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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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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5 가난에 대하여

가난에 대하여

2008.11.15 23:46 | Posted by 허니즈맘

우리 교회의 작은 오솔길 (2008.11)

.



그 방송 같이 보았지요... 그 아이들의 부모는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도 하고, 어쩔 방도가 없이 그렇게 키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누가 시켜서도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이 바쁘고 복잡하고 비싼 소비를 부추키는 풍토에서는 정상적으로 산다는게 너무 넘치게 힘겹다고 토로하고 있었지요.

극단적이고 절박한 가난한 모습을 대하면 마음에 도와야 할 무거운 부담이 생기고 어쨌든 나랑은 다르다고 내 처지랑 거리도 두고 싶을 때도 있는게 보통 사람들, 소위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한경쟁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위(?)만 바라보며 생존을 부여잡습니다. ......


여러 가지 내가 갖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댭을 친절하게 힘있게 제시해 주셨군요.
내가 갖고 있던 오해들(나의 신앙과 인격의 성장이 맞물리는 부분들)이 천천히 숨통이 트일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비전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주시고 삶으로 꿈꾸게 하시며 내적으로 주시는 확신과 평안이 있어

감사합니다.

이 과업도 하나님의 다른 사역들처럼 준비가 완료되어 하는 것이 아닐 것인데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몸과 마음, 일상이 얼만큼 중심을 내어 드리느냐 보시고 일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상과 철학이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은혜에 힘입어 균형있게, 인도하심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길 그 도우심을 구합니다.      (남편의 나눔글을 읽고)





<남편의 나눔글>

지난주 토요일 "버려진 아이들"이란 소제목을 붙인 시사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지역을 기반으로한 생활 공동체의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정들이 어쩔 수 없이 있는 현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케어할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케어할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는 상황.
그 가운데서 정서적 대 사회적 장애를 경험하는 아이들.
그것이 한국의 서울이 경험하는 상황입니다.


생활 자체에 파고 든 우리의 가난함과 영성의 메마름이 하나님의 만지심과
그 손길의 구체적인 표현인 생활 공동체임을 절감합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점점 사라질 이유밖에 남은게 없습니다. 한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와 길거리 전도 금지를 놓고 가두 서명을 벌인 결과 전도 금지에 더 많은 서명이 몰리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중인 종교입니다. 말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기독교에 대한 정서가 이제 기독교에 대한 멸시로 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안에 파고 든 세상의 권세가 우리들의 신앙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는 높이지만 생활에서는 2순위로 놓는 우리 안의 고질병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가정교회는 남미의 해방 신학자 보프의 "성례전적 현실"이라는 맥락에서
지역적 기반을 분명히 한 생활 공동체로서 서려고 합니다.
 
가정교회는 도시의 한 부분으로 파고 들어가
거기에서 공동체적 생활인들이되며 동시에 수도사들이 되는 겁니다.
 
유쾌하고 당당한 믿음의 탈출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현실은 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례이며 그 생활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현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례전적 현실입니다.
 
 
거기에는 선물이 풍성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밖으로 팔 것은 적지만 서로 나눌 것은 많습니다.
나누면 나눌 수록 우리 안의 공동체성은 풍성해 질 것이며 우리의 생활비는 내려가겠죠.
 
거기에는 아이들을 더욱 깊이있게 양육하는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삼촌,이모들이 아이들을 같이 케어함으로서
신앙 인생의 경험들을 물려줄 것이며 지역 자체가 아이들의 보호 구역이 될 것입니다.
삶의 도구들을 서로 같이 개발시키고 같이 살아감으로서
경쟁만이 유일한 구호가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막판에서
협동과 서로 보살핌이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이 될 것입니다.
 
 
같이 예배하고 기도하는시간, 큐티하는 시간을 같이하고,
영성 훈련하는시간을 공유함으로서 하나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여갈 것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이 섬김으로서 서로 이해 하는 폭을 넓혀 갈 것입니다.
남을 돕는 영역의 물질을 같이 조성하고 공공의 영역을 늘여나감으로서
우리들의 삶이 점점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분리와 고독을 통한 생활의 도를 통해 인격인 서로를 존중하고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과 시간을 존중할 것입니다.
개인의 특성과 준비의 시간을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고자 합니다.
공동체는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거나 강제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예술과 기쁜 활동이 공존하는 곳이며 철학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공동체가 이래야 한다! 공동체가 저래야 한다!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주님 아래서 자연 발생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참 즐거움과 성령의 참자유가 있도록 같이 발맞출 것입니다.우리의 신념은 하나입니다.
오직 성경과 복음으로만 살아갑니다. 
 
 
가정교회는 이제 모임 자체를 넘어 생활을 제사로 드리는 공동체를 이루기로 방향을 굳혔습니다.
우리의 결단과 무관하게 삶의 여건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조성되어 지길 바랍니다.
생의 터전을 찾아 들어가는 과정이 단지 지도를 놓고 지역을 찍는 과정을 넘어서길 바라며 우리들이 살아가고 섬기는 부르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사임을 통해 생활인으로 돌아가는 이유이며 새로운 현실입니다.
어제 가정교회를 통해서 서로 나눈 이야기들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공동체 형성의 첫발입니다.
우리 안에 성소를 재건하고 우리 안에 성벽을 쌓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사실은 갑작스런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계속 얘기하던 부분입니다.
이제 제가 사임을 하면서 모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총대를 메는 사람, 여기라고 소리라도 한번 지르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될 것 같아서죠.
 
 
어제 후보 지역을 둘러보다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겁니까? 하나님!!"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요.
 

몇년 후에 어떻게 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품에 이 비전을 내어 놓습니다.
 
 
우리 가정교회 가족들이 이 일을 기도제목으로 삼아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길에 하나되길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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