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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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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어르신께

2010.12.16 21:25 | Posted by 허니즈맘

나들목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주신 이승호어르신께서 갑자기 오늘 저녁 소천하셨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ㅜㅜ
갑자기 맹추위가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부고 소식이 들리는데...
지난 주일, 늘 앉으시는 자리에 두분이 안 계실길래 주초에 꼭 전화문안드려야지 했는데...
이 정신없는 내가 까맣게 잊었다.
정말 너무 죄송하다.
인사드리러 간 게 몇주 전인가, 한달 전인가..
여전히 안색이 좋아 보이셨는데...
권사님 말씀은 이제 영 안 좋으시다고 하셔서
전혀 그렇게 안보이신다고 한주 기운 다 아끼셨다가 오시는가 봅니다
참 건강해 보이신다고 철없는 소리 했는데....
많이 죄송하다.

벌써 몇년 전, 어르신께서 내게 묵직하게 출력한 원고를 주시며 
손자가 크는걸 보고 쓰신 육아일기라고 읽어보라고 선물로 주셨다.
뒤늦게 드린 감사편지를 다시 올려 본다.

"이승호 어르신,
만 3년 동안 위암선고 후 수술없이 기적같이 살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 은혜로 감사드리고,
말없이 견디신 고통 중에 주일예배를 함께 해 주신 그 진정과 정성에
하늘가족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고통없는 하나님의 집, 어르신의 본향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승호 어르신, 부인 되시는 천필순 권사님.  나들목 가.교 나눔터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하늘천사님 올리심,    2008. 7.  이화 가정교회)



이승호 어르신께

안녕하세요? 조영권 목사의 처되는 박혜성입니다. (꾸벅)
보내 주신 귀한 선물 받고 변변한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해 지난 이주 동안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주일 1부 예배 마치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2층 멀찌감치 자리한 데에다 굼떠서 두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막내가 찬양까지 드리고 유치부를 가는데 요즘은 좀 목소리를 키우고 장난을 쳐서 2층 뒤로 갑니다. 어른 예배 분위기를 사모하고 여러분과 인사 하는 걸 유난히 즐거워해서 위의 형들과 달리 특혜를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늘 앉으시는 곳에서 곧은 모습으로 말씀을 경청하시는 두 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고요...... 예년과 달리 5월치고는 상당히 바람이 차가워서 감기나 건강에 어려움이 더하시지는 않나 짧은 걱정도 했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늘 만면에 함박웃음 가득하신 다정함과 여운이 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자상함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냥 든든함과 친밀함으로 지원해 주시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좀더 자주 가까이 가서 뵙고 안부를 여쭙고 해야 하는데 하는 일 없이 분주한 젊은이의 변명만 앞서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분을 처음 뵌 지도 좀 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부터니까요. 소망관 1층 좁은 복도에서 어르신을 자주 뵈었고 어쩐지 좀 낯설어 불편하신 듯 보이셨지만 (나중에 김목사님 외삼촌이시라는 걸 알았어요) 꾸준히 은혜의 자리를 지키시는 특별한 분들로 인상에 남았고 저의 인사를 늘 반갑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림에 와서는 권사님께서 봉사하신 밥도 많이 먹었지요.(정말 수고가 많으셨지요)      

어르신께선 참 건장한 체격이시고 밝은 인상이신지라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대로시네~’ 싶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천권사님과 이권사님께서 “그래도 통증이 없는 편이니 참 놀랍고 감사하고 다른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심신이 편하실 거야” 말씀하시니 저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통증이 있다니까 맘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썰렁한 대강당 한기 들이치는 1층 그 쪽 자리가 좀 염려스러웠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예배 드리시는 모습은 여전히 힘있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짧은 걱정과 분주함으로 수선 떠는 제 자신을 무색하게 하시고 저에게 격려가 되어 주셨지요.

 “내가 세 아이들을 위해 줄 글이 있는데......” 뜻밖의 말씀에 한자로 뜻깊은 시를 써 주시려나 감사하면서 약간 긴장도 되었지요.(못 읽으면 어쩌나^^) 이제껏 어르신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은 모르지만 한시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서요. 예전에 <도시락>에 기고하신 걸 기억합니다. 
 
2주 전, 저녁이 다 되어서야 교회를 나서는데 남편이 건네준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저는 시댁에 가는 동안 내내 주신 ‘선물’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첫 손주에 대한 할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순수하고 애틋한--에미애비가 흉내도 낼 수 없고 아주 오랜 훗날에야 가능할--사랑이 옥구슬처럼 정성스럽게 그리고 성실로 한결같이 꿰어져서 몇 해동안의 시간이지만 어떻게 처음처럼 계속 그러셨을까~그 마음과 특별한 손길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의 시부모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도도 특별하지만 첫 손주가 아니고 어릴 땐 지금보다야 자주 뵈었지만 아이들의 양육을 가까이 보시지는 못하셨고 목회가 늘 우선이셨기에 저는 가까이 사시는 친정 부모님의 외손주 사랑을 익히 보고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큰 아이는 외가에서 나고 제가 좀 부족해서 친정 어머니의 손길로 크다시피 했습니다. 아이를 셋 낳았지만, 말 그대로 그 사실이 벼슬처럼 저를 유하게 보이게 하는데 사실 모유수유만 잘 했지 살림도 아이 건사도 여직 잘 못 합니다. 어미가 머리 속만 뭐가 가득하지 몸이 민첩하지 못해 아이들이 고생이고 더불어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지요.
아이 셋 양육도 사실 친정 부모님께서 가까이 계셔서 함께 고생해 주신 것이고요. 제 친정 아버지의 손주 사랑도 참 특별하셔서 자랑스럽고 존경합니다. 큰 아이가 몇 개월 차이로 손주로는 둘째이지만 외조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지지는 아이에게 참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우 둘 보는 동안 제가 상처를 많이 주었지요. 
 
시간이 지나가니 아이들이 크고 이제 좀 낫냐(몸고생)는 질문을 들으면 물론 매작년보다 낫다고 하는데 둘째가 입학하고 큰 아이랑 제가 서로 모나게 닮은 꼴이라 심신의 고단함은 만만해질 기미가 없는 형편이라서 제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언제나 적신호가 옵니다.

 <세 아이들을 위한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어르신께서 그 글 쓰실 때는 아직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으셨을 때 같은데
아마도 그 이유는 어르신의 가슴에 사랑이 많고 선함이 남들보다 더 풍성하셨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정곤이의 일상이 조부님의 희노애락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권사님의 한 말씀으로 정곤이의 일상을 대변하시고 두 분 삶의 생기발랄한 주인공으로 정곤이를 세우신 것도 이미 품고 계신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어르신의 생이별한 조카에 대한 이야기에 젖어 있는 그  진실하고 수십 년 후에도 생생한 애틋한 사랑은 저를 울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예수님을 믿기전후 다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 안에 사랑이 부족함에 당황 절망하고, 희생없는 사랑의 부질없음에 아연해 하고 비로소 저의 죄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큰 고생 없이, 어려움은 피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제 속은 어리고 이기적이고 부실하기 그지없는데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여서 쉽게 살아 왔던 겁니다.  
요즘도 저는, 사모로서 공동체에 대한 영적 부담감과 거룩한 사명으로 불타기 보다 집에서 아이 셋과 고군분투하며 성령에 의지 못하는, 자기부인을 제대로 못하는 저와 싸우며 고단해 하고 있습니다. 사모로서 의연하고 일꾼으로서 승승장구하는 힘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는 못할망정 궁상스런 소리나 하고 있지요? 
공동체에 대한 영적 부담은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다루시는 연단은 자녀양육에서 가장 뚜렷하고 집중적이고 영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고, 최첨단의 맞춤 자녀양육을 한다손 치더라도 인격적 반응과 끝없는 인내와 희생 없이는 자녀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걸 통해 저도 자라고 저를 통해 공동체가 영향을 받고......

사랑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야 온전함을 입고,
그 온전함을 따를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고           
그 은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순종할 때만 누려진다는 것입니다. 

어르신!  자녀에 대한 아니 그 보다 더한 손자에 대한 사랑을 어느 조부보다 깊이 누려 보셨으니 감히 짐작컨대 아마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그 공의와 사랑 긍휼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정곤이와 지원이도 벌써 중고생이 되었겠네요.
어릴 때 체격도 좋고 총명하고 활달했던 정곤이가 키는 조부님만큼 컸을까요?
 
저희 아이들도 그렇게 훌쩍 커 버리겠죠?  순식간인 듯 싶지만 엄마의 지극한 따뜻한 사랑과 현실적인 시간을 먹고 자라겠지요? 
헌이(獻) 삼형제에게 주시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저희 부부를 귀하게 여겨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에 나누어 주신 축복과 지혜처럼
자손들에게 믿음의 유업을 전해 주시는데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가족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소망 가득한 기도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는 삶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분의 삶이 영육이 더욱 강건하시고

사랑과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그 비밀한 축복,
평안을 가득하게 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2008. 5. 18
                         조영권 목사의 아내, 귀승정헌의 엄마, 박혜성 올림
             






 

박하차 한잔2 - 부모교육운동

2010.04.12 10:48 | Posted by 허니즈맘


 

+ 학부모로 살아남기



도시락 3월호에 <박하차 한잔> 시작하고

지난 4월호에 원고 마감을 못 지키는 바람에 한번 건너뛰었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라면 3월은 가장 할 말이 많은 때인데...

지나고 보니 제가 경솔히 너무 많은 말을 할까 싶어

오히려 쉼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월을 생각
하면 참 제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하네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드디어 1,3,5학년 된 초등학생 삼형제의 엄마에게

지난 3월은 참 바쁘고 또 머리도 좀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학급 임원선거, 임원엄마 모임(?), 전교어린이회 선거, 또 엄마 모임(후원),
 

각 학급 총회와
연이은 공개수업(총회와 공개수업이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쪼


개어 학교 아래 위층 뛰어다님), 청소, 녹색어머니회(아이들 등교 시 신호등


앞에서 깃발 드는 봉사) 등등...

자발적인 것도 있고 아들의 선택에 편승된 것도 있고...

저는 좀 예민해서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그러시진 않을 겁니다.

넉넉히 지켜보며 보듬으며 아이들과 함께 3월을 설렘으로 맞으시고,

보람을 맺을 건강한 긴장감을 즐기는 가정도 있습니다.

저는 바쁘고 머리 아픈 것을 넉넉히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이 과정이 성장과정이라는 것은 알기에

정신없이 지나치거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나름 긴장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제게 맡겨 주신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때때로 피하고 싶은 상황(학교 내에서의 학부모들의 관례)에


직면하고
가까이 뜻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격려도 받으며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부모교육(등대지기학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함께 성장하고자 나눔을 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매우 집중적으로 저의 부모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내 인생의 현재 좌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욱 성장하고자 새로운 첫발을 떼는 전환점이 되었고

현실적인 기대와 소망이 다져지는 내 안에 힘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줏대를 사용하고 내공을 쌓는 수련의 길에 접어 든,

갈 길을 아는 나그네로서 희망차게 출발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종의 부모교육 시민운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영향은 제 일상에 성경적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준 것 같습니다.




현재의 나와 아이들을 돌아보면,

배운 것을 적용할 것을 한걸음씩 실천하며

교육방법이 체질이 개선되길 염원했는데

변화는 들음에서 나는 것 맞지만

속사람이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가를 다시금 절감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로서

학부모 선배의 역할을 해낼 때면,

자녀교육의 방법적인 분별에 대해

좀 더 선명한 지도를 읽고 안내하게 된 거 같아

듣고 배운 선경험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변한 것을 느끼는 부분은

제가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심정이 더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제 소신을 지키려다 남을 무시하거나

나도 모르게 우월의식(내 것만 옳다)을 드러낼까 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의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가치기준이 크고 작게 달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첫 매뉴얼을 잘못 전수받아 왜곡된 습성을 갖은 학부모들...

저나 그분들이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경계심도 많고

방어적으로 나름의 기술을 펼치는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한 그 분들의 속사정을 생각하면 불쌍한데

언젠가 옳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을 알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부딪쳐서 꺾어야 한다는 그 방어적 적대감이

제겐 가장 큰 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딪치는 건 불가피 하지만, 꺾이든 꼿꼿하든

그것은 제 몫이 아닌 그들의 문제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과정으로 인정하니

저의 용기와 도전이 허무하거나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는이에 대한 애틋한 맘이 좀 더 확산 된 거 같아

3월은 제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모교육 강의



저는 듣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성향에는 개선의 타진이라는 긍정적인 부분과

들은 걸로만 만족하고 과제가 해결된 듯 착각하는 부정적인 속성이 있지만,

자녀가 성장할 때 같이 성장해야 하는 부모에게

계속적인 배움은 꼭 필요합니다.



이젠 어떤 강의는 진부하게도 들리고

제 안에 고인 물이 귀를 닫게 하고 마음도 굳게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체성 문제

그리고 그 갈등과 무지의 심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끝이 없습니다.

반복적인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지름길도 정답도 없기에

우리는 안내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었던 등대지기학교는 지금 4기가 4월에 개강했고

5기는 올 가을 11월에 시작될 예정인데 적극 추천합니다.

그곳 강의들은 일관성 있게 내 삶을 성찰하고

개념을 새롭게 해 주고 건강한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근간을 튼튼히 하라고 격려합니다.

현 교육과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무력감에 허덕이는

부모와 교사에게 힘없는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약하지만

그 아픔을 아는 우리가 함께 바로 서자는 등대지기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현 공,사교육 실태에 대한 연구자료 분석을 통한 평론으로

사회적 안목을 갖추도록 지원해 주고.

건강한 가치방향을 튼튼히 해주는

신앙적, 정신적, 정서적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우리 나들목교회에서는 4월 말부터 5월까지

<기독 학부모 교실>이-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열립니다.

역시 부모인 나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교육의 본질과 자녀에 대한 성경적 이해, 자녀교육 방법(예배, 성품, 은사 등)

그리고 부모교육 운동과 하나님 나라 확장(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배우고 소그룹모임을 합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기도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제대로 살아갈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배우기도 힘들고

제대로 배워도 제대로 사는 것이 녹록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배우지 않으면 무지의 걸림돌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횡포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계속 성장합니다.

요즘 성장통은 예전보다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삶의 필터에 오염이 심해서일 겁니다.

부모도 성장통이 있습니다.

그건 부모도 살아있고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아가자면

그 괴로움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성장의 동행인으로서 이해하고 세상을 줏대있게 살아간다면

성장통 주께 드리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우리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삶들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으며

건강한 성장을 더불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디도서3: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추모종 (사진/최문철님)

막내가 입학을 했다.
드디어 우리 삼현이가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1,3,5학년...

예전에 큰아이 친구네, 삼형제네처럼 그 미션이 내게도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매년 <생활지도 기초자료> 라는 걸 써오라고 한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환경조사서>라는  것에 부모님 학력과 직업뿐 아니라
집에 가재도구, 가전제품을 얼마나 갖추었는지 표시해서(때로는 거수로ㅜㅜ)
경제력까지 분석접수를 하는 낯뜨겁고 불편한(상처를 주는) 통과의례를 치뤘다.

요즘은 부모님 학력이나 직업란이 없어졌다.

또 바람직한 변화라면

기본적인 아이에 대한 정보(취미, 특기, 성격, 장래희망)에 덧붙여

아이의 기호와 습관, 티비시청 습관, 샘께 하고 싶은 말을 쓰게 한다.  


나는 3월 초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 중 하나가

<생활지도 기초자료>를 성심껏 작성하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쓰고 심지어 복사해 놓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 해에 아이의 변화된 상황을 비교해 보고

적당한 표현은 다시 인용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내겐 매우 진지한 과제이고 의미까지 있는 시간인 것이다.

  

정헌이는 잘 해내리라 믿지만 좀 까불어서
아무 때나 친구들 웃기려고 애드립을 해서

샘께 폐를 끼치고 떠드는 아이로 찍힐 까봐
유치원 졸업식 이후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 정헌이가 얼마나 사랑스런 아이인지

주책스럽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려고

형들 때처럼 애써 보았다.


나의 취미 : 책읽기, 장난감 역할놀이, 종이접기, 만화그리기.

나의 특기 : 배려, 도와주기, 기도, 음악듣고 익히기, 친구들 웃기기. 

나의 성격 : 밝고 명랑, 장난끼 많으면서 진지함.

장래 희망 : 태권도 선수 (도장출입 이틀째^^;)

좋은 습관 : 질서의식, 불공평한 것 조절, 손씻기

나쁜 습관 : 손가락 입에 넣기 (심심하거나 집중할 때)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꿈을 발견하고 꿈이 자라길 바랍니다.

정헌이는 주변인들을 웃기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애드립을 잘합니다.

수업시간에 폐를 끼치고 야단맞을 때 충격(?) 받을까 걱정입니다 

(혼날 일에는 당연히 훈계를 받아야지요).  

사실, 정헌이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서

누구나 자기를 좋아해 줄 거라 믿고 쉽게 사귀고... 정이 많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 이름을 자주 불러 주시고, 많이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넘 길게 쓴 걸까?^^ (사실 형들은 더 길다)

그런데, 내가 만난 샘들께서는 나의 이런 진지한 태도를

잘 받아 주시고 좋아해 주셨다.

아이가 특별대우를 받은 건 아닌 거 같고^^

암튼 상담을 할 때 샘들께서 아이를 관찰해 주시고

아주 깊은 대화를 해 주셔서 감사했다.  

 

초등학교는 입학하고 첫 주에는

수업이 1시간 반을 채우지 않기 때문에
엄마들은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름 유익한 수다를 떤다.^^

이제, 처음인 1학년 어머니들...

내가 좀 나이 들어 보이는지 ^^;  

첫 아이 안 같은지 내게 질문을 한다.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은 좀 하고 말도 많은 나는

준비된 멘트인 양 질문에 답 술술~ 덧붙이기도 길게~.

(두번째 만난 엄마에겐 '등대지기학교'를 권한다^^)

 

1학년 아그들이 부디 학교에서

행복한 첫 해를 살아가길 바란다.

이를 위해 새내기 엄마들도

건강한 친구를(새로운 학부모친구) 사귀어야 하는데

부모도 자신을 위한 생활분석(지도^^:) 기초자료를 쓰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나도 써야지...;;

좋은 친구를 만나길 기대할 뿐 아니라

“좋은”의 개념을 진실하게 해서

세상의 대세에 휩쓸리지 말고 줏대있는 부모로서

앞으로 계속 아이와 함께 꾸준히 성장하길 소망하며 

이 첫해를 서두르지 말고 한걸음 마다 작은 경험들을 격려하고 

사랑과 지혜로 보듬어 가길 바란다.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그렇게

내 인생에 다시 안 올 1학년 엄마를 누리고 싶다.

 

박하차 한잔 드실래요? ^^


박하차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박하차 마니아는 아니고요, 가끔 커피를 안 마시는 지인들이 집에 오면 별미로 함께 마시곤 합니다. 박하차는 카페인이 없고 그 싸한 성분이(멘톨) 치료 효과가 있는 데에다 감기를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니 참 착한 차 같습니다. 


“박하차 한잔”...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블러그 문패입니다. 전 블러그를 만들 때 쉼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박하차 한잔을 마신 듯 또는 누군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눈 듯 삶을 누리고 나누며 기쁨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맘이었습니다. 블러그는 늘 저에게 자기성찰이 가능한 소박한 책상과 애착이 담긴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ㅎㅎ 나누기에는 부끄러운 자아도취와 때때로 힘겨운 자기부인을 다룬 잡다한 글들뿐 입니다. 그런데, 이 블러그 덕분에 도시락팀의 영광스런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고정란을 맡아 도시락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가문의 영광이네요.


지난 해 남편이 <라면파티2>를 개업하면서 나들목의 많은 가족들께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힘입어 기적의 1년을 살아내면서 남편은 도시락에 1년 내내 고정란을 맡아 <라면파티2>를 운영하며 경험한 단상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풍성히 누렸습니다. 남편이 고정란을 접자마자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좀더 겸손해질 수 있는 과정이 되길 소망하면서 고정란을 맡았습니다. 왜냐하면, ‘글의 내용과 논리나 표현력이 빼어나야 공적인 자리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적어도 자신에게 자숙을 빙자한 소심함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많이 부끄러울 것이고 그 나눔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이나 문제의 직면은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접목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성이 안팎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제가 앞으로 박하차를 함께 마시며 나눌 이야기는 “자녀교육” 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한 “교육”이라는 키워드...

익숙해도 별로 좋은 감정 남아있지 않아 맘이 불편하기 조차한...


거기에다 여러 가지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 버리는,

삶의 무게를 본질적으로 다르게 해주는 “자녀”

내 소중한 아이들...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소위 세상적인 속성으로 경솔한 표현을 해 버려 죄송합니다.


자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신 기업입니다.

교육은 생명력 있는 것이고 희망이며

인생에 인격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참 힘없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 고독하다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지만

때때로 성경 말씀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기 줏대를 내세우다가

세상의 쓰나미 같은 교육풍조에 무기력을 통감했습니다.

또 외부적 혼란을 이길 만큼 속사람이 강건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구하지 않음으로 일용할 은혜가 근근할 때도 있고

반복적인 죄성의 대면에 지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영성을 드러내는 것은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부모님들까지 한꺼번에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에서 교육이라는 과제를 화두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인간이해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성을 절절히 경험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백했지만 - 우리 삼헌이가(귀헌,승헌,정헌)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데 - 전 아이들를 양육하면서 비로소 저의 강력한 이기심, 사랑과 인내의 부재를 아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제 블러그의 대부분은 그로 인한 궁상스런 자기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제 주변에는 매우 의지가 강하고 사랑이 많고 인내심이 남다른 훌륭한 어머니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그 분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연약한 사람에게 친절한 격려와 위로를 전합니다. 그분들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인생에 대해 인정합니다.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겸손함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젊은 부모들이 (3.40대 포함^^) 자기애가 강해서 자기몰입을 원하는 성향이 흔하고, 매우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적 습성들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나 자기를 성찰하는 태도가 건강하게 생존하기 참 어려운 구조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자신이 그렇다고 동의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물질만능주의나 이기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무한경쟁...그 마수는 우리 세대의 삶을 화려하고 첨예화시켜 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고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기준, 자녀를 이끌어 주는 최선의 때와 방법들이 옳지 않고

함께 가는 방향이 잘 못 되었으니 관계가 깨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치 개념의 본질 자체가 오염되어서 정체성도 관계도 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팽배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은 세상권세와 맞닿은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며 그 경계 너머 더 안전한 곳을 갈망하며 소모전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힘없어도 고독한 불안을 견디며 살아남을 길을 찾고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교육의 실정에서 최선의 해법은 자녀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입시교육의 횡포에서 정의로운 주권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의 파트너인 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학교와 가정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평화와 자유가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사랑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전수하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깨닫고 바로 잡고 변해야 합니다.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줄 수 있는, 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는 부모로서 계속 성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전 이제까지 남달리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으로 자녀교육을 실천하는 선두자도 아닙니다. 제가 이 지면을 통해 감히 가르치듯이 말하고 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반복적 시행착오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바른 방향을 계속 가라고 자신에게 격려하기 위해 열심을 내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몹시 못마땅한 듯 “마치 정답을 다 아는 것 같군요” 핀잔을 듣습니다. 제가 잘 못 전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경우일 겁니다.


인생에 대해 그런 것처럼 자녀교육에도 정해진 정답은 없고

다만, 바른 방향만이 있습니다.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시행착오 또한 각자 불가피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멀고 지루한 마라톤일 겁니다.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고 지치니 우리가 함께 불가피한 성장통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해, 저의 인생전환 키워드는 “회심” 그리고 “용기”였습니다

그 때의 은혜로 이 지면을 잘 감당할 수 있길 기쁨으로 소원합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더욱 겸허해지길,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이번 달 추천하는 책

부모가 학교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달팽이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제인넬슨, 쉐릴 어윈, 프리미엄북스

나는 아이보다 나를 사랑한다, 신의진, 걷는나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 서원희, 내일을 여는 책

칭찬과 꾸중의 힘, 상진아, 랜덤하우스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 박재원, 스쿨라움

내 아이의 공부를 살리는 아빠 마음습관,  ..

굿바이 사교육, 시사인북


+ 위의 글은 나들목교회의 월간지 <도시락>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많이 아는 관심 갖지 않고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연도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오래 바라보리라

 

많이 껴안고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자주 보리라

 

단호하고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한참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직 회개의(return) 기회가 있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재회한 이 시를 보니 참 마음이 무겁다.
현실의 나는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성실히 가고 있지 않기에 현장에서 불량한 모습을 옛스승에게 제대로 걸린 그런 기분이다.
친절히 세밀히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사랑과 그 날의 감동과 신념을
먼지 뿌연 선반에서 그 자리를 더듬어 찾는 허둥거림이 부끄럽다.

방학도 이제 끝나간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떠날 날도 아니, 내 양육의 영향력이 가할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어쩔수 없이 분리될 그 날이 되면 보기 좋게 마무리 되는 과제도 아닐 것인데
어리석게도 가끔 그 날이 오면 해방이라도 될 듯이
이리도 못나게 '자기부인'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음에 매양 위축된 모습을 어서 벗어 버리고 싶어 한다.

낙심할 때마다
아침을 힘겹게 시작할 때마다
깊은 밤을  아쉽게 끝낼 때마다
나의 유약함과 이기심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어쩌다 방심하면 나는 늘 넘어지기 쉬운 약한 엄마인 것이다.

이 땅의 시한부 인생에 난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는게 갈수록 복잡하고  더 난해하기만 하다.
어쩜 세월이 갈수록 현실직면이 첨예화 되고 자아도취에서 깨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연륜의 지혜는 능수능란을 기대하게하지만 진실은 자신의 어리숙함을 대면하게 하고
부유함이나 안정을 원하지만 본질적인 가난함과 불안정을 보게 한다.
이 시점에 인생에 가장 큰 위로와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은 동일하시고
내가 정직한 영으로 나갈 때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시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함께 어울리기 보다는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 있다.
함께 하면 함께 즐기고 누리기 보다는 끝없이 통제하고 잔소리 하는 내 자신이 넘 괴로워서
그 도피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나를 아이들과 분리시키곤 하는 것이다.
어느 시절에 이르면 후회할지도 모를 이 차선책이 
성경적 가치관에 순종하는 지혜를 힘입어 최선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놀라운 신비는 이런 나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삼형제 아들들도 이 잘 삐치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안하다. 


    

엄마의 나쁜 습관 바로잡기

2009.08.24 14:26 | Posted by 허니즈맘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네요. 
아이들이 이틀후면 개학이에요.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개학즈음 '와~ 해방이다' 내심 좋아라만 했는데

아이들이 크는 모습에 좀 안타까움과 조바심도 납니다.
저의 게으름과 인내의 부족이 당장 쓴 열매를 쏟아낼 거 같은 위기감에 괴롭네요.
(사실 현실을 외면했지 늘 사고친다는 걸 알고도 죄를 저질렀지요) .

사춘기... 그리고 그 뒤에 줄지어 서서 관찰하고 모방하는 동생들... --;;
떄를 놓치지 말고 마주 보아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좀더 어렵네요.
(어느 지인에게 전한 인사中)

시치다 마코토의 한 마디

육아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인생에서 거쳐야 할 가장 존엄한 일이라 생각해야 한다.
또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주인공으로 생각해
소중한 보물을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

 ---네~ 시치다샘, 그래야죠. 근데, 전 첫 맘이 대단했던 만큼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거 같아요.
     (사실 용머리가 되고 싶었지 용은 아니었을 거다.)

오늘의 돌발행동은 이 책에 꽂힌 거다.
사실 시치다의 <태내기억>이라는 책을 찾다가 멈추고 엉뚱하게
기본부터 다시 해야 할 내 형편을 생각하며
조금은 식상한 이 책을 좀더 들여다 보았다.   



<똑똑한 아이를 둔 부모들의 7가지 습관>
 
시치다 마코토 저, 김하경 역, 산호와 진주, 9000원 
--- 원제목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제목은 마케팅 전략이 농후해 좀 거부감이 든다.
      

+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내 아이 심리발달의 세 계절

마음의 계절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 시기는 과거 위인들의 말을 암기하여 읊기에 적합하다.『천자문』이나 『한시』, 『논어』 등의 고전을 외워 암송하게 한다. 그러면 그 명언들이 아이의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아이가 성인이된 후에도 그를 지탱해주는 학문이 된다. 이렇게 무의식의 정신세계로 파고든 한문의 깊은 뜻이 아이의 근본을 이루는 사상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계절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이 기간은 정신적인 여명기다. 전기나 소설을 읽기에 적합하다.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의 시기이며, 정신에 눈을 뜨는 때이기도 하다.

사회의 계절 중학교 3학년 이상에 해당
  인간이란 무엇인가,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계절이다. 이 시기에 만나는 훌륭한 스승은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나가는 시기다. - 보슬비


+현명한 부모의 습관
 - 만들어지는(?)  똑똑한 아이

1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라 그러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가 된다.
2 전기를 들려주고 기초학력부터 다져라 그러면 창의력 있는 아이가 된다.
3 사랑하라, 엄격하라 그리고 신뢰하라 그러면 참을성 있는 아이가 된다.
4 타고난 소질을 최대한 살려라 그러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된다.
5 가정의 질서를 재확인시키고 칭찬하라 그러면 예절을 아는 아이가 된다.
6 날마다 감동하라 그러면 성장하는 아이가 된다.
7 웃는 얼굴로 좋은 말을 하라 그러면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 - 보슬비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부모가 되기 위한 7가지 습관을 말해 주고 있다. 
자녀교육에 "성공"이라는 말과 "똑똑한" 아이라는 어휘의 선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느 해와 달리 개학을 맞이하는 이 엄마의 심정은
첫아이 입학하는 심정으로 착한 긴장감 모드를 회복하려는 거니까
수많은 자녀교육서에 원론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첨 듣는 것처럼 겸손히
그러나 미련하게 맹신하지는 않고 방법적으로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맘먹고 제대로 읽어내릴 책 하나 < 성경으로 아들키우기>

<성경으로 아들키우기>,최에스더 지음, 규장, 9000원

난 아직도 아들을 잘 모른다.
난 여전히 성경적으로 양육하기에 매우 서투르다.
그동안 삼형제 키우며 박사된 것은 나의 죄성이다.
그리고, 그 죄성을 더이상 묵상하거나 설파할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긴 내 본질을 새로운 피조물로 선언해 주셨으니 
이제는 그에 걸맞게 살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 지식이나 의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박약한 지도 알았으니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와 말씀에 힘입어 차근히 성실하게 해야 한다. 

난 원래 생긴대로라면 정말 아들키우기 힘든 사람이다.
아니, 결과적으로 보면 아들들에게 위험한 엄마이다. ㅜㅜ

몇해 전까지는
7살 전에 완결되는 또는 그 경계의 중요성에 대해
10살의 발화 위력에 대해서 기대도 하고 집중하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라는 위험천만한 경계가 
나를 오그라들게 한다.
예의 무력감이나 '내 코가 석자'는 찾을 새도 없게 느껴진다.

우리 아들들 아시는 몇몇 분들이 우리 아들들 귀하게 여기시고 아껴주시면서
"보물들"이라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다.
자신의 아이를 "내 보물"이라고 말하는 사랑 많은 친구를 보며 
그렇게 귀하게 내 아이를 끌어 안지 못하는 나를 비춰보고 괴로운 때도 있었다. 
왜 보물이 아니겠는가?
또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인생에서 거쳐야 할 가장 존엄한 일이라는 것을 어찌 모를까?

내 회심의 역사에 
성숙단계 레벨 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결혼후 최고로 호사스런 휴가 ^^ 은혜와 쉼이 공존한 "성서한국" 수련회 4박5일 마치고 ... 나만 좋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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