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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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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삶기 인도자반'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5.14 "죄"와 관계 정리하기 --- 에배소서 2:1-10 묵상
죄를 발견하다.
전에는 "죄"를 잘 몰랐다.
진짜 죄라는 것을 전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신앙입문하고도 시간이 좀 걸렸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외형적으로 꽤 잘 나가는(?) 신앙생활을 한 5년 하다가 그제사 나의 원죄를 마침내 깨닫고 울고불고하며 한 획을 그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거듭난 것을 비로서 인정하고 사실 일회적 사건처럼 또 그렇게 내 젊은 날은 적당히(?) 뜨겁고 부대낌 없이 편하게 성장가도인 거 같았다. "죄"라는 것과 강렬한 만남을 갖었지만 옛사람의 전유물로 그렇게 떠나 보내고 잊혀졌고 그후 쉽게 살았다.

죄를 묵상하다
육아 전에는 크게  힘겨운 스트레스가 없었다. 왜냐하면 할 수 있다면
그 상황을, 관계를 피하며 살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 내 맘이 편한 것을 누리며 기꺼이 할 것도 넘치니 굳이 심경이 괴로운 상황을(사람을) 정면으로 직면할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늘 합리화 했다.
육아는 자아도취에 살기 원하는 개인주의적인 내 본질적 죄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체력은 소진되고 전인격이 흔들렸다. 물론 도피는 커녕 외면도 할 수 없는 내 일상의 현장에서 자녀와의 관계 뿐 아니라 내 취향에 안 맞는 사람과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은 "죄"라는 것을 아주 현실적이고 자세하게 들여다 보게 했다.
자아도취에서 깨어나 착각을 가능케 하던 얄팍한 포장지를 벗고 자기부인을 해야하는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속이고 사는 것을 묵인해 주던 "죄"를 떠나 보내던 첫 발견 때는 "죄"에 대해 무심했고 오직 주님과의 관계에 몰입하며 행복했는데, 떡하니 내 곁에서 있는 "죄"는 마치 돌아온 애틋한 나쁜 옛애인처럼 나를 괴롭게도 하지만 예전에 알지 못했던 친밀함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자기부인"의 힘겨움에 지쳐있다가 엉뚱한 돌파구라도 찾던 마음이었는지 죄를 미화시켰다.  "죄"는 내가 "자아도취"에 빠져도 묵인해 줬는데 나를 편히 살게 해 주었는데... 심지어'그때가 좋았어' 하며 "죄"와 친밀감을 느낀다. 교감이 이루어진다.
분별력은 성령을 떠나는 나에게 안타까움으로 경고를 하고 옛 삶은 죄의 묵인 속에 평안했던게 아니라고 시한폭탄의 한계점까지 긍휼로 온유하심으로 예수님은 참고 기다려 주신 거라고 선하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진실하고 변치 않을 참 인생을 함께 누릴 착한 현재 애인을 보라고 정신차리라고 한다.    

은혜로 가는 통로
"자기부인"이 힘들어서 ...게으르고 편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성령의 일하심을 설득하려는 고집스런 나의 행태를 볼 때 가끔 정신나면 한심해서 또 잠시 넋을 놓는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예수님 믿고 교회 공동체에서 성장한지 20년 나는 예수님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내 죄성이 참 싫다.
그러면 단호하게 그것을 버리면 되는데 내 짧은 인내는 잘 안 되니까
그것을 모르고 살았으면 참 좋았겠는데 하며 유치하고 퇴보적인 생각도 가끔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시면 안되나요? 나 하나쯤...

사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아무리 잘난 재능이라도 객관적으로 존경 받을만한 인격이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는 확신이 있어도
그것이 성령안에서 거듭나는 과정이 없다면
주시는 은혜 앞에 거침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내 평범한 재능과 허접한 실력과 얄팍한 인품은...
오히려 받을 은혜가 더 할지도 모르는데 ...

나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누리기 위한 통로가 될 것이다.
죄가 큰 자 그 은혜도 클 것이다.
난 내 인생에 내 죄를 제대로 심각하게 깨달아 통회하는데 둔감했고 대의명분 속에 제 3자의 눈만 키워 온 거 같다. 내가 어릴 때 (20대)자신의 원죄를 세세하게 맞닥뜨렸다면 과연 지금 다시 이유식 달라고 떼 부리지는 않았을까? 아니 이유식도 단단한 식물도 다 안 먹겠다고 버티고 있는 나를 본다. 난 내 죄를 잘 몰랐고 죄를 좀 알 것 같으니 오히려 죄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
어쨌든 지나가야 할 통로에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지치고 있다.

죄 속에 빠져 헤엄치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전한 길이리라.
지름길이나 아무 영감없이 쉽게 가는 길은 은혜의 길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귀고 알아가고 있고 더욱 사랑하길 원하는 소원이 내 안에 있지만 고통과 괴로운 사연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본질이라는 진실에 대해서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많다.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철저히 의지하지 않고 기도에 게으르고
쉼을 얻는 방법이 무책임하고
몸이 힘든 수고와 자기를(시간, 정신 등) 희생하는데 인색한...  
시간을 관리하고 규모있고 균형있게 사는 것과 거리가 먼
그래서 위축되고 두려움과 불평이 강화되는 ...
결론적으로 여전히 원래 생긴대로 사는게 생존전략이 되어버린 현실...


어디를 바라보는가?
머리와 가슴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협력하는데 동의를 했다.
몸과 감성은 핑계거리가 넘 많다. 산만하다. 실속없이 바쁘다.
내가 잔다르크 형이란다.
소소한 일상에 요령이 없을 뿐 아니라 수고에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사실 잘 못하니까 재미가 없다. 자체의 의미가 나를 붙잡지 못하니 나도 죄책감이 심하다.) 공적이고 추상적인 것에는 에너지가 생기는데 일상이 급급하니 둘다 접고 대충 사는 꼴이라 자존감도 엉망이다.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내세우고 싶은 거 같다. 별로 그렇지 않다고 믿어 왔는데 주께서 주시는 훈련의 장에서 뼛속 깊이 나의 반항심과 유치한 고집을 느낀다.
내 무릎까지 죄의 물에 빠져 있다
여차하면 물을 바라보다가 때떄로 유혹받는대로 엎드려 헤엄칠 수도 있고 잠수도 좋다고 무아지경에 들어갈 형편이다.
죽음이 그렇게 아래에 있고
생명은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에 내가 걸어가야 할 수면 위로 충만하다.
진리는 생명이니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생명이다.
보이지 않지만 그 생명은 진리니까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고 앞을 내다 보아야 한다.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더구나, 낯선 여행이다.
이제까지는 내가 바라고 선택한 인간적인 배경이 선명한 여행지를 가 보았는데 안전했다.
그래서, 본능적인 걱정은 없다. 다만 낯선 것에 긴장되는 것이 나혼자가 아니니까 매우 무겁다. 차라리 싱글이었으면 하지만 외로움의 처절함을 모르는 나로서는 가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경솔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선물 패키지 여행은 내게 맞춤일 텐데  내게 바라시는 분량의 성장을 내가 기꺼워 하지 않으니 내 신앙의 단계에서 어떤 훈계를 하실지 좀 두렵기도 하다.
   
걷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방콕족이다. 운동을 별로 즐기질 않는다. 뛰어 다닐 일은 없고 바쁘면 씩씩하게 걷는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성경을 통해 주께서 주시는 부르심은 "전력질주"이다. 내게 주시는 성장의 스타일을 바꾸길 원하시는 메세지 같다. 내가 경험한 "전력질주"는 매우 적극적이고 치열하고 승리를 향한 강한 집념이다. 완전 내가 아는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장 모형은 그럴 수 밖에 없지만 혹 내가 그리는 이미지나 자세에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좀 많이 긴장한다.
감당하기 벅찬 정도가 아니라 숨이 막혀서 순종의 문제로 돌입한다.
그래서 망연해서 질주는 커녕 가만히 서서 넋을 놓기도 하고 다리 아프면 주저 앉고 앉으니 눕고 싶고 그렇게 죄에 젖어 살아 보았다.
'풍삶기 인도자반'과 '파파기도'를 두고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도가 참 급했지만 긴급한 만큼 오히려 풍..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영적 상태가 기도 시간에 오픈하는 것이 꺼려져서 피하고도 싶었다.
풍...은 강의를 듣고 체켕 역할 하면 된다고 했다. 근데, 조장이라니 "헉.."했지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누구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보호하실 줄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를 다시 걷게 하시고 달리게 하실 것을 기대한다.    


혼자 있는가 함께 있는가?
지난 몇 달간 내 안에 기쁨이 메말라서 목말라 죽을 뻔 했다.(우울증)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교 중 김목사님이 전하셨다. 그 한 줄을 내 머리 명령체계 꼭대기에 적어놓고 전환점 삼으려고 애썼다. 내 영적 상태가 안 좋아서 사랑을 못한 건지 사랑을 애쓰지 않아 영이 다운 되었던 건지  중요하지 않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응급처치였다. 사랑하지 못하는 변하지 않는 내가 지겨웠고 더 사랑받고 싶은 조바심에 두려워 사랑을 버리고 싶은 위기의 내가 너무 초라하고 서러웠다.
우리 공동체 안에 내 남편 말고 나는 누구랑 얼마나 깊게 소통하고 사랑으로 돕는 관계인가? ... 없지 않다. 다만, 내가 힘들 때 홀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고 방어적인 경계선이 분명하다. 또는 넘 사랑하고 아끼다 보니 배려하다가 내 짐을 주기가 싫어 망설이다 물러선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인거 같다. 누군가 나와 소통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거리를 엄격히 준수해 주길 바라고 살아 온 거 같다. 존중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주의 사수... 홀로있기의 존중을 남발할 때가 있다.

설교중에 여러 번 말씀 하셨다. 내 주변에 가까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 인류를 품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주신 그들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다.
꼽자면 또 넘 여러 명이다. 행복한 미안함이다. 그런데,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주님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 할만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충해야 하나?  난 늘 에너지가 시간이 부족하다...
가교 가족들, 도서관 팀원들, 그리고 더욱 뒷전되기 쉬운 집가족들. 

 
무엇을 따라 어떻게 가고 있나?
나는 아직도 내 것을 주장한다.
내 시간, 내 취향, 내 소견, 내 그릇...
세월이 가면 좀더 너그러워지고 지혜와 용기가 더해지면 좋겠는데 거저 되지 않는다.
말씀의 강권은 늘 신실하시고 따라야 마땅한데 자기부인에는 이력이 붙지 않는 것 같다.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겸허하지 않으면 그 단순하고 마땅한 말씀이 한 없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방법이나 걸리는 시간이 좀 빠르고 지혜롭다고 한다. 이번에 넘어짐은 전치 3개월 짜리 였다.
꽤 큰 사고였다.
난 "죄"랑 바람을 핀거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내 남편이 힘겹게 부르심에 전력질주할 때 나는 부적절한(!) 배우자의 모습이었다.
"죄"는 자기랑 사귀고 질척해 지는게 얼마나 쉽고 또 중독성 있는지 숨기지 않는다. 내 지각은 그리 둔하지 않다. 다만 내 유약한 속사람의 감성이 현실의 모험을 등지고 도피처를 찾기에 못이기는 척 고꾸라지는 것이다. "죄"는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멀리 떠나지도 떠나 보낼 수도 없다. 내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언제나 대기 중이다.
'바람피는..'개념으로 다가왔으니 순결한 내 남편, 순결한 예수님을 생각하니 더이상은 정말 단호히 아니다. "죄"는 계속 나를 짝사랑하는 척 나를 기다리고 내 삶을 깨뜨리려고 내가 휘둘리길 기대하고 있다.
관계정리 주도권은 내게 있다. "쫑"

ㅎㅎ 내 맨토가 오래 전 내가 힘들어 울 때 위로해 주면서 살길을 알려 주었다. "십자가 말고는 해답이 없어~  십자가 내용 찬송가를 묵상하며 불러봐 기도가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붙잡게 된다~"

죄책감에 또 늘어져 있기는 예수님께 더욱 죄송하다. 화 많이 나셨을 텐데 담담히 나를 안고 가신다. 여행 가자고, 가던길 계속 걷자고...

난 오아시스 만나면 그 곳에 남겠다고 할 위인이다.
일행들에게 폐를 끼칠 돌발행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좀 조금은 더 성숙하게 나를 부인할 수 있길 노력하련다.
말씀을 떠나서는 나침반을 버리는 것이고
기도를 안 하면 지도를 짐짝 속에 두고 보지 않는 것이다.
예배는 고단한 여정 중 재충전이요
공동체의 교제는 생존을 위한 끼니이다

이 여행 중 이러한 생존 전략을 모르는 나그네를 만나면  
나는 즐거이 내 것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나침반과 지도를 보여 주고 사용방법도 가르쳐 줄 것이고
우리가 도착 할 곳의 소망과  꿈꾸게 하시는 분의 인격을 찬양하며
우리의 만남이 이 여행의 이유였다고 겸손하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도착지까지 고단한 여행을 하는 동안 서로 갖은 것을 나누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사랑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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