는지 일관된 공문의 효과는 몇 년 지속되니 이제사 좀 더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엄마, 선생님이 학교엔 꽃도 편지도 가져 오지 말래”

둘째 아이가 말합니다.

“옛날 피아노선생님이랑 영어선생님, 유치원 원감선생님,

지금 태권도 사범님한테는 드려야지...”

 

참 답답합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중요한 걸 지키려다 그만큼 중요한 걸 잃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알림장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쓰신 분들도 계실 테고 사무친 뉘앙스(‘스승의 날’이 불편한 스승)도 느껴지고 샘들의 인격은 무시된 획일적 방안이 저도 참 씁쓸합니다. 금전이나 선물의 부담없이 창의적으로 ‘스승의 날’을 즐겁고 감사가 넘치는 날로 추억하게 하시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으십니다.


공문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는 엄마들은 자기의 소신을 믿겠지요??



-------------------------------



설명을 덧붙이자면 ‘스승의 날’에 엄마들은 학교에 가서(모든 엄마가 그러신 건 아닙니다)

무엇을 하시냐면요, 큰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 가지고 교실에 가서 촛불을 키고 스승의 은혜를 아이들과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 케이크를 나누어 먹거나 선생님께서 갖고 가시도록 합니다. 저도 그러할 뻔 했는데 공문에 따라 일관되게 해 버렸습니다. 선생님들의 입장은 잠시 흐뭇하실 수도 있고 옆 반에서 들리는 노래와 박수소리에 좀 섭섭하실 수도 있지요. 그런데, 수업시간에 가서 일관된 행사가 아닌데 위화감을 조장하고 더구나 학교의 공적 입장이 분명한데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어떤 개념인지... 선생님을 존경하는 진정성의 굳건한 표현일 뿐인지...이번에는 대부분의 학급이 공문에 따라 행동했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회장엄마의 결정에 따라 불만이어도 못이기는 척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긴장상태가 힘들어서 그냥 돈 모으자 할까 싶다가 그 어머니께서 절 열받게 하시길래 좀 오기가 나서 버티는 것도 있었습니다. 애초의 "긍휼"은 온데간데 없어져서 죄책감도 만만치 않고요. 제가 이리 애써도 저와 가치관이 다르신 그분들은 커녕 학교문화가 쉬이 변하지 않을 거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리고 뒷담화는 들려옵니다. 욕하다 장수하실라나? ^^;; 피해의식도 좀 늘고 스트레스는 확실히 있습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살아남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학교의 주류인 엄마들은 뒷담화를 풀든 어쩌든 학교에서 내 자식 위하야 살아남은 엄마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보기에 현실성 떨어지고 뭘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은 매우 귀찮은 한번 지나가는 일종의 객입니다. 저도 그런 부류인 셈이고 제가 지금 혼자인 거 같은 느낌인 이유는 전승되어 온 주류와 시비를 두고 맞섰던 엄마들은 이미 지치거나 귀찮아져서 공교육에 이를 갈며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분들은 유유히 남아 무지하게 수고하는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저도 앞으로 아이들이 임원이 안 된다면 저만치 서는 엄마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현재는 이것이 제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련해 보이는 입지를 지키고 있지만. 그저 앞으로는 봉사할 일 있으면 해야겠고 내역을 듣고 돈이 필요하다면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제가 임원엄마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원 엄마는 돈 쓰는 엄마라는 타이틀을 끊고 싶습니다. 제게 결정권이 있다니 말입니다 ^^:; 암튼 반에서 어려운 일을 당한 학생을 돕거나 여행비를 돕는다든가 그런 취지의 일을 제가 추진은 못하지만 모금이란 그럴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소수의 생존


이렇게 회장엄마를 처음하면서 그동안 우리 반 회장엄마들이 참으며 가려주고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잘 못 느꼈던 깨달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임원을 하려면 엄마의 지원이 꼭 필요해서 직장맘은 맘을 졸이고

가난하면 돈 없어 땡빚이라도 내어야지 생각하고 자기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고 위축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은 잘못된 상황.

 

“나도 직장에 휴가 내며 돕는다, 나도 없는 돈이지만, 애를 위해서 감수하는 거다.

 내 돈도 아깝다“ 라고 다른 학부모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부모들은 아주 위험.

 

제가 재정적으로 좀 여유로웠다면 아마 전 별 고민없이 돈을 내고 돈의 쓰임에 대해서는 좀 촉각을 세우되 직장맘과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둔감했을 겁니다. (빠듯함이 동력이 되기도 하니 열심히 공공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유익한 것 맞는 것 같습니다.)


학급임원은 재정적 물리적 엄마도우미를 확보하기 위한 담보가 아닙니다. 심한 표현인가요? 학생의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시면 임원 후보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거결과 그런 조건의 학생이 임원이 된다면 투표는 학급 친구들이 했지만 다른 엄마들은 그런 결과에 대해 난색을 표합니다. 초등학교 임원 선출이 말하자면 돈 쓰며 학교일 도울 임원엄마선출이라는 것입니다. 임원에 대한 인식이 해를 거듭하면 학생들도 분위기 파악하고 알아서 후보에 나가지도 않고 선생님의 권유로 억지로 나갔다가 선출이 되면 집에서 당황해 합니다.

고학년이 되면 임원의 반 정도는 엄마의 지지를 받고 나가는데 나머지 반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우리 아들도 사실 제가 말렸는데 애가 포기를 안 하길래 나중에 넘 미안해서 그럼 해 봐라 말을 바꾼 경우입니다.


학교에서 학급임원 학부모와 학부모의 재정적 물리적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별개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소용되는 모든 재정은 공립학교라면 더욱더 학부모와 무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지키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학기를 지내면서 제 아이가 임원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는 과정에 제몫을 하게 하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확신을 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등대지기학교를 경험하게 하셔서 눈을 들어 집 밖을 보게 하셨고, 제 아이로부터 더 많은 아이를 보게 하시고, 교육의 본질을 보며 학교와 사회에 건강한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갖게 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번 학기에 임원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 현장에 서지 않았을 것이고 제가 배운 것은 그저 고급 지식일 뿐 빛을 잃었을 것입니다.



* 관찰자에서 현장 참여자로


현재 공교육은 큰 아이 1학년 때에 비하면 외형적으로 변할 뿐 아니라 노력하는 양상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성실과 노력으로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 가운데 그 변화를 일구어 가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학교는 소소한 행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배려하는 수평적 관계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여전히 권위적이기만 하고 학생들에게 비인격적인 소통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고 학교의 공적인 입장이란 것이 매우 방어적이고 구태의연하기도 하지만 학부모의 바람과 요구의 수렴이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지난 몇 년간 학교는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직 저는 소위 퇴출감(?)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고 사교육도 운동뿐이고 성적 상위권을 고수하라고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으면서 유유자적(?ㅜㅜ)하는 품세로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일상에서 신랄하게 통감하지는 읺았습니다.

      

저는 학부모가 되고 여러 분의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주 훌륭하신 선생님도 만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게 넘치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과 두 분의 교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중심으로 많이 노력하시는 분들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전화를 하는 엄마입니다. 학교에서 아주 부담스러워 하는 엄마지요. 교육청에 전화하는 엄마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전에 학교에 문제제기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합니다.

한번은 공문관련해서 받는 학부모에게는 형식적일지라도 학교의 공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 주시는 노력에 대해 감사전화를 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은 참 불편한 상황이라 하시면서 노력을 인정해 주시니 참 격려가 된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두번째 전화는, 임원엄마들 내에서 소통이 안 되니 죄송하지만 학교 입장을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강경하게 표명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서로가 민망하고 불편한 내용의 전달이었지만 역시 또 한 분의 교감선생님은 매우 성의껏 답하시고 다시 조치를 할 것이라고 전화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저 보고 넘 순진하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큰 아이가 저학년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누구나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애쓰는 길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서 쓰레기통이 있든 없든 휴지를 집어 들고 두리번거리며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가던 길이 너무 바쁘면 때로는 지나칠 수밖에 있고 다른 것에 집중해서 못 보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무심히 또는 귀찮아서 길에 뭔가를 버리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제 행동은 하나마나한 것이었을까요?

        

제가 직접적으로 현장의 부담을 경험해 보니 오히려 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보화시대를 넘어 디지로그 시대를 잘 살아보자고 하는 시대에 과도기적 모습은 산재되어 있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창의력이 최고 능력이라는 기준도, 경쟁과 성공이 물질만으로 치닫는 것도, 더 좋은 것, 편안한 것, 자연스러운 것 ... 진리는 분명하지만 선택의 주체는 참 복잡하고 부담스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들목에는 학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학교에서 제가 부딪긴 경험과 제가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시거나 오해하셔서 맘이 불편하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데에는 학교가 혼자 노력해서는 공교육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나들목의 또다른 이름 “더불어 함께”를 생각해 보면 공공의 개념들이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공감하실 텐데 부디 나들목 학부모님들이 건강한 학교를 세워 나가는데 주어진 자기 몫을 은혜로 감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성장할 때 매우 유약하게 자란 사람인데 엄마로서도 터무니없이 무력하고 게으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좀더 강인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가 되었습니다. 제게 “치열하게”라는 말이 항상 부담스런 슬로건이었는데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핵심어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라면 참 외롭고 감정적으로 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진정한 도움과 위로와 격려가 되어 서로 세워주는 기쁨으로 약동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디도서3:1~8)


 *지난 5월 분까지 2개월 분을 한꺼번에 올린 듯 너무 긴 글이라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박하차 한 잔이 아닌 두 잔은 마실 시간을 내어주신,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박하차 한잔 5 : 라일락이라는 추수꾼

2010. 9. 10. 17:16 | Posted by 허니즈맘

 

 

제목 : 라일락이라는 추수꾼

 

이번 도시락에서는 "추수"라는 글감으로 이야기를 모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징그럽게 비가 계속 내리며 우리나라가 기어코 아열대 기후에 접수되었구나 생각하면서도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햇살 따가운 추수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추수"는 어떤 것일까?

열매는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저 제가 낳고 양육했다는 이유로 우리 삼형제를 떠올리기엔 저의 부모로서 헌신이 한없이 부족하여(사랑이 부족한 노동) 기쁨으로 답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추수꾼으로 하나님께 양육된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의 성장이 주춤한 것이 참 죄송하고 목자라는 몫을 생각하면 참 민망합니다.

이번에 <박하차 한잔>에서는 잠시 제 모습을 들여다 볼수 있는 성장기를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작은 것에 의미부여하는 것을 참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현실감각이 좀 떨어지고요^^ 가정교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지만 이 글을 나누면서 제 자신의 방백이 공허하지 않고 하나님께 친밀히 드리는 삶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

 

제 아이디는 라일락입니다.

왜 그런 낯 간지러운 아이디를 택했는지...^^;;

 

어릴 때부터 라일락향기와 그 꽃 모양도 몰입해 보면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자란 집에는 꽃나무도 일년생 꽃도 많았습니다.

그리 넓지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 꽃이 지질 않았습니다.

그 집은 제가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고 지금도 친정부모님이 사십니다.

추억이 많고 집의 아늑함을 깊이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저의 성장기에도 부모님께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은 집을 지키셨습니다.

 

여러 종류의 꽃을 보며 꽃모양과 향기를 맡으며 제 맘에 가장 다정한 꽃은 라일락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라일락은 마루 창문 시야에서 벗어난 장독대 옆에 보라색과 흰색 꽃나무 두 그루입니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피어나 은은하게 바람 타고 수줍게 자기 존재를 터치해 오는 라일락은 끝내 저를 집밖으로 불러내곤 했습니다. 일년에 몇번 가지 않는 장독대 계단에 올라 그 가지를 쥐고 소박하게 피어난 꽃더미에 얼굴을 묻게 하고 그 자잘한 귀엽고 섬세한 우주를 시간도 잊고 관찰하게 했습니다.

때때로 가지를 꺾어 집안에 들이고 싶었는데 채 피지 않은 꽃망을들이 안타까워 차마 그러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몇 가지를 잘라 탐스럽게 꽃병에 꽂아 놓으셔서 집안 구석구석까지 그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가족들을 위한 어머니의 라일락 개화 세리머니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고 그 이후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저와 라일락의 매해 첫 만남은 한 밤중이었던 거 같습니다.

4월말이나 5월초의 바람은 쌀쌀하지도 않고 옷자락을 날려도 기분 좋은 반가움이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용히 걷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라일락 향기를 담은 바람 한자락을 느끼면 얼마나 설레이고 마음이 즐거웠는지 행복이 뭔지 알겠다 싶은 감동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눈을 뜰 때 "향기"라는 예쁜 말이 엄청난 파워를 지녔고 누구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소망하는 것이 평생의 과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향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좀 가벼운 듯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라일락 향기가 떠오르면서 인위적인 백화점 향수에 갇혀있던 "향기"라는 말이 매우 고상하고 새롭게 다가와 평생의 '거룩한 부담'조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이루시리라 믿어지고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붙여준 아이디가 '라일락'인 것을 생각하면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닌 소망으로 간주하더라도 전 정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이 제 발목을 잡는 나이가 되어서 거울을 보면 헉~ 향기는 커녕 좀 실망스럽습니다. ^^;; 맨날 애들에게 곱지 않은 인상을 쓰고 저 조차 바라지 않는 주파수가 발달되고 잡음이 심하고 신경에 거슬리는 소통을 자진하다 보니 제 미간과 입가의 근육에 사나운 긴장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쩌다 셀카를 찍을 때, 혼자 있다가 무심히 거울을 보았을 때, 아이들 야단치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문 열자마자 거울), 누군가 찍어준 사진에서 낯선 모습을 보았을 때... 전 좀 심하게 실망합니다.

 

"난 욕심 많이(?) 안 부리는데 왜 더 순탄치 않을까?"

"왜 더 맘이 편하고 자유롭고 고상하고 평화로운 소통만으로 살 수 없는 거지?"

바보같은 질문으로 제 남다른 욕심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이끄신 은혜의 역사가 없었다면

그러한 저의 실망은 얼마나 깊은 절망과 좌절이었을지 아주 끔찍했을 것입니다.

 

전 좀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많고 자기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평생 영적 과제에 "자아도취" 그리고 "자기부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순탄한 성장기를 보낸 편인 제가 소박한 인생관을 갖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름의 자아도취에 빠져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함몰구덩이를 겨우 피해다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시커면 구덩이를 직면하고서도 생명이 있는 길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좁은 길을 가는 것이 힘들어서 때때로 무기력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라일락 향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소망이 있는 삶에 새 힘을 얻었습니다.

 

동네에 예전에는 라일락나무가 거의 집집마다 있었습니다. 요즘은 옛날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건물, 가끔 다가구 건물 한켠에 좁은 땅에 심겨진 것을 봅니다.

라일락을 가로수로 심은 길이 있으면 어떨까 재미난 상상을 하다가 라일락 향수를 하나 구해 볼까 문득문득 그 향기를 그리워 합니다.

 

이제는 외모나 이미지보다는 영혼의 무게에 관심을 갖고 (다니엘 5장)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이 무엇인지 평생 알아가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한다고 절절히 느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하는 그 사모함이 더 깊어지는 것이 더욱 간절해지길 원합니다.

저의 일상의 향기는 내 생명이 어떤 생각과 소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라일락만큼 매력적인 색깔있는 향기는 아닐지라도 라일락처럼 소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수많은 작은 실수와 한계에서 한숨을 거두고 그런 낮아지는 모습에서 지경을 넓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습니다. 초라한 상황에도 당당하고 누리는 풍성함에 겸허하고 더불어 가는 이들에게(나 자신을 제외한)  반가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즐거운 손길이 되길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은 부족한 모습 그대로라도 원하시면 저를 추수꾼으로 쓰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순종하는데 순전한 자세가 안 나오는 저를 기다리시는 그 분 앞에 소망 가운데 성장하는 모습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후2:12~17)

14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6절: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7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  



위의 글은 나들목교회의 월간QT <도시락>에 기고한 글입니다.^^

내 생애 최고의 사진 ㅋㅋㅋ(2008. 9) by 김대영

.

 

.

 

 

박하차 한잔2 - 부모교육운동

2010. 4. 12. 10:48 | Posted by 허니즈맘


 

+ 학부모로 살아남기



도시락 3월호에 <박하차 한잔> 시작하고

지난 4월호에 원고 마감을 못 지키는 바람에 한번 건너뛰었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라면 3월은 가장 할 말이 많은 때인데...

지나고 보니 제가 경솔히 너무 많은 말을 할까 싶어

오히려 쉼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월을 생각
하면 참 제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하네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드디어 1,3,5학년 된 초등학생 삼형제의 엄마에게

지난 3월은 참 바쁘고 또 머리도 좀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학급 임원선거, 임원엄마 모임(?), 전교어린이회 선거, 또 엄마 모임(후원),
 

각 학급 총회와
연이은 공개수업(총회와 공개수업이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쪼


개어 학교 아래 위층 뛰어다님), 청소, 녹색어머니회(아이들 등교 시 신호등


앞에서 깃발 드는 봉사) 등등...

자발적인 것도 있고 아들의 선택에 편승된 것도 있고...

저는 좀 예민해서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그러시진 않을 겁니다.

넉넉히 지켜보며 보듬으며 아이들과 함께 3월을 설렘으로 맞으시고,

보람을 맺을 건강한 긴장감을 즐기는 가정도 있습니다.

저는 바쁘고 머리 아픈 것을 넉넉히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이 과정이 성장과정이라는 것은 알기에

정신없이 지나치거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나름 긴장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제게 맡겨 주신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때때로 피하고 싶은 상황(학교 내에서의 학부모들의 관례)에


직면하고
가까이 뜻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격려도 받으며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부모교육(등대지기학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함께 성장하고자 나눔을 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매우 집중적으로 저의 부모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내 인생의 현재 좌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욱 성장하고자 새로운 첫발을 떼는 전환점이 되었고

현실적인 기대와 소망이 다져지는 내 안에 힘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줏대를 사용하고 내공을 쌓는 수련의 길에 접어 든,

갈 길을 아는 나그네로서 희망차게 출발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종의 부모교육 시민운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영향은 제 일상에 성경적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준 것 같습니다.




현재의 나와 아이들을 돌아보면,

배운 것을 적용할 것을 한걸음씩 실천하며

교육방법이 체질이 개선되길 염원했는데

변화는 들음에서 나는 것 맞지만

속사람이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가를 다시금 절감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로서

학부모 선배의 역할을 해낼 때면,

자녀교육의 방법적인 분별에 대해

좀 더 선명한 지도를 읽고 안내하게 된 거 같아

듣고 배운 선경험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변한 것을 느끼는 부분은

제가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심정이 더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제 소신을 지키려다 남을 무시하거나

나도 모르게 우월의식(내 것만 옳다)을 드러낼까 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의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가치기준이 크고 작게 달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첫 매뉴얼을 잘못 전수받아 왜곡된 습성을 갖은 학부모들...

저나 그분들이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경계심도 많고

방어적으로 나름의 기술을 펼치는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한 그 분들의 속사정을 생각하면 불쌍한데

언젠가 옳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을 알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부딪쳐서 꺾어야 한다는 그 방어적 적대감이

제겐 가장 큰 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딪치는 건 불가피 하지만, 꺾이든 꼿꼿하든

그것은 제 몫이 아닌 그들의 문제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과정으로 인정하니

저의 용기와 도전이 허무하거나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는이에 대한 애틋한 맘이 좀 더 확산 된 거 같아

3월은 제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모교육 강의



저는 듣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성향에는 개선의 타진이라는 긍정적인 부분과

들은 걸로만 만족하고 과제가 해결된 듯 착각하는 부정적인 속성이 있지만,

자녀가 성장할 때 같이 성장해야 하는 부모에게

계속적인 배움은 꼭 필요합니다.



이젠 어떤 강의는 진부하게도 들리고

제 안에 고인 물이 귀를 닫게 하고 마음도 굳게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체성 문제

그리고 그 갈등과 무지의 심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끝이 없습니다.

반복적인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지름길도 정답도 없기에

우리는 안내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었던 등대지기학교는 지금 4기가 4월에 개강했고

5기는 올 가을 11월에 시작될 예정인데 적극 추천합니다.

그곳 강의들은 일관성 있게 내 삶을 성찰하고

개념을 새롭게 해 주고 건강한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근간을 튼튼히 하라고 격려합니다.

현 교육과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무력감에 허덕이는

부모와 교사에게 힘없는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약하지만

그 아픔을 아는 우리가 함께 바로 서자는 등대지기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현 공,사교육 실태에 대한 연구자료 분석을 통한 평론으로

사회적 안목을 갖추도록 지원해 주고.

건강한 가치방향을 튼튼히 해주는

신앙적, 정신적, 정서적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우리 나들목교회에서는 4월 말부터 5월까지

<기독 학부모 교실>이-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열립니다.

역시 부모인 나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교육의 본질과 자녀에 대한 성경적 이해, 자녀교육 방법(예배, 성품, 은사 등)

그리고 부모교육 운동과 하나님 나라 확장(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배우고 소그룹모임을 합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기도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제대로 살아갈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배우기도 힘들고

제대로 배워도 제대로 사는 것이 녹록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배우지 않으면 무지의 걸림돌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횡포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계속 성장합니다.

요즘 성장통은 예전보다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삶의 필터에 오염이 심해서일 겁니다.

부모도 성장통이 있습니다.

그건 부모도 살아있고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아가자면

그 괴로움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성장의 동행인으로서 이해하고 세상을 줏대있게 살아간다면

성장통 주께 드리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우리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삶들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으며

건강한 성장을 더불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디도서3: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추모종 (사진/최문철님)

박하차 한 잔을 나누며 -

2010. 2. 16. 22:51 | Posted by 허니즈맘

 

박하차 한잔 드실래요? ^^


박하차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박하차 마니아는 아니고요, 가끔 커피를 안 마시는 지인들이 집에 오면 별미로 함께 마시곤 합니다. 박하차는 카페인이 없고 그 싸한 성분이(멘톨) 치료 효과가 있는 데에다 감기를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니 참 착한 차 같습니다. 


“박하차 한잔”...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블러그 문패입니다. 전 블러그를 만들 때 쉼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박하차 한잔을 마신 듯 또는 누군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눈 듯 삶을 누리고 나누며 기쁨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맘이었습니다. 블러그는 늘 저에게 자기성찰이 가능한 소박한 책상과 애착이 담긴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ㅎㅎ 나누기에는 부끄러운 자아도취와 때때로 힘겨운 자기부인을 다룬 잡다한 글들뿐 입니다. 그런데, 이 블러그 덕분에 도시락팀의 영광스런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고정란을 맡아 도시락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가문의 영광이네요.


지난 해 남편이 <라면파티2>를 개업하면서 나들목의 많은 가족들께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힘입어 기적의 1년을 살아내면서 남편은 도시락에 1년 내내 고정란을 맡아 <라면파티2>를 운영하며 경험한 단상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풍성히 누렸습니다. 남편이 고정란을 접자마자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좀더 겸손해질 수 있는 과정이 되길 소망하면서 고정란을 맡았습니다. 왜냐하면, ‘글의 내용과 논리나 표현력이 빼어나야 공적인 자리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적어도 자신에게 자숙을 빙자한 소심함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많이 부끄러울 것이고 그 나눔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이나 문제의 직면은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접목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성이 안팎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제가 앞으로 박하차를 함께 마시며 나눌 이야기는 “자녀교육” 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한 “교육”이라는 키워드...

익숙해도 별로 좋은 감정 남아있지 않아 맘이 불편하기 조차한...


거기에다 여러 가지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 버리는,

삶의 무게를 본질적으로 다르게 해주는 “자녀”

내 소중한 아이들...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소위 세상적인 속성으로 경솔한 표현을 해 버려 죄송합니다.


자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신 기업입니다.

교육은 생명력 있는 것이고 희망이며

인생에 인격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참 힘없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 고독하다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지만

때때로 성경 말씀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기 줏대를 내세우다가

세상의 쓰나미 같은 교육풍조에 무기력을 통감했습니다.

또 외부적 혼란을 이길 만큼 속사람이 강건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구하지 않음으로 일용할 은혜가 근근할 때도 있고

반복적인 죄성의 대면에 지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영성을 드러내는 것은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부모님들까지 한꺼번에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에서 교육이라는 과제를 화두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인간이해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성을 절절히 경험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백했지만 - 우리 삼헌이가(귀헌,승헌,정헌)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데 - 전 아이들를 양육하면서 비로소 저의 강력한 이기심, 사랑과 인내의 부재를 아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제 블러그의 대부분은 그로 인한 궁상스런 자기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제 주변에는 매우 의지가 강하고 사랑이 많고 인내심이 남다른 훌륭한 어머니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그 분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연약한 사람에게 친절한 격려와 위로를 전합니다. 그분들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인생에 대해 인정합니다.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겸손함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젊은 부모들이 (3.40대 포함^^) 자기애가 강해서 자기몰입을 원하는 성향이 흔하고, 매우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적 습성들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나 자기를 성찰하는 태도가 건강하게 생존하기 참 어려운 구조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자신이 그렇다고 동의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물질만능주의나 이기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무한경쟁...그 마수는 우리 세대의 삶을 화려하고 첨예화시켜 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고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기준, 자녀를 이끌어 주는 최선의 때와 방법들이 옳지 않고

함께 가는 방향이 잘 못 되었으니 관계가 깨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치 개념의 본질 자체가 오염되어서 정체성도 관계도 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팽배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은 세상권세와 맞닿은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며 그 경계 너머 더 안전한 곳을 갈망하며 소모전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힘없어도 고독한 불안을 견디며 살아남을 길을 찾고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교육의 실정에서 최선의 해법은 자녀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입시교육의 횡포에서 정의로운 주권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의 파트너인 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학교와 가정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평화와 자유가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사랑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전수하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깨닫고 바로 잡고 변해야 합니다.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줄 수 있는, 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는 부모로서 계속 성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전 이제까지 남달리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으로 자녀교육을 실천하는 선두자도 아닙니다. 제가 이 지면을 통해 감히 가르치듯이 말하고 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반복적 시행착오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바른 방향을 계속 가라고 자신에게 격려하기 위해 열심을 내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몹시 못마땅한 듯 “마치 정답을 다 아는 것 같군요” 핀잔을 듣습니다. 제가 잘 못 전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경우일 겁니다.


인생에 대해 그런 것처럼 자녀교육에도 정해진 정답은 없고

다만, 바른 방향만이 있습니다.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시행착오 또한 각자 불가피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멀고 지루한 마라톤일 겁니다.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고 지치니 우리가 함께 불가피한 성장통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해, 저의 인생전환 키워드는 “회심” 그리고 “용기”였습니다

그 때의 은혜로 이 지면을 잘 감당할 수 있길 기쁨으로 소원합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더욱 겸허해지길,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이번 달 추천하는 책

부모가 학교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달팽이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제인넬슨, 쉐릴 어윈, 프리미엄북스

나는 아이보다 나를 사랑한다, 신의진, 걷는나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 서원희, 내일을 여는 책

칭찬과 꾸중의 힘, 상진아, 랜덤하우스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 박재원, 스쿨라움

내 아이의 공부를 살리는 아빠 마음습관,  ..

굿바이 사교육, 시사인북


+ 위의 글은 나들목교회의 월간지 <도시락>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라면파티2> ---- 조영권 변혁일기2

2009. 4. 3. 15:48 | Posted by 허니즈맘

벌써 개업한지 두 달째네요.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은 어떻게 내가 음식을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을 했는지...
아찔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음식 장사지만 어떻게 평생 해 보지 않은 음식을 할 생각을 했는지요. 아직 밥 하는 것도 아슬 아슬 합니다. 장사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장사의 성공을 넘어서 그 이후의 의미 추구까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아직도 저의 직접적인 어려움은 음식을 제대로 만드는지? 적절한 타이밍에 내어 놓을 수 있는지? 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너무도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액 창업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서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주셨기에 힘을 얻고 갑니다. 또한 공동체에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와서 팔아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수월하게 첫 달을 넘겼습니다. 물론 영업 이익을 올리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자 폭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적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오실 때 빈손으로 안 오시고 무슨 이사한 집에 집들이 오시듯 라면을 들고 오신 분, 식용유를 들고 오신 분, 심지어 김치를 주신 분, 깍두기 주신 분까지 있었습니다. 지난 주엔 쌀을 주신분도 두 분이나 계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근의 고려대학교의 방학 기간에 개업을 하고 개학 하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은 혼전 중입니다. 생각으로는 소액 대출을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엄청 큰 일로 도와줄 것이라고 바랬는데, 역시 모든 것은 그 정한 기한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한 발 한 발 밟아 나아가는 일이 있어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만이 후배들을 지도할 수 있을 테죠.


라면 파티의 투자는 아직도 조금씩 계속 되고 있습니다.
라면 파티의 입지가 지하기 때문에 한 번 들어왔을 때 고객들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사진전시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전시용 레일과 고리를 설치했습니다. 한 10점에서 12점정도의 작은 사진이나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들목에도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으니 기획 전시를 한번 해 볼까 합니다.


또한 영상 시설도 했습니다. 모니터를 구입했습니다.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학교 후배가 와서 하나 구입하라고 선뜻 비용을 주고 가더군요, 감사하지요. 계속해서 관심과 취지에 동의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밤에 이 글을 쓰는데 내일의 장사 생각에 약간 스트레스가 되는군요.
하지만 과거 수도사들이 작업을 하며 그들의 영성을 키워 나갔음을 기억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맞이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요.


평안하세요.



--- 나들목교회 월간지 <도시락>4월호에 남편이 올린 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당에 봄을 심는 소년, 꽃보다 사랑스런 승헌이

<라면파티2> --- 조영권 변혁일기1

2009. 2. 24. 22:48 | Posted by 허니즈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면파티~

아침에 가면 불을 켜고 일단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숫가락, 젓가락, 컵을
제자리에 놓고 필요한 식재료들을 정위에 놓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그 다음에 야채를 다듬고 밥을 짓고 맑은 장국을 끓입니다.

필요하면 김치도 썰고 오징어도 준비해 놓고
식재료를 주문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아직 계속 받아야 합니다.
첨음 시작때에는 목공에 전기에 페인트 작업까지 해준 대단하고 고마운 맥가이버
같은 손길이 같이 했구요. 개업 이후에는
지인을을 데리고 라면파티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
간판, 배수시설 등이 망가질 때 마다 도와주는 손길,
바쁜 시간에 알아서 식기를 날라다 주시는 고마운 분들,
실내 장식에, 그림에, 필요한 것들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현재의 라면파티가
되었습니다.

라면파티의 내부에는 크림색과 주황색이 조화를 이루어 바탕색을 이루고 있고
출입구 쪽에는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그림이 안쪽에는 자전거와 사람들이
라면 파티를 하는 모양들이 있습니다.
옆에는 게시판이 있고 방문한 분들이 방명록을 써주고 가셨습니다.
그것이 멋진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다 누군가가 손을 댄 결과들입니다.

장사의 방법을 계속 코치해 주는 분들 때문에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초시계까지 갖다 놓고
시간을 재어 가면서 라면을 끓여 보지만 조금식 다른 재료를 넣은 그릇 그릇 마다
끓는 속도가 달라서 일률적으로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라면박사인 코치에 의하면 라면을 자세히 보면 약간 투명해 지는 순간이 있다고 하네요!
그것을 구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소리로도 식별이 가능한데 부글부글 끓다가
바글바글 끓는 때가 있다고 하네요. 혹은 젓가락으로 들어보면 탄력이 적당한 시점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구부러져 있거나 혹은 탄성을 잃어 일자가 되지 않는
중간 지점이요. 그것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먹어보면 된다고 합니다. 가장 확실하죠!

밥을 볶을 때도 짠 냄새가 확 올라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간이 제대로 된 것입니다.
짠 냄새를 조금씩 알아 갑니다. 색으로도 구분 가능하다고 합니다. ㅎㅎㅎ
그러나 전 일단 먹어 봐야 압니다.
일단 생활인이 된다는 것이 이런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것이더군요.

변혁적 지역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같이 고민하고 공부중입니다.
지금은 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대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알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지역일지... 어느 때일지... 누구와 함께 할지...어떤 일을 할지...
저는 라면 파티와 같은소액 창업을 돕고 후원하는 일, 가난한자들을 위해 생활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로 만들고 싶습니다. 변혁적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사역이 될 겁니다.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예배 공동체가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지역을 섬기고 돕는 일이 가능하겠지요. 품앗이로 공부방도 했으면 합니다.
공동체적 기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안에서 일치되어야 할 철학, 신념,
신앙이 없이는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문제니까요.
얼마나 첨에한 이해가 걸려 있는 부분입니까? 그저 좋은 마음으로 되겠습니까?
절대 안됩니다. 그 밖에 규율도 있어야 하고, 할 수 있는 때인지 아닌지도 중요합니다.
누가 사역의 주체가 되느냐도 중요하구요. 어거지로 할 수 없고 당위로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한 과정으로, 공동체의 스피릿을 전수하는 한 과정으로 위치 지을
때만이 가능할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어 주시는 주체가 나타나고 그들이 헌신할 때 가능할 겁니다.
지금을 마음을 품고 같이 기도할 뿐입니다.

라면파티 개업 이후 아직 한달도 안된 시점이니
아직 그 전망을 아직 하기엔 이르지만 어쨌든 재밌습니다.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장사가 안된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몸도 마음도 편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잠시의 휴식기라고 여깁니다.
개학하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장사의 양상에 조금 긴장도 합니다.

오늘은 야채를 배달해 주시는 야채 가게 사장님이 와서 라면파티의 실내 장식에 대한
칭찬을 실컷하시더니 대뜸 저의 전직에 대해 묻습니다.

"이전에 뭐하셨어요?"

뭔가 이런 일 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전 창업 컨설팅도 한두번 받아 봤습니다.
컨설턴트가 제 알고 한번 보고 전부 하지 말라고 말리더군요.^^
장사할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 야채 가게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험입니다.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새출발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기쁜 질문을 던져 봅니다. 감사합니다.

라면파티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는 없지만
http://shuim.tistory.com/ 로 오시면 라면파티의 소식이 있습니다.

나들목교회 QT책 <도시락> 3월호에 남편이 올린글

.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