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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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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나이테를 속에 감추고 자라는 나무처럼, 고진하

 

그대 안에, 그대 심장보다 가까이 있는
성스러운 빛을 항상 신뢰하기를.
속으로 거추장스런 옷을 훌훌 벗고

알몸으로 나아가기를

그대 아침마다 해님과 어깨동무하고 길을 나설
언제나 행낭이 가볍기를.
행여 길을 걷다가 지치거나

불면의 괴로움으로 뒤척이는

영혼의 그믐엔 고요히 무릎 꿇기를.
자주 고독 속으로 들어가

바위처럼 입을 닫고 하늘에 기울이기를
.
갖고 많이 존재하기를
.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천금 같은 순간을 놓치지 말기를
.
땅에 떨어진 금화를 줍느라

별들의 황홀한 음악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피고 지는 소리
,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자주 감동하고

자비의 옷감으로 짜여진 우주에 감사하기를.
안다고 우쭐대지 말고

모름의 신비와
생명의 경이를

연인인 뜨겁게 껴안기를.
그대 영혼의 스승의 부름에 순명하고

생명의 빵을 곁님들과
나누는 인색하지 말기를
.
그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숨결의 생명임을 항상 기억하기를.
한결 같은 젊음을 지니신 창조주를 닮아

년의 나이테를 속에 감추고 자라는 나무처럼
언제나 푸르고 정정하기를.

 


청파동 우리 사무실에서 샷슈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20 미터 정도만 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건물이 있는데 바로 청파감리교회이다. 나는 청파교회에 몰래 잘 다녀가는데 평일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예배실에 앉아 졸기도 하고 건물 앞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내 머리 속처럼 뿌연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내가 두드리는 작은 문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여분의 주보를 꽂아둔 작은 함이다. 청파교회 주보에는 읽을 거리가 참 많다. 책을 즐겨 읽으시는 목사님 덕분에 좋은 이야기 하나 시 하나를 소개받는다.

유난히 공동체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글들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때에 맞게끔 내게 필요한 충고와 격려의 글들이 실려 나는 주보를 쥐고 몇 번이나 울컥할 뻔 하기도 했다. 위의 시 역시 감동을 무려 수 차례 거듭하며 남영역 지하철 플랫폼 녹색 플라스틱 낡은 의자에 앉아 한 문장 끝내기를 아쉬워하며 찬찬히 소리 내어, 한 단어가 가진 소중한 의미를 놓칠까 조심스레 한 음절 음절 읽어 내려가는데, 나의 무아지경의 상태를 깨뜨리는 한 마디가 그 시공간을 침입했다. ‘증산도세요?’ 내 옆에 앉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은 거시는 나이든 아주머니 한 분. ‘? 아니요. 이거 교회주보인데요.’ 하며 주보를 드리니 시를 가만히 읽어보시고는 이렇게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시며 의심에 찬 볼멘 소리를 내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일단 답은 했는데.. ‘평생 그렇게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그렇게 되려고 노력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그렇지 않을까요?’ 라고.. 그리고는 기차가 와서 내가 먼저 자리를 떠야 했고 아주머니와는 마저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아주머니가 한 말이 자꾸만 내 마음을 콕콕 찌른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답지만 슬픈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외롬과 괴롬으로 질퍽거릴 때 조용히 무릎 꿇고 바위처럼 입을 닫고 영혼의 스승의 가르침에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덜 가지려 하고 존재하기를 더 많이 하려 하고 당장 내일의 걱정과 격정에 휩싸이어 지금의 이 고귀하고 찬란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진열된 현란하고 매혹스런 가치들에 눈과 귀와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샘터의 까만 밤이면 펼쳐지는 별들의 꽃밭과 어둠 속에 더 깊어지는 나무들과 바람이 함께 춤추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할 수 있을까?

사무실 거실에서 된장국 하나에 야채 반찬과 곁들어진 우리들의 맛깔 나는 이야기 소스 더해서 함께 밥 먹는 그 시간 충분히 누리며 그 때 우리 속에 자라나는 한 뼘 한 뼘의 신뢰의 양식을 감지할 수 있을까?

많이 알려 하기 보다는 지금 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며 깊은 숨과 함께 한 발 내딛기에 힘쓰고 갇힌 지식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있는 지식에 온 몸이 떨리는 순간을 경험하기를 힘쓸 수 있을까?

아무리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그분이 하도 무심해 원망하는 마음 가지려 하다 그것 거두고 그 순간에 나지막히 들려오는 하나님 음성에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나의 구주라 다시 고백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 감싸 안으며 다시금 그 분을 닮은 생명력 한 가득 내 몸을 채우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하기를 나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글쓴이 : 빛나는 호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