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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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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남편 생일

2019. 6. 29. 21:55 | Posted by 허니즈맘
15. 남편 생일

 남편 생일이었다. 세 아들과 한 상에 앉는 게 여의치 않아서 아들들을 기다리다 밤 12시 넘기 전에 겨우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지나치게 조용한 우리 동네 골목길에 오밤중 생일축하 노래가 널리 들렸을 것 같다. 여름이라 활짝 열린 창으로 민폐될까 싶어 사뿐사뿐히 얌전히 불렀다. 웃겼다. 축복기도를 서로 미루다 내가 하면 설교급으로 늘어지게 할 거라고 장담했는데 다들 눈을 감아 버려서 오랫만에 길게 남편을 위해 소리내어 기도했다. 남편이 많이 감동하길 바랬다. 아멘하고 눈을 뜨니 아들들은 눈을 뜨고 멍한 얼굴이었다. 피곤한 시간이고 빨리 케이크 먹고 싶은데 엄마는 주책이다 못말리지 하는 퀭한 눈빛이었다.

 매년 하던 대로 생일맞이 소회를 들었다. 남편에게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감사한 것과 새 나이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그 동안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되어 본질을 깨닫는 새로운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앞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은 명예롭게 늙는 것이라고 했다. 좀 짠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아빠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으며 셋째 아들은 생일날 넘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 밝은 기운으로 다독여 드리고 싶어했다. 슬픈 일이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이런 류의 깨달음과 소원은 우리 인생에 참 유익하고 나이가 잘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둘째 아들은 아빠에게 생일축하의 메세지를 쓴 금일봉을 선물로 드렸다. 둘째는 알바해서 모아 놓은 돈을 멋지게 쓴다. 청소년기를 자부심을 키우며 성장하는 둘째 아들을 보면 참 고맙다. 첫째 아들은 생일축하 시간에 대한 심적 부담이 불편하다고 산책을 나가 버렸다. 언젠가 그 부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약간의 부담으로 소통하는 것을 그럭저럭 함께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들들이 모이기 전, 밤 11시가 넘어가면서 남편이 그냥 우리 둘이 케이크 촛불 키고 어서 해 버리자는 말에 나만 있으면 축하가 재미없잖아 하며 애들을 기다리자고 했다. 그때 남편은 장난스럽게 우리의 현실을 말해 주었다. "당신만 있으면 되지 뭐! 우리 둘만 있어도 재미있다!"
 우리가 그런 점에서 마음이 통하는게 정말 다행이다.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부족함이 많지만 남편의 내밀한 이야기와 은혜롭게 늙어가는 시간은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게 된다. 남편의 새 나이에도 우리 부부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