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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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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 --power of one

2008.08.02 19:06 | Posted by 허니즈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죽은 물이 살아나며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나무가 살아나서
  잎사귀가 새로 피고 열매를 맺고 나라들을 치료하는 약재가 된다.>

생명을 살리는 사건과 그 치열한 접전만큼 감동적인게 또 있을까?
그렇다, 나는 감동을 좋아한다.
치밀한 지적 접근과 절제된 역설도 선호한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에 대중적인 무난한 소재라도
한결같은 성실과  따뜻한 배려 그리고 순수한 희생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이의 삶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내 일상은
남의 인생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다큐감상하는 고상한 취미에서 멈춘다.
그 치열한 수고와 희생은 벅차다 못해 두려운 것이다.

진실은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창 안쪽에서 바라만 보는 현실은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거나
자포자기로 끝까지 킬링타임일 뿐이다.

나의 꿈은 언제가 되어야
현실 위에 몸을 심고 마음을 풀어 놓을까?
생각해 보니 어제 글은
제목에서 요구하는  "어떻게"에 대한 답이 못 되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또는 내가 기도에 대해 갖는 소망을 풀어 놓았지만
당장 오늘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나의 일상을 보며
어제 나의 고백은 거짓이 없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니까 맥빠지는 잘난 척 하는 한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성령에 의지하자고
내 소통의 유일한 힘이라고 믿지만
내 안의 기억은 진실하지만
과거의 은혜가 주는 감동의 에너지는 한계를 드러낸다.

미래의 연단끝의 소망을 믿고 바라지만
현재의 성실한 수고에 절박한 동기가 없는 것 같고
과거와 미래에 저만치 거리를 두고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으니
나의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것인가?"의 변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생명력을 담고 있지 못하다.

나는 MBTI유형중 --- 의외의 유형이라고 현 측근들은 말하신다.^^
나는 속사람이 전형적인 P이다. (거의80%)
그런데, 청년 때  J를 훈련받고
또 그렇게 일상을 주도하려고 노력하는 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다보니
좀 배운 것도 있고, 닮고 싶어서 혼자 착각하는 부분도 있고 해서 J로 좀 변형 된거 같았다.
애들 키우다보니 더욱 뒤죽박죽 되는 것도 있지만 생존하려니 J를 선택 체화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두드러진 P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니
창피하지만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에~ 시간 지키기, 책상위 정리를 비롯한 정리, 청소,
웬만하면 버리기, 원래 하려던 일에 집중하기 등은 대표적으로 못하는 것들이다.
결국 타인의 시간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지각 다발 (타인 지각에는 매우 너그러움),
좀 거시기한 정리상태를 보면, "음~ 우리 집 같네. 내 책상위 같네." 하면서 남 책상 위를 정리해 주는 건 기껍고,
차곡차곡 분류를 못하면서 너저분히 이고지고 살고 있다. ---넘 궁상스런 자화상이 되어버렸군.

결론은, 나의 기도시간 확보나 수시로 기도하는 좋은 습관이
그러저러한 나의 성격 땜에 더욱 어렵다는 변명을 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아이들 방학이라서 낮 시간은 활용하기가 --집중이 불가하다.
비장한 각오라도 해야 학기 중에도 겨우 실행가능인데
이른 아침과 아이들 취침후 시간을 붙잡으려니 또 핑게가 난무하다.

남편이 이번 주일 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정해진 설교 시리즈 중 하나를 맡게 되었는데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다.

평탄한 일상 중에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거친 풍랑 중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도할 수 있어도 은혜이지만,
별일 없이 자신의 부요함과 어려움 없는 신앙생활 중에 자기 의로 충천하여
심령이 메마를 수 있고,
갈급함에도 나의 때가 앞서 지친 영혼이 탄식하며 습관처럼 기도할 때도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드리는 삶으로 기도하는데    
공동체의 사랑을 나누며 생을 살리는 중보기도하는 수고에 어찌 쉬는 시간이 있을까?

우선순위의 문제의식 부재
'늘 쫓기는 삶' 이 이유가 되게하는 방임형 생활방식

P가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짜증나는게 적지 않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옛사람의 습성' 으로 내게 짐같이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J의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성실한 습성을 개발하는데 더욱 애써야 한다.

P와J를 두고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 
성숙한 사람은 P와J의 차이가 두드러지지않고
어느 쪽으로든 원래 자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화되면서 부족한 다른 측면은 훈련으로 배워서 체득해서
균형을 잡는 모습이란다.

개인적으로 듣고 배운바 에 충실 할 수 없다면,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없게 하는 주요인을 들여다 보고 개선책을 위해 해답을 찾는데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에도 비장하게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영적인 문제이니 이 승패는 중간의 안전지대는 없다.
가정교회에서 공동체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서로가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성령을 의지한 균형잡힌 성장이 자신 삶의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오늘의 쉼없는 기도와 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삶의 중심이고 원동력이라고
은혜롭게 드러나면 좋겠다.


내가  예수님께 '사랑에 빚진자'라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그 긍휼의 힘을 기억한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에 갈급할 수 밖에 없겠지요? 

성령님을 의지해서
내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하듯 기도하면
내 삶을 정직하게 얘기하게 되고,
사모하는 노래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주시는 사랑에 몰입할 수 밖에 없겠지요?

내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콩깍지가 씐 연인처럼 그 사랑에 눈멀어 있으면
그 낭만적이고 절절한 시간에
아무리 사랑을 갈구해도 지치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하나님과 고귀한 언약적 관계를 누린다면,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얼마나 풍성하고 자유롭고 평안할까요?

성령님께서 언제나
내 눈과 귀를 열게 하시고
내 마음에 가난한 자의 기쁜 소망을 심어 주시고
이미 약속된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삶의 목적을 다스려 주셔서
내 기도의 수고와 노동을 온전케하시길 의지합니다.  


남편의 QT를 읽고 묵상후 답해 본다.
TAG 기도

고상하고 감수성 깊은 사모님 취향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에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직관이 있습니다. 

허영과 겉치레로 만들어진 가짜와, 진정한 실력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진짜를 구분하는 직관은 당신의 숨은 능력입니다. 유치한 비유를 들자면, 친구의 그럴듯한 짝퉁 시계를 보고, '가짜?'라고 의심할 수 있는 능력, 뭐 대충 그런 것입니다.  '구린' 것, '후진' 것, 짝퉁, 싸구려, 저질, 쓰레기 등으로부터 진짜 아름다운 것을 구분하는 진실된 눈을 가진 당신은 된장녀, 된장남이라는 지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선천적으로 갖춰진 안목일수도 있고, 아니면 경험과 교육에 의해 길러진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경우엔 전자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역대 모든 유럽 왕들 중 가장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로 당신 취향을 대표할만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당신 직관의 폭은 좁습니다. 지나치게 파격적인 이미지와 언어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으며, 너무 지적인 내용에 이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 중 (극히) 일부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순결한 콘텐트만 고집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너무 고상한 척 해서 못 놀겠다, 공주병 아니니'라는 조롱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것
당신은 어쩌면 남들이 다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소 대중적이고 주류 지향적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수준 높은 것만 취사 선택하니까요. 당신은 분명 도에 벗어나지 않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확보한 '상식적인' 콘텐트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감정과 느낌이 풍부한, 세련되고 정성 가득한 콘텐트를 좋아합니다.

당신이 우아하고 차분한, 푸근하고 풍성한, 익숙하고 편안한, 고상하고 품위있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이미지 정도라고 할까요.


"Bathing at Asnieres" Georges Seurat

저주하는 것
당신 취향의 가장 큰 적은 과도한 실용주의입니다. 당신은 문화 예술에 무관심한 부류,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취향에 메스꺼움을 느낍니다. 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척 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쓰레기 취급하는, 그 덕분에 자기 앞에 놓인 것이 싸구려인지 고급인지도 구별 못하는 '아저씨 부류'에게 지독한 경멸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외에도 뭔가 있는 척 하는 현학적이고 속물적인 태도도 당신에게 거부감을 줍니다.





지난 6월 부터 블러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내가 아는 한 멋찐 젊은이의 블러그에서 재미를 많이 느꼈지요.
여러 가지 배우고 싶고 또 사랑스런 귀한 누군가의 사람인데 
그의 블러그를 통해 열어 본 설문에서
오랜만에 나의 객관적 모습을 흥미롭게 들쳐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릴 때(초등)부터 결혼 전까지 이런 거 무쟈게 재미있어 하고 관심이 적극적이었는데......
자기미화의 충족과 실존자아의 직면시 충격을 좀 완화해 주는 오락시간이라고나 할까요?
ㅎㅎ  "한번 해 보삼...^^"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록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절절한 기다림
또는 길은 몰라도 목적지를 알고 떠나는
믿음의 모험
그 힘겨움과 평안

절벽 / 로버트 쉴러



절벽 가까이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다가 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칼릴 지브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또 즐거워하되

서로 홀로일 수 있게 하십시오.

마치 수금의 줄이 따로 떨어져 있으나

같은 음악으로 함께 울리 듯이



함께 서 있으되 너무 가까이 머물러 있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은 따로 떨어져 있으며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원>에서 퍼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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