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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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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밥집 김장400 미션 후기

2010.11.29 18:16 | Posted by 허니즈맘

안녕하삼~~^^
그제 밥집 김장잔치에서는 기도와 재정의 후원으로
어설프지만 민첩한 손길과 발길의 수고로
무사히 생각보다 더욱 풍성하게
400포기 김장을 잘 마쳤습니다.

우리 가교에서는
옥란목자님과 현숙언니와 제가
진행을 돕는 스텝으로
까페에서는 전체를 보고 서빙에 집중하려 했고
아뜰주방에서는 신혜경목자님의 지휘로 점심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까페의 옥란목자에게 전화를 받을 때마다
식사 예상인원이 증가세를 급하게 보여 ^^;; (총60여명 참여)
동태찌개가 이니라 동태찌개 덮밥이 되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쌈이며 전혀 부족하지 않고
푸짐한 식탁을 여러분이 마주하게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신혜경 목자님과 현숙언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전 ㅎㅎ 조수역할 잘했지요? ^^;; 

오랫만에 유진이가 토욜에 쉬어서
까페현장에서 옥란목자님과 김치를 담그다
김현일목자님과 김옥란목자님을 따라 밥집 배식에도 다녀오고
점심시간에는 종종종 찌개와 보쌈등을 서빙하느라 수고하고...
아주 40대 아줌마 같은 노련함으로(저보다 나은 숙련ㅋㅋ) 잘 도왔습니다^^;;
물론 그날도 차림은 잡지에서 막 나온 강렬한 세련 20대 초반 모드였습니다^^

너무나 오고 싶던 우리 현진이...
교수님과 연구진과의 미팅이 불가피해서 오려던 계획을 접는 문자는
그 아쉬움이 절절하더군요. "긴 말 않아도 네 맘 내가 안다 ~~ㅜㅜ"

까페 현장은 들은 바로는 ㅋㅋ 아주 살벌한 김치공장이었다고 하더군요.
화기애애한 동네 김장 품앗이가 아니라- 나름 교제를 기대한 가족들도 있는데ㅜㅜ
아주 엄격한 신속분담 완결모드의 수다 절대절제가 종용되는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합니다 ㅎㅎㅎ
그리하여 그 많은 양을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지만
과반수 초보인데 금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형제들은 배추를 만져도 못보고(입추의 여지 없음;;;)
포장박스를 만드는 기계손이 되어 척척척 공급하고
김치담은 박스는 수거하여 봉인~^^
거미줄 같은 골목골목을 지나 배달을 나서고...
  
오후에 득과 조목자님도 등장하셔서 가담...
모두 귀가한 후에 따로 모여 반짝김장공장에 얽힌 은혜와
향후 과제에 대해 진지한 모의를 나누었습니다^^;;

금쪽 같은 후기를 달변으로 엮으시는 김현일목자님~~~
부디 이번에는 문자화 시켜 주시기로 한 거 기대합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함께 귀한 추억을 만들게 하시고
우리 안에 선한 기쁨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사진은 나들목소식란에 나왔어요.  

요 사진은 지난 여름 바하밥집 토요일 배식 다녀온 후 설거지하다가...^^

.  
 

2010버전 홍은 가정교회 ^^

2010.11.26 21:40 | Posted by 허니즈맘
홍은 가정교회
 
우리 가정교회는 은평구 응암동 목자(조영권, 박혜성) 집에서 모이고
40대 중후반에서 20대 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들과
어린 자녀들이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며 공동체적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세워진것이 7년전 홍은동에서였기에 이름이 홍은입니다.


우리 가정교회는 이번 1년간
사귐의 기도, 말씀 묵상 기도, 관상 기도에 대해서 공부하며

도시에서의 수도사들이 되기를 소망했고
현재는 본회퍼 목사님의 '신도의 공동생활'에
대해 공부하며
공동체적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 농업에 대해서 실천적으로 배워가며
집 안에서의 농사일과 화분이나
마당에서의
야채 기르기에도 도전해 가며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먹고 나누는 일을 초보적으로 했습니다.

가족중 한 명의 고향인 농촌에 내려가서
감자도 심고 자라난 것을 거두고 교회의 여러 가족들과
나누었고
방울 토마토와 상추등등의 모종도 나누고 같이 심기도 했습니다.


홍은 가정교회는 성산 가정교회의 목자(김현일, 김옥란)들과 함께
독립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에서 모여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변혁을 실천하는 비전을 가지고
연합하여 모임을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산 가정교회의 김현일
목자는 바하 밥집 사역을 이끌고 있어서
더불어 변혁적인 소식과 도전을 많이 받고 있고 때때로
사역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

2010.7.10 거창 감자수확모두들 꽤 잘했음^^

무열형제 본가인 거창에서 호강하기^^ 감자를 캐고 경운기에 옮기기 애들은 넘 신났다~^^

. .

고 김정철 장로님 환송회를 마치고...

2010.10.01 23:48 | Posted by 허니즈맘

<김정철 장로님의 하늘나라 환송회>에 참석하면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로님 덕분에 때마다(위로예배, 입관예배, 환송예배, 하관예배)

귀한 말씀 듣고 장로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장로님께 감사했습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잃는 것이 더 얻는 것이 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깊이 퍼낼수록 물이 더 맑고 시원하다는 것,

나눌수록 풍성해지고

낮아질수록 높아지고

드릴수록 채워지고

숨길수록 드러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약함으로 강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하고

침묵으로 잡음을 깨끗케 하고

웃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진실한 몇마디가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하는

경지에 이른 은혜의 감동을

오랫동안 울려나가게 할 것입니다.



장로님이 마지막으로 대강당 주일예배에 오셨을 때 뵙고 

때가 지나서 드릴 수 있는 말이지만

그날 유난히 힘겨워 보이셔서 맘 한 구석이 서늘해지고

다음주에 더 건강한 모습을 뵙기를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좀 서글펐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 이미 죽음 앞에서 주님의 평강을 감사로 받으시겠다던 선언과

더이상의 수술을 거절하신 년초의 장로님과 가족분들의 결정을 생각했습니다.

장로님의 평생을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교회에서는 믿음의 선배로서 회사에서는 대표로서 그리고


형제와 가족들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섬김의 삶을 사셨다는 걸 보고 들었습니다. 


지난 11년 매주일 뵈면서

그리고, 몇년 전 쇠약해지시면서 예배후 인사를 드리게 될 때면 

언제나 힘차게 잡아주시는 손의 따뜻함 그리고 미소 띠신 맑고 힘있는 눈빛...

잡은 손은 기도가 되고 주시는 정겨운 눈빛은 제맘에 '존경'을 갖게 하셨습니다.

육신은 예전보다 힘을 잃으셨는데 죄송하지만 그 때문에

장로님께 더 친밀히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진심을 갖고 좀더 가까이...

언제나 만나면 유쾌하신 권사님과 옆에서 말없이 웃어주시던 장로님,

두 분의 하모니~.



장로님이 갑자기 기력을 심히 잃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통 중에도 인내하시며 의연히 때를 기다리시는 장로님과 가족들을 생각했습니다.

하늘소망에 뿌리를 둔 가족들의 환송준비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몇년 전처럼 아니 그 때보다 좀더 이별을 가깝게 각오하며 

슬프지만 사랑과 감사 그리고, 배려와 유머를 전하시는 장로님 덕분에 
       
온 가족이 하늘의 평강을 누리고 계신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까지 빨리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병상에서도 배려를 잊지 않으신 장로님께서 기도하신게 아닌지...

떠나시는 시간은 그리 슬프게 세찬 소나기로 짧게 울라 하시고

가신 후에는 위로가 되라고 아주 좋은 날씨로

환송회 무리들에게 가을 소풍을 선물로 주길 원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장지인 파주 가는 길은 아주 눈부시고 화창해서 좋았고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멀리 북한 땅을 바라보니 가슴에 뜨끈한 꿈이 올라왔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영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은혜로 특별한 노래를 들으며 답을 받았습니다.

'리베라(Libera)'라는 영국 소년합창단이 있는데 <Going Home>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향에 대해 하늘나라에 대한 상상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제게는 아직도 때에 따라 흐릿하거나 그 절대적 가치에 대한 무심함이


이 땅에 사는 몫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짧은 소풍을 마치시고 집에 돌아가시는 장로님의 모습은


희노애락과 더불어 달려온 자의 고단한 수고가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지는 인사는


아직 남아 이 땅에서 살아갈 몫을 감당해야 하는 자들에겐 힘있는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참 많이 울었는데


쓸데없이 복잡한 각막의 허물이 벗겨지고 마침내 좀더 선명한 시야가 열리는


회한과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그날 밤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늘소망에 대해 코드를 열어주신 김정철 장로님...


병중에도 오히려 건강한 자들에게 힘있는 격려를 해 주시고


위로를 전하러 간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시던


그 내면깊은 강건함, 야위신 모습에도 여전하셨던 훈훈하심...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씀하신 겸허하심 따라


저도 좀더 강하고 담대해지며 사랑하기에 더이상 지치지 말고


오직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기를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해 주께서 주신 새생명에 대해


청지기적 삶을 사는 거룩한 부담으로 달려갈 것에 대해


하늘소망을 바라보고 주님을 노래하며 살게해 달라고 새 기도를 올립니다.




"고 김정철 장로님,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삶에 그 분의 삶을 선물로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Libera - Going Home
https://www.youtube.com/v/o2aLSat3h0w&hl=ko_KR&fs=1&color1=0x5d1719&color2=0xcd311b


<관련기사>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gCode=mis&arcid=0004158233&code=23111111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445

<tv 출연방송본>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vid=22624.

주기도문3

2010.09.15 14:08 | Posted by 허니즈맘
09/08 '하나님나라 백성의 기도의 열쇠' (클릭하면 예배실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 강해3 (2010.9.8) - 김형국목사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비함과 경외감을 나타낸다.

사람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존귀함과 거룩함.

창조와 기적을 행하시는 놀라우신 능력.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으시는 크고 깊은 사랑.

하늘의 하나님 그리고 땅에 있는 나

그 관계의


우리

공동체성.

나와 내 가족만을 기도에서 벗어날 수 있길.

나의 이웃, 교회와 나라,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을 중보하는 기도.


아버지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안 해도 되는 내용의 기도이다.

내가 기도를 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출애굽 시키셨고 주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고아와 같은 우리를 입양해 주셨다.

이스라엘을 맏아들 삼아 주셨다는 의미는

그 후에 또 다른 아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친밀한 부름...

아버지에 대한 사랑 (로마서 : 매우 이성적인 논리가 주류인 이 곳에서 사도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점에 이르고 폭발하고 있다 --- 롬8장35절)

자격없는 자가 누리는 은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죄책감.

기도의 문이 열리는 시작점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버지~"

감격없이 마침표처럼 주문처럼 사용하는 언어가 되어버린...


상속자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고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때와 방법으로 닥쳐오는 고난.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고난을 이겨야 한다.

쉽고 간단한 고난은 없다.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

내가 배울 것은 예수님이 이미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다.

인생은 온전한 자녀의 형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소망...

하늘의공동 상속자로서의 정체성은 이 땅의 잠시 고난을 이기게 한다.


열쇠는 밖에서 잠그고 여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기도문은

기도의 본령에 들어가게 하는 열쇠이다.

이 열쇠는 아무나 쥐고 열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를 알고 "우리"로서 공동체성의 영적 부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감격의 기도인 것이다.





전도서 2장

기도할 때 함부로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찬양: 아바아버지~
       아바아바아바 아버지~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시는 주님~

사복음서의 부활증거

2010.06.30 13:29 | Posted by 허니즈맘

06/23 '사복음서의 부활증거 -김형국목사-

 


"북한은 실질적으로 식량과 비료를 남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거의 남한의 지원이 끊긴 요즘은 군인들이 민가에 내려와서 식량을 뺏어 가고 있다.

예전에 군량미로 가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민간인에게도 가고 있었다.

우리의 북한 지원은 다시 새롭게 지속되어야 한다."
 

지난 석달 동안 전해왔던 사복음서의 '예수님부활의 증거' 총정리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 부활의 증거>


1. 혼란스런 증거

사복음서를 종합해서 보면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약간의 횬란이 있다.

부활의 장면에서 여인의 숫자에 따라

부활하신 만남의 장소...

이런 차이점 때문에 예수님 부활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 의문을 야기한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관점이 부적절하다.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으로 삼는것

예수님은 사역을 한지 3년이 안된 젊은 청년을 정신적 지주로 미화하기 위해서

부활을 조작한다는 것과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사소로운 표기를 중요시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증인이었던 여인들의 숫자 :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를 거론하지만

현장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특정 이름은 선택적이었을 뿐이다.

 


2. 증거의 공통점

평범한 일상중에 만나셨다.

예수님을 만나 제자들은 그 이후 새로운 삶을 찾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확실한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할 뿐

사복음서의 차이를 수정이나 조작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각 책이 독특하게 기여하는 바가 다른 사복음서의 유익이 크다.

 


3. 사복음서 부활의 증거 돌아보기


*마가복음"16:1~8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 빈무덤을 발견한다.

 부활현장의 증인 거론은 없다.

 끝부분에 "무서워서" 아무도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 하였다.

 이 책이 회자되고 있을 때에는 생명을 걸고 이 무서운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

 극적 대비를 드러낸다.

 (제자들조차 두려워했던 부활때문에 이후의 제자들의 삶은 고상함과 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마태복음

못박힌 발을 붙들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놀라운 복음을 제자에게 땅끝까지 전하라 하시고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누가복음

여인들의 증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통해서 맘을 열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하심.

떡을 떼는 일상에서 만나 주셨다.

이방인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예수님의 비전을 보이셨다.

메시아 공동체로서 교회를 이루고 성령을 기다리는 백성.

 

*요한복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보여 준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때문에(받은 사랑에 대한) 빈무덤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학력, 지식, 신분, 명분이 자격이 되지 않는다.

그녀를 예수님의 메신저로 사용하신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내면에 참된 평화를 주신다. (붏안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성령으로 준비시키신다)


도마의 회의(진실한 고민)를 통해 진실에 이르게 하신다.


21장1~14

고기잡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 비천한 일터에(평범한 일상) 오셔서

그 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길 원하신다.

아침을 차려 주시고 인격적으로 섬겨주셨다.


베드로의 회복 : 인격적으로 진실한 근심에 이르게 하셔서

그의 실패와 절망 중에 문제의 본질을 보게 하셔서 회복시키신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맡겨진 양을 먹이는 섬기는 삶을 살고,

비교하는 삶을 살지 말며 예수님을 따르는 고유한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부활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어떤 의미가 있는가?>


1.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수님은 존경할 만한 성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다시 하나님 우편에 오르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부활이 없었다면 고상한 희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케 하시는 새시대의 완성과 예수님의 새로운 통치를 말한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까지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능히 살 수 잇는 시대를 주셨다.

 


 

2. 성경을 통해 부활을 온전히 알게 하신다.


사복음서를 통해 알게 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더이상 기적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복음서의 부활의 증거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깊이 묵상하게 하셔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과 소망을 갖길 원하신다.

 

 

3.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갖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부활을(영광과 능력) 드러내셨다.


진리와 지식이 중요하지만 "사랑"을 통해 일하신다.

예수님의 이 땅의 사역은 "사랑의 회복"이었다.
  
지식은 필요하나 사랑이 더 중요하다.

 

 

4. 일상의 삶에서 따르게 하신다


장엄한 신비한 장면에도 임하시지만 일상의 삶속에서 동행하시며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일상 중에 주께서 우리를 섬기고 계심을 발견하길 원하신다.


복음 전수의 삶- 종말론적(끝이 있는) 삶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가?


복음을 살아내고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역사 속에 500여명 밖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널리 전해진 소식으로 믿게 되었고 성경으로 기록되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 들이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

마음과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우리가 진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세워 나갑니다.

진리에 집중합시다. 배웁시다, 묵상합시다. 그 진리가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 가면 갈수록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가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에 눈이 뜰수록 우리는 더욱 선명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06/16 '요한의 부활증거4(요21:15-25) 

수요설교를 집에서 혼자 듣고 마음에 새기며 예배했습니다.


주일 밤에 컴을 드뎌 고치고 소리를 듣게 되어 나들목 예배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구,  오늘도 수요 오전예배를 가려다 못 가면서  어제 이멜로

받은 오늘 수요예배에 대한 기대를 지난 주 수요예배 말씀을 사모하는 맘으로 돌리고

모처럼 들은 말씀을 동시에 컴으로 기록해 보았습니다.

우리 홍은 가족들은 수요예배에 참석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

제가 이렇게 올리는 나눔이 동일한 은혜가 흘러가는 또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사복음서에 드러난 부활의 메세지를 다루었고 오늘의 요한복음 마지막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마무리 한다.

본문 / 요21: 15~ 25

15~19 : 예수님과 베드로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20~25 : 예수님과 요한

 

 ---- 내가 부활하여 내가 부활의 주인이 되었고 생명이 되었으니 "나를 따르라"

 

+나는 어떤 초점을 갖고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1. 나와의 관계 :

내가 아닌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잇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자신을 믿었다.
  
베드로는 철저히 3번이나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했고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기쁘지만은 않다.

예수님의 현존에 비추이는 자신의 좌절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갈대)' 옛이름을 3번이나 부르시고 

('게바-바위' 라고 부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인격적 꾸짖음으로 좌절한 그에게 배려하셨다.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시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회복 시키신다.

완전한 사랑(아가페)을 요구하시지만 인간적 사랑(필레오)으로 가난한 맘을 드러낸다.


"베드로 너는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의 본질은 예수님께서 경쟁적 사랑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고

베드로는 항상 자기의 의지와 혈기로

자신의 힘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계시다.


불안하여no(17절) --슬퍼하며 깊이 근심하며

하나님 뜻대로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기독교는 주술 종교가 아니다. 정상적 근심과 고민을 촉구하신다. 
                     
---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사랑이 부족하지만 내 사랑에 대한 진심...  

    
     성장하는 예수 따르미의 진정한 고백

    내 신앙과 사랑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애통함)

 

2. 다른이와의 섬김의 관계

사랑한다면 수평적 관계가 된다. "내 양을 먹여라"

복음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을 돌보라

어떤 직책이 되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섬기는 행함을 먼저 하라.

그 상황의 베드로는 실패한 직후의 어린 신앙인이었다.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 내 양이다.

내 자녀, 내 남편, 내 가족이 내 양이고 좀더 눈이 넓어지면 맡겨진 양이 더 보인다.


양을 먹이는 것 --- 요10장  (선한 목자 예수님)

내가 직접 줄 수 없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먼저 내 인생의 답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댓가를 지불하는 희생을 통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3. 동역자들과의 관계

영적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비교를 하는 것이다.

현장의 7명의 제자들... 그 중에도 요한을 시기하고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20,21절)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고유의 트랙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상관하지 말아라(22절) 하신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여기에서 '너는' 이 강조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자신의 수준에서 자신의 가는 트랙에서

자신의 좌절에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고

내게 주신 자들을 사랑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을 따라 내 길을 가라고 하신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길 원합니다.


전 사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지는 모르겠지만
또는 그 잠재의식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지만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러는 것에 거부감이 심하고
전혀 그런 방법으로는 생각을 끊고 사는 것이 가능한 편입니다.
자랑이 아니고^^;; 그 거부감 저변에는 실수나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예 비교를 할 생각을 안 하는...^^;;

근데, 저의 생각의 잣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제 생각의 기준에 맞추어 시시비비를 가르게 될 경우에
편견에 의한 판단일지도 모르는데
적대감이 큰 편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교만한 소취라는 생각을 하며 때마다 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자각을 할 때에는 참 괴로운 맘입니다.
때로는 시시비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다름으로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전 우습게도 대치되는 갈등상황의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아시다시피 제가 웬만하면 회피하는 스타일 아닙니까?::

개선 점을 대안으로 나눌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겸허하게 사는 것이 제겐 살길입니다.

궁지에 몰려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와 대면하는 것이
가장 영적으로 힘든 경우인데
제 안에 긍휼이 없음을 발견하는 시점이 회개의 때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힘든 때는 어떠한 상황인가요?
너의 트랙과 남의 트랙을 인정하고
겸허히 생명 자체인 나에게 순종해라 메세지를 듣는 때는 언제인가요?

궁금합니다. ^^;

역사 속에 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

2010.05.29 13:56 | Posted by 허니즈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의 진실한 고민!

 

박하차 한잔 드실래요? ^^


박하차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박하차 마니아는 아니고요, 가끔 커피를 안 마시는 지인들이 집에 오면 별미로 함께 마시곤 합니다. 박하차는 카페인이 없고 그 싸한 성분이(멘톨) 치료 효과가 있는 데에다 감기를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니 참 착한 차 같습니다. 


“박하차 한잔”...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블러그 문패입니다. 전 블러그를 만들 때 쉼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박하차 한잔을 마신 듯 또는 누군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눈 듯 삶을 누리고 나누며 기쁨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맘이었습니다. 블러그는 늘 저에게 자기성찰이 가능한 소박한 책상과 애착이 담긴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ㅎㅎ 나누기에는 부끄러운 자아도취와 때때로 힘겨운 자기부인을 다룬 잡다한 글들뿐 입니다. 그런데, 이 블러그 덕분에 도시락팀의 영광스런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고정란을 맡아 도시락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가문의 영광이네요.


지난 해 남편이 <라면파티2>를 개업하면서 나들목의 많은 가족들께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힘입어 기적의 1년을 살아내면서 남편은 도시락에 1년 내내 고정란을 맡아 <라면파티2>를 운영하며 경험한 단상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풍성히 누렸습니다. 남편이 고정란을 접자마자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좀더 겸손해질 수 있는 과정이 되길 소망하면서 고정란을 맡았습니다. 왜냐하면, ‘글의 내용과 논리나 표현력이 빼어나야 공적인 자리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적어도 자신에게 자숙을 빙자한 소심함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많이 부끄러울 것이고 그 나눔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이나 문제의 직면은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접목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성이 안팎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제가 앞으로 박하차를 함께 마시며 나눌 이야기는 “자녀교육” 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한 “교육”이라는 키워드...

익숙해도 별로 좋은 감정 남아있지 않아 맘이 불편하기 조차한...


거기에다 여러 가지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 버리는,

삶의 무게를 본질적으로 다르게 해주는 “자녀”

내 소중한 아이들...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소위 세상적인 속성으로 경솔한 표현을 해 버려 죄송합니다.


자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신 기업입니다.

교육은 생명력 있는 것이고 희망이며

인생에 인격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참 힘없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 고독하다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지만

때때로 성경 말씀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기 줏대를 내세우다가

세상의 쓰나미 같은 교육풍조에 무기력을 통감했습니다.

또 외부적 혼란을 이길 만큼 속사람이 강건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구하지 않음으로 일용할 은혜가 근근할 때도 있고

반복적인 죄성의 대면에 지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영성을 드러내는 것은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부모님들까지 한꺼번에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에서 교육이라는 과제를 화두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인간이해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성을 절절히 경험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백했지만 - 우리 삼헌이가(귀헌,승헌,정헌)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데 - 전 아이들를 양육하면서 비로소 저의 강력한 이기심, 사랑과 인내의 부재를 아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제 블러그의 대부분은 그로 인한 궁상스런 자기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제 주변에는 매우 의지가 강하고 사랑이 많고 인내심이 남다른 훌륭한 어머니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그 분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연약한 사람에게 친절한 격려와 위로를 전합니다. 그분들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인생에 대해 인정합니다.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겸손함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젊은 부모들이 (3.40대 포함^^) 자기애가 강해서 자기몰입을 원하는 성향이 흔하고, 매우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적 습성들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나 자기를 성찰하는 태도가 건강하게 생존하기 참 어려운 구조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자신이 그렇다고 동의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물질만능주의나 이기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무한경쟁...그 마수는 우리 세대의 삶을 화려하고 첨예화시켜 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고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기준, 자녀를 이끌어 주는 최선의 때와 방법들이 옳지 않고

함께 가는 방향이 잘 못 되었으니 관계가 깨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치 개념의 본질 자체가 오염되어서 정체성도 관계도 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팽배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은 세상권세와 맞닿은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며 그 경계 너머 더 안전한 곳을 갈망하며 소모전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힘없어도 고독한 불안을 견디며 살아남을 길을 찾고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교육의 실정에서 최선의 해법은 자녀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입시교육의 횡포에서 정의로운 주권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의 파트너인 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학교와 가정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평화와 자유가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사랑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전수하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깨닫고 바로 잡고 변해야 합니다.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줄 수 있는, 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는 부모로서 계속 성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전 이제까지 남달리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으로 자녀교육을 실천하는 선두자도 아닙니다. 제가 이 지면을 통해 감히 가르치듯이 말하고 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반복적 시행착오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바른 방향을 계속 가라고 자신에게 격려하기 위해 열심을 내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몹시 못마땅한 듯 “마치 정답을 다 아는 것 같군요” 핀잔을 듣습니다. 제가 잘 못 전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경우일 겁니다.


인생에 대해 그런 것처럼 자녀교육에도 정해진 정답은 없고

다만, 바른 방향만이 있습니다.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시행착오 또한 각자 불가피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멀고 지루한 마라톤일 겁니다.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고 지치니 우리가 함께 불가피한 성장통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해, 저의 인생전환 키워드는 “회심” 그리고 “용기”였습니다

그 때의 은혜로 이 지면을 잘 감당할 수 있길 기쁨으로 소원합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더욱 겸허해지길,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이번 달 추천하는 책

부모가 학교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달팽이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제인넬슨, 쉐릴 어윈, 프리미엄북스

나는 아이보다 나를 사랑한다, 신의진, 걷는나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 서원희, 내일을 여는 책

칭찬과 꾸중의 힘, 상진아, 랜덤하우스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 박재원, 스쿨라움

내 아이의 공부를 살리는 아빠 마음습관,  ..

굿바이 사교육, 시사인북


+ 위의 글은 나들목교회의 월간지 <도시락>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나들목이 마을별 예배 드린 지난 주일~
홍은 가교는 라면파티2에서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모임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열린한뿌리 마을에서 조영권 목자가 마을지기를 내려놓고 열린한뿌리에서 독립해 나와서 우리가교가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을별로 예배를 드리며 동시에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연합교회로 모였을 때와 달리 서로 돌아볼 수 있는 소규모의 교제와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은혜는 아주 특별한 의미와 우리 안에 주신 소망을 좀더 선명하게 발견하고 기뻐하게 되는 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홍은은 소규모가 아니라 그야말로 한 상에 둘러 앉을 수 있는 적은 수의 모임이라 보통 가교모임이랑 그리 별다른 차별성을 느낄 수 없을 수도 있었지만 나름 예배를 나누어 준비했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성령의 임재하심을 깊이 누리며 서로 화답하는 드림이 되게 하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이득형제의 아주 오래전에부터 준비된^^  찬양인도로 예배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찬양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대선 집사님의 시를 읊으시는 듯한 감격에 벅찬 대표기도와 전원이 미리 준비한 한해를 돌아보며 드리는 감사의 고백은 아름다운 꽃다발로 주님께 드려지고 우리 안에 있는 주님 은혜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나눠온 세월의 정이 특별하고 가슴이 뜨뜻해졌습니다. 조영권 목자님은 염려하지 말고 두맘을 품지 말고 오직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을 권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셨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대화식 기도를 드리며 강물이 흐르게 하시듯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찬양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

그리고, 삼헌이가 고대하던 푸짐한 식사 ^^
각자 한 묷씩 준비해서 풍성한 식탁을 대하며 예배가 감사하고 함께하는 것이 기뼜습니다.^^  

득형제의 찬양은 예배 순서마다 계속 이어져서 좋았고 새노래를 비롯해서 영감있는 선곡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찬양인도는 쭈욱~^^ ...

"올해 감사한 것중 첫번째는 강아지를 주신 것이고요 ..." 각자 자유로운 분량으로 준비된 고백을 드리니 드림이 곧 채우심이 됨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ㅜㅜ

말씀도 참 좋았어요^^ 울 목자님은 날로 표현이 유연하고 소통이 친밀해지심은 늘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 때문입니다^^

언제나 식기도는 짧게~ ^^; "아그들아~ 짧지 않은 예배에 참고 참여한 거 참 대견하고 감사했단다~^^ "

.



 
글쓴이: 데이지 첨부:    
 


라면파티가 정말 잘 되길 기도해요


조사장님 홧팅! ^^


함께 해주는 가족들도 모두 홧팅!



한나빵  [2009-01-22 12:34:28] 
라면파티에서의 첫 파티였네요. 날마다 풍성한 예수님 잔치가 열리는 라면파티 되세요 ^0^



[데이지님과 나들목 가족께 드리는 감사의 변 ---]

데이지님~~^^ 감사해요. 기도와 사랑의 격려 속에서 그렇게 은혜로운 개업예배를 드렸는데 후기를 올리지 못해 좌불안석이었어요. 제가 그날 카메라를 잊고 가는 바람에 사진이 수중에 없는지라 사진을 핑게로 여직 버텼네요. 데이지 언니의 배려로 그날의 화기애애 뜨거운 후원의 한 자락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개업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 후원해 주신 나들목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김형국목사님!  새벽부터 라면파티에 오시기 직전까지 기도회 인도와 예배설교 그리고 풍삶기 강의로 수고하시다가 바로 연이어 저희 개업예배를 이끌어 주신 사랑깊은 수고에 감사드려요.  더욱 겸허히 소명 감당하고, 은혜 앞에 더욱 담대히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어르신들께서 그 애매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첫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예의도 예의지만,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가 사임하고 새로운 계획을 나눌 때 깊이 한숨 쉬시면서 부모님처럼 염려해 주시고 뭐도 모르는 철부지를 현실의 물가에 내놓으신 듯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모습이 죄송스럽기도 했고 그 사랑에 가슴 뭉클하기도 했었습니다. 와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날 못 오셨어도 전화로 인사를 받아 주시고 응원해 주신 어르신들께도 감사드리고 어려운 시간을 청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열린한뿌리마을 목자님들~ ^^ 요즘 개업철을 맞은 우리 마을에 동분서주하시고 물적으로도 부담이 상당하실 텐데 축하하시러 또 모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글구, 사랑하는 우리 홍은 가족들 ㅜㅜ 이대선 집사님, 은혜랑 현숙언니, 최근 영입된 나이스가이 득형제 ... 그리고는 사정상 투명인간으로 영적으로 하나되어 함께한 우리 홍은 가족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오라 해도 극구 찾아준 그 밖의 끈끈한 가족들(도서관팀 포함^^) 의 살가움에도 감사드립니다.

<라면파티>의 원조인 오만(50000^^) 노하우의 사사를 기껍게 자청해 준 전민석 형제와 처움부터 쭉 함께 한 현실세계의 가이드 박무열 형제  감사해요.

가게가 넘 예뻐서, 방문객이 걱정의 반을 덜었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게 해주신 물심양면 플러스 노고를 해 주신 분들을 밝힙니다.

김하윤 목자님, 김은영 목자님, 유현숙 간사님, 박에스더 목자님, 최자연 자매, 서영주 자매, 윤혜성 자매, 전민석 형제, 박무열 형제 .... 도움의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으나 예쁘게 된 비결만 밝히옵니다 ^^:

그후로 계속 방문해 주시고 시식품평해 주시는 애정어린 관심에 감사드리고 더욱 분발하고 있습니다. 두서없는 그리고 몬가 많이 빠뜨린 듯한 감사의 마음을 이만 총총 마칩니다. 
할렐루야~^^


영광스런 부부주례(2009. 2. 7)

2009.02.07 22:46 | Posted by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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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김대영 2008.9

신랑신부에게 사랑,지혜 그리고 용기를 전하며.

(유소영 자매와 이경황 형제의 결혼식 주례사 --- 10분 정도 소요^^;; 줄이느라 무지 애씀)
                                                                   검은 글자는 생략부분



좀 떨립니다.




이 자리에 부부가 주례를 하는 것이 낯선 분도 계실 텐데.. 사실 저도 듣기만 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도 망설이다가 제 자신을 성찰하는 성숙의 기회가 될 거라 믿고

신랑신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우리 부부가 사랑하고 결혼해서 살아오는 동안 늘 지키시고 사랑깊은 사연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변함없이 참아주고 지켜준 남편의 사랑과 믿음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의 덕담을 겸손히 듣겠다고 부탁해온

신랑신부에게도 감사하고,


자녀를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하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양가의 부모님께

부부주례라는 낯선 선택을 존중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두 사람은

사랑하기로 작정한 그 때부터

아니 사귀자고 물어 주고 또 진지하게 반응하고 그랬던 그 특별한 날부터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열심히 손잡고 왔으니 이 아름다운 모습에 축하를 드리고

그 사랑과 용기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시간 사랑, 지혜, 그리고, 용기에 대해서 전하려고 합니다.

그 단어들은 우리가 어릴 때 보던 어린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합체하면서 외치던 주문 같기도 하고

내놓으라는 명작에서 삶의 진실한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핵심이고,

우리가 제대로 살아 가려고 읽는 성경 말씀에서도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겁은 별로 없는데 용기가 좀 부족해서 모험에는 약하고

웬만큼 안정권이 아니면 조금이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보이면


거의 도전을 하지 않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남편은 저보고 참 대담한 편이라고 제가 납득하기 어려운 격려를 하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인생에 가장 큰 모험은 딱 두 건이었는데

바로 제 남편과 연애하기로 작정한 것이었고 -- 그건 여지없이 결혼하는 입문이었고요,

또 하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사실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운명적인 것이어서 직감적으로 넘 큰 사건인지라

그 앞에서 잠시 정신을 잃고 하나님께 바른 결정을 알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상시의 제가 갈 수 없는 길을 오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확실히 모험인 것 맞습니다.

인생 자체가 미지의 여행이고 선택과 고난  , 때로는 보람과 행복, 모험의 연속인데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것은 함께 한 배를 타는 것이나,

또는 한 쪽씩 날개를 맡아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가야 할 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용기가 많이 필요하고, 정신도 똑바로 차려야 하고,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 앞에 망연하다가 지혜롭게 전략을 짜야 하고 ,


사랑이 절절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고 쉬기도하면서 재충전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저희 부부는 이제 결혼 12년차이고 하객으로 앉아 계신 어르신도 많으신데

인생의 연륜을 말씀 드리기에는 참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에게만 해도 될 것을  저에게까지 주례를 부탁한 것은

제가 완전한 배우자의 역할을 해서도 아니고,


두 살 터울의 삼형제를 키우는 타이틀 덕분에 대단한 엄마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도-- 몸과 맘이 좀더 고단할 뿐 현명한 엄마로서 모범이 될 만한 자질과 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저, 누구나 갖고 았울 이기적이고 완고한 인간 본연의 약점은 있지만

성경적 가치관으로 제대로 살려고 애쓰는 선배로서 몇마디 하려고 합니다.

좌충우돌하고 고군분투하는 인생의 현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니시까 더구나 사랑하는 둘이서라면

참 감사한 거라고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검증된 약간의 지침을 전해 주려고 합니다.




1. 사랑과 자존감 (대화, 함께하는 시간)


직장생활을 하는 신랑신부는 빠듯한 시간에 연애를 하느라 몸이 고달프기도 했을 텐데

결혼을 하면 안정적이고 몸이 좀 편안해 질 겁니다.

그런데, 여전히 시간이 넉넉지는 않고 신혼부부로서 공사다망하고 적응해야 하는

바쁜 나날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이던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낯선 그녀를 ,낯선 그이를 발견하며 설레일 수도

바짝
긴장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30여년간 '나'로 살다가 '우리'로 살아 가기로 하는데 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때, 신랑신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것처럼 "당신을 더욱 알기 원하고 더욱 사랑하길 원합니다."

그런 갈망을  갖으면
아주 감사한 과정과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건강하려면, 일상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대화하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연애할 떄의 인내와 배려라면 부부 간에도 예의를 지킬 수 있고

대화의 깊이도 서로에 대한 영향력도 성숙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모든 대화는 정직해야 하고 긍정적인 질문을 해 주고 유머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여기서 정직은 투명한 관계,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때때로 착한 거짓말이 필요한 거 아시죠?


뭔가 정성을 쏟은 흔적이 있으면, 무조건! 일단 ! 격려를 해 주고 인정해 줘야 합니다.

요리가 맛없어도... 설거지한 그릇의 포개기 상태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

무조건 수고했습니다...고맙습니다. 최고야... ^^


퇴근하고 피곤한데 "너무 힘들지?"  그런 질문 보다는 "오늘 뭐가 제일 감사해?"


너무 착한 재미없는 질문일까요?  암튼 그렇게라도 서로 하루를 듣고 상황을 객관화 시키기도 하면서

공감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시간이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

물론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고,

지치고 상한 때에는 침묵으로 그냥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머는 모두를 웃길 수 있는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둘만의 비밀스런 언어나
서로를 웃길 수 있는 거면 적당합니다. 


이렇게 사랑이 깊어지면 서로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주고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신비하고 유쾌한 경험입니다.

물론, 둘이기에 더욱 외로움이 클 수도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결혼하신 분중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부 간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거나 충족이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또 그 연장선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죠

개인적으로, 부부관계는 설레이는 연인에서 우정어린 친구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 지혜 --- 존중과 겸손

저는 남편을 아주 많이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 대단한 복이지요.

그리고, 결혼 후 남편을 알면 알수록 더 좋아져서 참 행복한 닭살부부였습니다.

그런데, 신혼때 남편이 학생이어서 시간이 좀 있었는데 제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 좋으니까

남편에게 아주 필요한
혼자있는 시간을 오해해서, 유치하게 섭섭해 하고 울기까지 했었습니다.

사실 저도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데

그 당시에는 종일 붙어서 대화하고 마주 봐야 사랑에 충실한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건 곧 지칠 사랑방법이었지요.

각자에게 고독의 시간도 필요하고
홀로 비어지고 채워지는 성장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존중하는 법 하나를 배웠습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 자기를 성찰하는 침묵의 산책시간, 공부시간 등이 필요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함께 나누고 채워가는 창조적인 시간을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둘이어도 여전히 한 인격으로서 홀로 있어야 하는 때와 방법에 대해 솔직하게 겸손히 대화하고

서로 존중하길 바랍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중에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다. 악기의 현은 떨어져 있기에 연주가 되고


성전의 기둥은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부가 한몸으로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3. 용기 --- 인간적 불완전함 ,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서로에 대한 신뢰, 기다려 주기

저는 육아를 통해서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한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전에나 신혼 때까지도 큰 실패나 자기 한계를 크게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첫째아이를 고상하게 키우다가
둘쨰를 낳고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심한 타격을 입고 그 충격이 꽤 컸습니다.


그렇게 아들 셋을 키우는 것이 분명 보통 일은 아닌데,

저의 문제는 내가 그래도 잘 하리라고 스스로를 믿었는데

그러기에는
심신이 아주 약하고 자기중심적인 욕구가 그렇게 강한 줄 몰랐다는 겁니다.


신랑신부는 청년기에 이상과 실천을 일치시키려고 남달리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보다는 성숙한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혹시 결혼생활과 육아과정에서 보람과 즐거움과 함께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낯선 충격이 찾아 온다면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 마시길 바랍니다.

그 동안 감출만 해서 숨길 수 있었던 내 약함과 미련함이 드디어 두꺼운 껍질을 벗고

하나님이 주시는
강함과 지혜로 새로움을 입고

"제대로 성장하려는 신호구나!" 하고 소망을 갖고 용기를 내면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생에 전혀 새로운 이정표가 생기면

선택의 기로에서 충분한 대화와 기도를 하려 하겠지만


충분한 시간과 준비에 대한 확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할 떄의 평안함을 알고 있지만,

두 사람 각자에게 준비되는 시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떄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참 중요합니다.

각자의 몫이 다르겠지만 그 때는 각자의 맞춤으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기다려 주는 시간은 지나고 보면 정말 의미있고 잠깐입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가려면 신뢰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희 부부와 신랑신부는 오늘을 준비하면서 3번의 만남을 함께 했고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저희 부부처럼 서로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름도 많다보니 그 대답도 차이가 있더군요.

신랑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함박 웃음을 짓고 매우 소박한 환상때문에 즐거워 했습니다.

신부는 생각하는 눈빛으로, 부모님을 시작으로 가까이에서 경험한 존경하는 부부들를 떠올리며

그분들 덕에 기대를 갖고 있다고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의 성장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의존이나 달콤한 만사형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소박한 즐거움으로 서로에게 기쁨을 줄 것이고 새 힘을 주는 쉼터를 함께 지켜 주고

감사를 나누며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꿈꾸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생기면 일상의 감사를 드렸던

하나님께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각자 고독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솔직한 대화를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관계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이끄심을 따라 믿음의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겸손히 경청을 하려고 합니다.

신랑신부는 많은 대화를 통해 아주 바람직한 결혼관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이미 사랑,지혜,용기가 결혼생활에 필수가치라는 것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건강하고 힘찬 시작을 예고하는 두 사람은 정말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사랑과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신랑신부와 늘 함께 하시고

앞으로 두 사람이 하나되어 겸손하고 용감하게 하나님 은혜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길 축복합니다. 
 
(이어서 남편의 주례가 이어지고 .. 자기 것은 올리지 말라고해서;;
내용은 사회적 관계에서 예수님 사랑으로 실천적으로 지킬 것을 끝까지 잘 지킬 수 있길 격려.
           사회적 소명의식과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균형있는 모습 강조,
           어른으로서 부모님과의 관계 독립, 진정한 효도와 바른 관계형성이 중요함.)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후기; 양가의 하객으로 정말 어르신이 많으셔서 주례의 형식과 우리의 연령이 적어 민망할 것 같아
        결혼식에 적절한 선택이 아닐 것 같아 시간이 다가올 수록 손사레를 치며 남편에게 홀로 하라고
        신랑신부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역시 하객은 3/4정도가 어르신이셨습니다.
        젊은이는 서있거나 애기 엄마들이 좁 앉아 있고 자리가 부족하여(하객이 많아)
        연세드신 어르신이 대부분인 거 같았습니다.
        나중에 신부에게 들었는데 입장하려고 잠시 서있는데 
뒤에서 어르신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        저기 앞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여? / 둘이나 올라가 있네/주례여? / 아니, 주례는 아니것지...
 -- 아마도 들러리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죠. 근데 왜 저기 섰나 하신게죠.  

   ^^암튼, 성인이 되어 참여한 일반 예식장 결혼식에서 이렇게 진지하시고 열심히 예식에 집중하시는 
  ㅎ~하객들은 첨 경험했습니다. 정말 하객 어르신께 감사했고,
  열심히 듣고 반응하는 신랑신부뿐  아니라 제게도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전날 원고를 다듬고 계속 들여다 보는데 오후부터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워하다가 애들에게 소리높여 설명했지요.^^; 낮은 음성으로 하면 효과 곱배기인데 잘 안 되지요.
  "아빠가 주례하시는 것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지만 엄마까지 곁에서 같이 하는 건 정말 우리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데, 너희가 조용히 이 시간 엄마를 도와야 이 영광이 가능하겠다.. 결혼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엄마가 말해 줬지? 엄마가 잘 준비 못하면 엄마만 망신이 아니라 결혼식을 망치는 거야. 정말 큰 일이겠지? 아빠엄마가 결혼식을 돕는 하나님의 도우미가 되는 건 참 멋진 일이야. 정말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니들도 그치?^^;;"  
아이들과 친정부모님의 초관심 속에 그렇게 전날을 보냈지요.(사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려다 피치못해 말씀드리고... 자랑스러우시기도 하실 테지만 쑥스럽고 걱정도 하실 것 같아서...)

 결혼식은 정말 흥겨운 잔치였습니다. 순서를 알차게 구성하고 준비한 신랑신부는 이제껏 친인척 가족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딸이었는데 함께하는 출발에서도 그들의 성실과 열정 그리고 재기 넘치는 사랑스런 모습은 지켜 보는 모든분들을 흐뭇하고 기쁘게 해 드렸지요. 둘의 커플송은 정말 압권이었어요.ㅎㅎㅎ 확실한 하객답례가 된 거 같더군요. 눈물을 훔치며 웃고 울고 눈을 뗄 수가 없어 하셨어요. 물론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의 고백과 결단(?), 자기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랑의 편지도 참 정성스럽고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짝짝짝 !!!

         그런 축복의 현장 가운데 초대 받아서 참 감사하고 가슴벅찬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미안한 것이 많은 성찰의 시간(보호해 주고 도와 주는데 넘 부실한 아내),
         40인생에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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