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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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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3 -강건한 사람 되기

2012. 7. 31. 17:41 | Posted by 허니즈맘

투표하셨지요? 이 질문은 넘 늦은 인사가 되겠군요^^

지난 6월 선거를 맞이하며 저는 평생 처음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유권자로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기다리는 공보물이 넘 늦으니까 길가에 벽보 붙이자마자 우산 들고 서서 얼굴과 이름  익히기부터 했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분별력을 갖고 책임있는 투표와 지지에 열심을 갖고 하나님 앞에 겸허함을 갖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후보자 토론회도 열심히 들으며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블러깅하고 또 퍼 나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후보를 잘 모른다 하면 입 아프게 설명도 해 주고 ^^; 선거 전날에는 꼭 투표하자고 지인들에게 문자도 마구 돌렸습니다.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일방적인 강요도 권유도 안 했습니다. 물론,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사적인 의견이 담긴 후보 소개를 하기도 했고요...^^;

제가 이렇게 나랏일에 초관심을 드러내는 국민이 될지 저는 예전엔 몰랐습니다. 나라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작은 후원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렇게 열심을 갖게 된 이유는 지난 선거의 충격도 있었고(저조한 투표율) 무엇보다 학교교육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저의 유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민감해진 것입니다.   

저는 부모가 되기 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육과 자녀양육에는 실제적 차이가 많아서 가치관이나 자존감에 적잖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공교육이 무엇인지 알기 전부터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에 더 매력을 느꼈지만 세 영역을 깊이 알기도 전에 물리적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에 순응했고 공교육을 택하는 학부모가 되는 보편적인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 5월호 도시락 <박하차 한잔>에 ‘학부모로 살아남기’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쓰고 연이어 ‘부모교육 특강’을 소제목으로 두 개의 강의(등대지기학교와 기독학부모교육)를 소개하고 부모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학부모라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그냥 앉아서 고객처럼 요구를 하고 당연히 누릴 것들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사회라서 교육조차 시장이 되어 경쟁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고 소비할 것이 풍부한 듯 하지만 여차하면 학부모들은 정신없이 휘둘리고 돈이나 정보없이는 소외층이 되고 주객전도의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학부모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학부모들의 교육철학(가치관)이 바로 서고 내 자녀를 지킬 뿐 아니라 엄마도 행복하고 더 나아가 이 땅에 바른 교육을 세워나갈 수 있는 희망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독학부모교육에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기독+학부모>의 균형이 잘 잡힌, 신앙과 공교육에 대한 가치개념이 바로 서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임원엄마의 학교현장  


제가 이번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학교에서 임원엄마로서 나름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고군분투한 경험입니다. 

학교에서의 기금마련은 어떤 면에서는 일,이십년 전보다는 아니어도 학교발전을 위해 또는 꼭 필요한 영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학부모의 학교 자원봉사는 꼭 필요하고 더욱 발전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찬조금을 비롯한 근절되지 않는 금전및 물량공세문제와 학부모들의 교내 활약의 부정인 모습들은 뿌리가 깊고 마치 이제는 없어도 되는 대들보가 자리를 내 놓지 않으려는 형세로 존재의 이유를 연명해 가고 있습니다.

학교의 공적 표명이 어떠하든 학부모들의 물량공세의 개입이 학교행사에 버젓한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 임원 엄마의 기부에 대해 자의든 타의든 부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소수 임원엄마들의 물량공세와 대접 등 본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임원의 타이틀로써 위해가 될 문화를 만드는 것들과 순수한 자원하는 마음의 미덕이 아니라 원색적인 생색내기 등의 악영향에 대해서 임원 엄마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지난 5월에는 학교 행사가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임원엄마를 비롯하여 엄마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큰 행사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회원인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벌어진 학교풍경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     

3월 초에 치닫던 긴장과 투지^^;;는 나름 안정되었고 3.4월 좀 바쁘게 그리고 머릿속보다 현장에서는 그리 치열하지 않게 큰 갈등없이 지냈습니다.

지난주에는 운동회며 연기되었던 바자회가 연달아 있는 바람에 학교에 자주 가느라 공사다망했습니다. 그 두 건과 함께 스승의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4월 내내(계속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랑 학급지원 입장이 다른 임원 엄마와 긴장모드라서 골치가 좀 아팠습니다. 아마 그 어머니는 저보다 더 골치 아프고 속 터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생각하며 저도 참았습니다. ㅜㅜ:;;

 

예전에 쓴 대로 우리 여회장맘은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었고 초등학교에 들어선지 오래니 고로 학급임원 엄마로서 나름의 노하우가 단단한 고수입니다. 제가 그 동안 모금이나 운영비 문제를 더 다루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말을 풀다보면 당연 그 분의 인격에 대한 비방과 저의 소소한 분노가 공공의 것처럼 둔갑되어 쏟아질까 조심스러워 자중하는 중이었습니다.

 

3월 초, 우리 학급운영비 제안을 무산시킬 수 없어 먼저 지출내역을 상의하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반 확 깎는 조치를 했었습니다. 그 분도 나름 양보하여 “분명히 모자랄 텐데 부족하면 나중에 모금을 더 추가하죠?” 뒤끝을 남기고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중순되니 대지출이 예상되는 어린이날 간식과 바자회 건과 스승의날...그리고 말로 옮기기 거시기한 두 건을 두고 그 분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니 부회장 엄마들 다 모여 더 모금을 해야겠다고 제가 단지 남자회장 엄마라는 이유로 결정권을 제게 넘겼습니다

(한번도 그걸 주장한 적이 없지만 그것도 관행이라 하네요, 배려였을까요? 이 경우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기록해 놓은 걸 보니 이미 우리가 하지 않기로 한 건을 제안한 거여서 어찌 거절하는 게 맘이 덜 상할까 고민하던 차에 학교가 저를 많이 도왔습니다.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 전에 학교 공문이 왔습니다.

<불법찬조금 모금하지마라 / 어린이날 선물 넣지 마라 / 운동회 기념품 맞추지 말아라/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 간식 주지 말아라/... 스승의 날 선물과 꽃, 대접 등 하지마라..>

ㅎㅎㅎ 그런 공문을 들이밀며 “하지 말아야 한다” 하니 “그런 게 왔어요? 우리 애가 안 보여 줘서 몰랐네요” 하시는데 사실 저는 5년째 그걸 읽었고 대부분의 지원책 엄마들은 그걸 무시했고 학교는 복사비 낭비했던 겁니다. 저랑 그런 대화가 오가는데도 그 분의 절친은 옆에서 기념품 맞추러 동대문 같이 가자고 합니다 --;; 제가 그런 한 가운데 있자니 이제껏 나랑 놀던 엄마들은 다 어디가셨나... 패싸움 하고 싶은(물론 심리전^^;) 유치한 심정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전 생전 안 해 본 언행 많이 했을 것입니다;;

 

어린이날은 제가 처음부터 주장한 얼음물 가져가서 먹이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초등학교나 1학년 엄마들이 극성인데 한 학부모가 교육청에 신고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혀 선물 사놓고 못 주고 회장 엄마들은 속병 나고... 1학년 어떤 반은 그 선물을 열흘이 지나서야 기어코 나눠 주었더군요. 한 꾸러미가 족히 만원은 되어 보이던데....

낼 ‘스승의 날’ 건은 제가 어이없이 좀 양보했던 건인데 그제 공문이나 어제 알림장을 통해서 학교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했는데... 기다리다 지친 여회장맘께서 아침에 전화하셨길래 공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낼 가신답니다.

“그럼 **엄마는 낼 가는 것에 대해 뭐라 마세요. 다른 엄마들이랑 갈거니까요”

“네~ 제가 뭐라 하겠어요. 개인적으로 하시는 거죠? 공적으론 안 합니다.”

아이구~~ 이게 뭔 시베리아에서 조깅하는 시추에이션입니까!!!

제가 사람 마주하고 이런 냉랭한 대화를 하는 것이 영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거든요 ㅜㅜ

 

우리 학급 임원엄마들의 성향은--

여회장맘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뭐든지 다 할 거에요” 극단적 물량공세 생색내기.

남부회장맘은 “미안하니까 난 재정은 말하시면 다 도우리라” 하시는 아리까리 직장맘

여부회장맘은 “제발 강하게 밀어 붙이셔서 뿌리 뽑아 주세요. 왜 이리 괴롭히나요? 직장 다니는 엄마한테 미안한 맘 주는 거 자체가 틀렸어요. 불필요한 지출이 무슨 덕이 되나요? 내 이래서 임원 나가지 말랬는데...” 왕 부담되는 날카로운 개인주의 직장맘.

이런 가운데에서 조율하는 게 제 일이었는데 여회장맘과는 다들 상당히 적대적이고 제가 뭐라고 학교일 달인이신 여회장맘께 의의를 제기하면

“그럼 **엄마가 다 알아서 하세요. 한번 해보시면 아실 거에요”

존댓말 겨우 차리고 만화책에서나 볼 듯한 상황설정에 대화 뉘앙스 아주 불쾌해지기 쉽죠. 그래도 전화가 낫더군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엄마인데 나이대접 받을 생각 전혀 없었지만 때때로 오기가 나는 상황에서는 나이를 내세우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소소한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구~~그래도 그 분은 저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미워도 그분의 두터운 인간관계로 절친이신 같은 반 어머니, 두 분이 학급 일을 도우셔서 행사들을 세 건이나 무사히 넘겼습니다. 착하신 의리파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전 정말 쌩고생이 뭔지 첨으로 체험했을 겁니다.

전교어린이회 모금 건은 저의 제안으로 모두 놀라서 (물론 회장엄마랑은 좀 설전하고) 모금 안하기로 했는데 제 지인들의 말로는 아마 저만 빼고 자기들끼리 모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네요. 제 (모금)분량을 다른 사람들이 더 지고 갈 수밖에 없다면 좀 미안해지기도 하는데...이 판국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고 조언들을 하더군요.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교장 선생님과 교무주임 선생님의 학부모들에 대한 일관된 처사와 상당수의 담임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사양노력에 감사드립니다.(일부러 장문의 편지를 쓰셔서 왜 선물과 꽃조차 사양하시는지 정중히 마음을 전하십니다. 알림장에라도...) 웬만한 선생님들은 엄마들이 들이밀면 못 이기시고 그냥 받으십니다. 그러고는 뭘 바라시는 선생님 대우를 받으시고 엄마들 정보족보에 올라가십니다. 학교의 물량공세 엄마들 행보의 악순환은 대개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큰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왜 이런(같은 내용) 공문이 자꾸 나와요?” / “중요한 지침인데 잘 따르지 않으니까 때마다 강조하시는 거지.” / “그냥 안 하면 되는데 그걸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아이들은 학급에서 엄마들이 주면 좋은 게 좋은 거라 받고 없으면 말고 별 생각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공적인 지침과 일반적 선택은 달라도 되는구나’ 그리고 ‘왜 저 선생님(엄마)은 규칙을 지키지 않지?’ 존경심에 위험요소가 생기겠지요.

 

저희 학교는 강북에 넉넉하지 않은 동네에 있습니다. 새 교장선생님이 3년 전에 오셔서 각고의 헌신으로 시와 구에서 지원을 받아오셔서 대대적인 물량적 개선을 이루셨습니다. 그 전의 교장선생님은 말하면 입 아픕니다. 분명 우리 학교는 아직 개인적 기부금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제 안목에서는 부족한 것이 큰 불편도 아니고 흠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맘이 절실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몇 학부모님들의 개탄할 작태와 객관적으로 호평 받을 수 없는 지원 방법들은 아주 많이 본질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들이 확실합니다. 3월에 교장선생님께 편지 쓰려던 내용도 그런 것이고 특별히 임원엄마들 부모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시고 공적인 통제를 일관성 있게 또는 강경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려던 겁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에게(다른 일로 교육청신고에 놀라신 직후) 넘 깊은 상처나 오해가 생길까 봐 제가 참고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저의 간절한 맘이 닿았는지 일관된 공문의 효과는 몇 년 지속되니 이제사 좀 더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엄마, 선생님이 학교엔 꽃도 편지도 가져 오지 말래”

둘째 아이가 말합니다.

“옛날 피아노선생님이랑 영어선생님, 유치원 원감선생님,

지금 태권도 사범님한테는 드려야지...”

 

참 답답합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중요한 걸 지키려다 그만큼 중요한 걸 잃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알림장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쓰신 분들도 계실 테고 사무친 뉘앙스(‘스승의 날’이 불편한 스승)도 느껴지고 샘들의 인격은 무시된 획일적 방안이 저도 참 씁쓸합니다. 금전이나 선물의 부담없이 창의적으로 ‘스승의 날’을 즐겁고 감사가 넘치는 날로 추억하게 하시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으십니다.


공문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는 엄마들은 자기의 소신을 믿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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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덧붙이자면 ‘스승의 날’에 엄마들은 학교에 가서(모든 엄마가 그러신 건 아닙니다)

무엇을 하시냐면요, 큰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 가지고 교실에 가서 촛불을 키고 스승의 은혜를 아이들과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 케이크를 나누어 먹거나 선생님께서 갖고 가시도록 합니다. 저도 그러할 뻔 했는데 공문에 따라 일관되게 해 버렸습니다. 선생님들의 입장은 잠시 흐뭇하실 수도 있고 옆 반에서 들리는 노래와 박수소리에 좀 섭섭하실 수도 있지요. 그런데, 수업시간에 가서 일관된 행사가 아닌데 위화감을 조장하고 더구나 학교의 공적 입장이 분명한데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어떤 개념인지... 선생님을 존경하는 진정성의 굳건한 표현일 뿐인지...이번에는 대부분의 학급이 공문에 따라 행동했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회장엄마의 결정에 따라 불만이어도 못이기는 척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긴장상태가 힘들어서 그냥 돈 모으자 할까 싶다가 그 어머니께서 절 열받게 하시길래 좀 오기가 나서 버티는 것도 있었습니다. 애초의 "긍휼"은 온데간데 없어져서 죄책감도 만만치 않고요. 제가 이리 애써도 저와 가치관이 다르신 그분들은 커녕 학교문화가 쉬이 변하지 않을 거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리고 뒷담화는 들려옵니다. 욕하다 장수하실라나? ^^;; 피해의식도 좀 늘고 스트레스는 확실히 있습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살아남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학교의 주류인 엄마들은 뒷담화를 풀든 어쩌든 학교에서 내 자식 위하야 살아남은 엄마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보기에 현실성 떨어지고 뭘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은 매우 귀찮은 한번 지나가는 일종의 객입니다. 저도 그런 부류인 셈이고 제가 지금 혼자인 거 같은 느낌인 이유는 전승되어 온 주류와 시비를 두고 맞섰던 엄마들은 이미 지치거나 귀찮아져서 공교육에 이를 갈며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분들은 유유히 남아 무지하게 수고하는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저도 앞으로 아이들이 임원이 안 된다면 저만치 서는 엄마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현재는 이것이 제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련해 보이는 입지를 지키고 있지만. 그저 앞으로는 봉사할 일 있으면 해야겠고 내역을 듣고 돈이 필요하다면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제가 임원엄마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원 엄마는 돈 쓰는 엄마라는 타이틀을 끊고 싶습니다. 제게 결정권이 있다니 말입니다 ^^:; 암튼 반에서 어려운 일을 당한 학생을 돕거나 여행비를 돕는다든가 그런 취지의 일을 제가 추진은 못하지만 모금이란 그럴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소수의 생존


이렇게 회장엄마를 처음하면서 그동안 우리 반 회장엄마들이 참으며 가려주고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잘 못 느꼈던 깨달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임원을 하려면 엄마의 지원이 꼭 필요해서 직장맘은 맘을 졸이고

가난하면 돈 없어 땡빚이라도 내어야지 생각하고 자기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고 위축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은 잘못된 상황.

 

“나도 직장에 휴가 내며 돕는다, 나도 없는 돈이지만, 애를 위해서 감수하는 거다.

 내 돈도 아깝다“ 라고 다른 학부모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부모들은 아주 위험.

 

제가 재정적으로 좀 여유로웠다면 아마 전 별 고민없이 돈을 내고 돈의 쓰임에 대해서는 좀 촉각을 세우되 직장맘과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둔감했을 겁니다. (빠듯함이 동력이 되기도 하니 열심히 공공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유익한 것 맞는 것 같습니다.)


학급임원은 재정적 물리적 엄마도우미를 확보하기 위한 담보가 아닙니다. 심한 표현인가요? 학생의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시면 임원 후보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거결과 그런 조건의 학생이 임원이 된다면 투표는 학급 친구들이 했지만 다른 엄마들은 그런 결과에 대해 난색을 표합니다. 초등학교 임원 선출이 말하자면 돈 쓰며 학교일 도울 임원엄마선출이라는 것입니다. 임원에 대한 인식이 해를 거듭하면 학생들도 분위기 파악하고 알아서 후보에 나가지도 않고 선생님의 권유로 억지로 나갔다가 선출이 되면 집에서 당황해 합니다.

고학년이 되면 임원의 반 정도는 엄마의 지지를 받고 나가는데 나머지 반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우리 아들도 사실 제가 말렸는데 애가 포기를 안 하길래 나중에 넘 미안해서 그럼 해 봐라 말을 바꾼 경우입니다.


학교에서 학급임원 학부모와 학부모의 재정적 물리적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별개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소용되는 모든 재정은 공립학교라면 더욱더 학부모와 무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지키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학기를 지내면서 제 아이가 임원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는 과정에 제몫을 하게 하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확신을 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등대지기학교를 경험하게 하셔서 눈을 들어 집 밖을 보게 하셨고, 제 아이로부터 더 많은 아이를 보게 하시고, 교육의 본질을 보며 학교와 사회에 건강한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갖게 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번 학기에 임원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 현장에 서지 않았을 것이고 제가 배운 것은 그저 고급 지식일 뿐 빛을 잃었을 것입니다.



* 관찰자에서 현장 참여자로


현재 공교육은 큰 아이 1학년 때에 비하면 외형적으로 변할 뿐 아니라 노력하는 양상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성실과 노력으로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 가운데 그 변화를 일구어 가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학교는 소소한 행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배려하는 수평적 관계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여전히 권위적이기만 하고 학생들에게 비인격적인 소통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고 학교의 공적인 입장이란 것이 매우 방어적이고 구태의연하기도 하지만 학부모의 바람과 요구의 수렴이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지난 몇 년간 학교는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직 저는 소위 퇴출감(?)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고 사교육도 운동뿐이고 성적 상위권을 고수하라고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으면서 유유자적(?ㅜㅜ)하는 품세로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일상에서 신랄하게 통감하지는 읺았습니다.

      

저는 학부모가 되고 여러 분의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주 훌륭하신 선생님도 만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게 넘치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과 두 분의 교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중심으로 많이 노력하시는 분들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전화를 하는 엄마입니다. 학교에서 아주 부담스러워 하는 엄마지요. 교육청에 전화하는 엄마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전에 학교에 문제제기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합니다.

한번은 공문관련해서 받는 학부모에게는 형식적일지라도 학교의 공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 주시는 노력에 대해 감사전화를 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은 참 불편한 상황이라 하시면서 노력을 인정해 주시니 참 격려가 된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두번째 전화는, 임원엄마들 내에서 소통이 안 되니 죄송하지만 학교 입장을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강경하게 표명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서로가 민망하고 불편한 내용의 전달이었지만 역시 또 한 분의 교감선생님은 매우 성의껏 답하시고 다시 조치를 할 것이라고 전화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저 보고 넘 순진하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큰 아이가 저학년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누구나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애쓰는 길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서 쓰레기통이 있든 없든 휴지를 집어 들고 두리번거리며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가던 길이 너무 바쁘면 때로는 지나칠 수밖에 있고 다른 것에 집중해서 못 보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무심히 또는 귀찮아서 길에 뭔가를 버리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제 행동은 하나마나한 것이었을까요?

        

제가 직접적으로 현장의 부담을 경험해 보니 오히려 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보화시대를 넘어 디지로그 시대를 잘 살아보자고 하는 시대에 과도기적 모습은 산재되어 있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창의력이 최고 능력이라는 기준도, 경쟁과 성공이 물질만으로 치닫는 것도, 더 좋은 것, 편안한 것, 자연스러운 것 ... 진리는 분명하지만 선택의 주체는 참 복잡하고 부담스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들목에는 학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학교에서 제가 부딪긴 경험과 제가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시거나 오해하셔서 맘이 불편하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데에는 학교가 혼자 노력해서는 공교육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나들목의 또다른 이름 “더불어 함께”를 생각해 보면 공공의 개념들이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공감하실 텐데 부디 나들목 학부모님들이 건강한 학교를 세워 나가는데 주어진 자기 몫을 은혜로 감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성장할 때 매우 유약하게 자란 사람인데 엄마로서도 터무니없이 무력하고 게으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좀더 강인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가 되었습니다. 제게 “치열하게”라는 말이 항상 부담스런 슬로건이었는데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핵심어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라면 참 외롭고 감정적으로 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진정한 도움과 위로와 격려가 되어 서로 세워주는 기쁨으로 약동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디도서3:1~8)


 *지난 5월 분까지 2개월 분을 한꺼번에 올린 듯 너무 긴 글이라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박하차 한 잔이 아닌 두 잔은 마실 시간을 내어주신,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