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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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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29 16. 기념일은 피곤해
  2. 2019.06.29 15. 남편 생일

16. 기념일은 피곤해

2019. 6. 29. 22:58 | Posted by 허니즈맘
16. 기념일은 피곤해

 기념은 기념하는 자의 것! 이라는데 난 기념일에는 취약하다. 페이스북에 지난 10여 년 동안 남편 생일날 포스팅을 했는데 추억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남편생일 포스팅은 유일하게 매년 꾸준히 이어온 기록이다. 나의 시간과 정성을 담은 기념일 축하하는 애정공세였다. 해마다 삼형제가 면면히 성장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남편의 축하받으며 웃는 얼굴이 참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커가며 달라지는 에피소드가 생생해서 지난날 기록하길 참 잘했구나 싶다.

 남편 생일을 빌미로 드러내는 닭살 돋는 나의 애정표현을 읽으면 오랜 지인들은 천생연분이라고 말을 거든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천생연분이라면 내 쪽에만 해당될지도 모른다고 딴죽을 걸게 되었다. 남편은 다음 생애에도 또 결혼할거냐는 질문에 5초간 무응답 (망설임)한 전력이 있다. 지난 해 결혼기념일에 지인이 우리 부부가 나란히 앉은 자리에서 짓궂은 질문을 했던 것이다. 난 1초도 안 쉬고 바로 물론이지 했는데 남편은 순간 정신이 혼미했는지 답할 기회를 놓쳤다. 두고두고 기억할 입담거리를 만들고 말았다.

 우리 부부는 둘다 기념일을 조용히 소박하게 보내는 것에 동의 한다. 돈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약간의 낭만충동을 느낄 때도 있지만 부수적인 감정노동의 과정에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에 보통날의 평안을 더 좋아한다.

 남편은 내 생일날 축하메세지를 10줄 정도 쓴 봉투에 현금을 담아준다. 웬만하면 내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옴싹달싹 시도를 하지 않고 쿨하게 '네맘대로 선물'을 권하게 되었다. 나도 비슷한 방법을 쓰는데 내 특기대로 마감개념 없이 제 날에 안 주고 몇일 있다 건넨다. 마치 선물을 고르다 결정 못한 것처럼...좀 바보같지만 그렇게 얼띠게 구는게 남편에게 더 많은 걸 얻는 기분이 든다. 나를 못난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인내해 주는 사랑을 확인하는 지점이다. 남편은 참기의 달인이지만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아마 지각 선물에 대해서 기대도 실망도 안 하고 그저 고맙다 할 것이다. 더 기분좋게 선물을 줄 타이밍이 있는데 난 왜 여전히 찌질할까?
 
 결혼기념일, 생일, 연말연시는 감정이 참 피곤하다. 감사와 행복의 고백이 진심이지만 틈틈이 어리석은 감정과 위축된 욕구가 기어나온다. 평상시에 그 따위는 발밑에 깔려 있다. 특별한 날을 감정으로 느낄 때 나도 모르게 발밑창을 들여다 보다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올라오는 탐욕을 본다. 절제하고 산다고 애쓰는데 절제의 끈은 참 약해지기 쉽다. 기념일은 나 자신을 구질구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회피하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그런 과거 기억의 과장은 현실을 더 초라하게 한다. 그저 현재의 생존방법은 우선순위에서 체득된 것이다. 바라기는 사랑을 할 때 상처받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좀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원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방식에 나를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남편이 내게 바라는 것은 대쪽같이 하나다. 시간지키기...내가 제일 못하는 것인데...남편의 인내의 총량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참 보잘것 없었다.

 남편 생일은 지나갔다. 당분간 집안 기념일은 없다. 유예기간이다. 평상시에 남편의 마음에 맞게 잘하도록 더 노력하자.

15. 남편 생일

2019. 6. 29. 21:55 | Posted by 허니즈맘
15. 남편 생일

 남편 생일이었다. 세 아들과 한 상에 앉는 게 여의치 않아서 아들들을 기다리다 밤 12시 넘기 전에 겨우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지나치게 조용한 우리 동네 골목길에 오밤중 생일축하 노래가 널리 들렸을 것 같다. 여름이라 활짝 열린 창으로 민폐될까 싶어 사뿐사뿐히 얌전히 불렀다. 웃겼다. 축복기도를 서로 미루다 내가 하면 설교급으로 늘어지게 할 거라고 장담했는데 다들 눈을 감아 버려서 오랫만에 길게 남편을 위해 소리내어 기도했다. 남편이 많이 감동하길 바랬다. 아멘하고 눈을 뜨니 아들들은 눈을 뜨고 멍한 얼굴이었다. 피곤한 시간이고 빨리 케이크 먹고 싶은데 엄마는 주책이다 못말리지 하는 퀭한 눈빛이었다.

 매년 하던 대로 생일맞이 소회를 들었다. 남편에게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감사한 것과 새 나이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그 동안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되어 본질을 깨닫는 새로운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앞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은 명예롭게 늙는 것이라고 했다. 좀 짠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아빠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으며 셋째 아들은 생일날 넘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 밝은 기운으로 다독여 드리고 싶어했다. 슬픈 일이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이런 류의 깨달음과 소원은 우리 인생에 참 유익하고 나이가 잘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둘째 아들은 아빠에게 생일축하의 메세지를 쓴 금일봉을 선물로 드렸다. 둘째는 알바해서 모아 놓은 돈을 멋지게 쓴다. 청소년기를 자부심을 키우며 성장하는 둘째 아들을 보면 참 고맙다. 첫째 아들은 생일축하 시간에 대한 심적 부담이 불편하다고 산책을 나가 버렸다. 언젠가 그 부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약간의 부담으로 소통하는 것을 그럭저럭 함께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들들이 모이기 전, 밤 11시가 넘어가면서 남편이 그냥 우리 둘이 케이크 촛불 키고 어서 해 버리자는 말에 나만 있으면 축하가 재미없잖아 하며 애들을 기다리자고 했다. 그때 남편은 장난스럽게 우리의 현실을 말해 주었다. "당신만 있으면 되지 뭐! 우리 둘만 있어도 재미있다!"
 우리가 그런 점에서 마음이 통하는게 정말 다행이다.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부족함이 많지만 남편의 내밀한 이야기와 은혜롭게 늙어가는 시간은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게 된다. 남편의 새 나이에도 우리 부부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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