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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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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보기'에 해당되는 글 173

  1. 2010.06.28 라흐마니노프 '라일락'을 듣다가
  2. 2010.06.23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따르미의 가야할 길 (2)
  3. 2010.05.29 역사 속에 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
  4. 2010.05.17 선택을 잘하면...
  5. 2010.04.12 박하차 한잔2 - 부모교육운동
  6. 2010.03.04 초등1학년 <생활지도 기초자료>를 쓰다가
  7. 2010.02.19 떡국 나누던 날
  8. 2010.02.16 박하차 한 잔을 나누며 -
  9. 2010.02.07 판소리창작극 <덝들의 꿈, 날다> 강추~~! ^^
  10. 2010.02.05 난 엄마니까 ^^;; (1)
  11. 2010.01.30 한자 급수따기에 대해서
  12. 2010.01.27 우울한 이에게
  13. 2010.01.14 라면파티2 - 조영권 변혁일기(12월)
  14. 2010.01.12 <라면파티2> 1주년^^ -조영권 변혁일기
  15. 2010.01.07 <주기도문> 진심으로 하기 (4)
  16. 2010.01.07 타샤튜더 - 그녀의 메세지 (3)
  17. 2010.01.06 2010 겸허한 날개를 달고 ^^ (2)
  18. 2010.01.05 2010 강추 기도문
  19. 2009.12.16 2009년을 돌아보며 감사의 고백을... (4)
  20. 2009.12.14 나들목이 마을별 예배 드리는 주일 홍은 가교는...
  21. 2009.12.12 허니네 새 가족을 소개해요~^^ 토~토!
  22. 2009.11.27 Anne Murray(앤 머레이)- You Needed Me
  23. 2009.11.05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5)
  24. 2009.10.12 요즘 저는...
  25. 2009.08.24 엄마의 나쁜 습관 바로잡기
  26. 2009.07.31 2009 홍은mt 둘째날 (2)
  27. 2009.07.31 2009 홍은 mt 둘째날
  28. 2009.07.27 2009 홍은 가정교회 1박 mt ^^
  29. 2009.06.12 나의 달콤했던 시절
  30. 2009.05.14 "죄"와 관계 정리하기 --- 에배소서 2:1-10 묵상

라흐마니노프 '라일락'을 듣다가

2010.06.28 12:54 | Posted by 허니즈맘
http://cafe.daum.net/tlffos1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직접 타이핑하려니까 넘 낯설다.
자주 안 쓰는 단어처럼 써 놓고는 내 발음이 맞았나 다시 확인까지 해 본다^^;;
오랫만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려고 음악카페에 들어갔다가
라흐마니노프에게 '라일락'이라는 곡이 있는 걸 첨 보고 흐뭇하게 듣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디가 라일락이어서 좋다고 한번 더 흐뭇해 하는 중이다. 

내 아이디는 라일락이다.
왜 그런 낯 간지러운 아이디를 택했는지...^^;;

어릴 때부터 라일락향기와 그 꽃 모양도 몰입해 보면서 무척 좋아했다.
내가 자란 집에는 꽃나무도 일년생 꽃도 많았다.
그리 넓지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 꽃이 지질 않았다.
그 집은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고 지금도 친정부모님이 사신다.
추억이 많고 집의 아늑함을 깊이 경험하고 살았다.
우리 가정사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을 지키신 부모님 덕이다. (감사하다)

여러 종류의 꽃을 보며 꽃모양과 향기를 맡으며 내맘에 가장 다정한 꽃은 라일락이었다.
집에 있는 라일락은 마루 창문 시야에서 벗어난 장독대 옆에 보라색과 흰색 꽃나무 두 그루이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피어나 은은하게 바람 타고 수줍게 자기 존재를 터치해 오는 라일락은 끝내 나를 집밖으로 불러내곤 했다. 일년에 몇번 가지 않는 장독대 계단에 올라
그 가지를 쥐고 
소박하게 피어난 꽃더미에 얼굴을 묻게 하고 그 자잘한 귀엽고 섬세한 우주를
시간도 잊고 관찰하게 했다.

때때로 가지를 꺾어 집안에 들이고 싶었는데 채 피지 않은 꽃망을들이 안타까워 차마 그러진 못했다. 그런데,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몇 가지를 잘라 탐스럽게 꽃병에 꽂아
놓으셔서 집안 구석구석까지 그 향기가 가득했다. 가족들을 위한 어머니의 라일락 개화 세리머니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고 그 이후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와 라일락의 매해 첫 만남은 해가 다진 한 밤중이었던 거 같다.
4월말이나 5월초의 바람은 쌀쌀하지도 않고 옷자락을 날려도 기분 좋은 그런 반가움인데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용히 걷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라일락 향기를 담은 바람 한자락을 느끼면
얼마나 설레이고 마음이 즐거웠는지 행복이 뭔지 알겠다 싶은 감동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눈을 뜰 때 "향기"라는 예쁜 말이 엄청난 파워를 지녔고 누구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소망하는 것이 평생의 과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향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좀 가벼운 듯 싶기도 했지만 
라일락 향기가  떠오르면서 인위적인 백화점 향수에 갇혀있던 "향기"라는 말이 매우 고상하고  새롭게 다가와서 평생의 '거룩한 부담'조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이루시리라 믿어지고 평안할 수 있었다. 

내가 내게 붙여준 아이디가 '라일락'인 것을 생각하면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닌 소망으로 간주하더라도 난 정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보인다.
그런데,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이 내 발목도 잡는 나이가 되어서 거울을 보면 헉~ 향기까지는 몰라도 좀 실망스럽다. ^^;; 맨날 애들에게 곱지 않은 인상을 쓰고 내가 바라지 않는 주파수가 발달되고 잡음이 심하고 신경에 거슬리는 소통을 자진하다보니 내 미간에 입가에 얼굴 근육에 사나운 긴장감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어쩌다 셀카를 찍을 때, 혼자 있다가 무심히 거울을 보았을 때, 아이들 야단치고 화장실 들어갔을  때, 누군가 찍어준 사진에서 낯선 모습을 보았을 때... 난 좀 심하게 실망한다.

난 욕심 많이(?)  안 부리는데 왜 더 순탄치 않을까?

왜 더 맘이 편하고 자유롭고 고상하고 평화로운 소통만으로 살 수 없는거지? 
바보같은 질문으로 내 남다른 욕심을 드러낸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이끄신 은혜의 역사가 없었다면 
그러한 나의 실망은 얼마나 깊은 절망과 좌절이었을까 아주 끔찍했을 것이다.
난 좀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많고 자기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 평생 영적 과제에 "자아도취" 그리고 "자기부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순탄한 성장기를 보낸 편인 내가 소박한 인생관을 갖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름의 자아도취에 빠져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함몰구덩이를 겨우 피해다니고 살았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시커면 구덩이를 직면하고서도 생명이 있는 길을 분명히 보게 되었고 그 좁은 길을 가는 것이 힘들어서 때때로 무기력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라일락 향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소망이 있는 내삶에 새 힘을 얻는다.

우리 동네에는 라일락나무가 거의 집집마다 있었다.
요즘은 옛날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건물, 가끔 다세대 건물 한켠에 좁은 땅에 심겨진 것을 본다.
라일락을 가로수로 심은 길이 있으면 어떨까 재미난 상상을 하다가 
라일락 향수를 하나 구해 볼까 문득문득 그 향기를 그리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외모나 이미지보다는 나의 영혼의 무게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 하는 그 사모함이 더 깊어지는 것이 간절함이 되어서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이 무엇인지 평생 알아가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한다고 절절히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향기는 내 생명이 어떤 생각과 소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라일락만큼 매력적인 색깔있는 향기는 아닐지라도 라일락처럼 소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삶이 되어서 반가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즐거운 손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009년 4월 친정집. 하얀 꽃나무가 라일락이고 그 뒤에 보라색 라일락이 하나 더 있다. 땅에 화분도 않은데 어둡게 나와 아쉽당^^; 부모님의 가정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는 마당이다.


        

 
       

06/16 '요한의 부활증거4(요21:15-25) 

수요설교를 집에서 혼자 듣고 마음에 새기며 예배했습니다.


주일 밤에 컴을 드뎌 고치고 소리를 듣게 되어 나들목 예배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구,  오늘도 수요 오전예배를 가려다 못 가면서  어제 이멜로

받은 오늘 수요예배에 대한 기대를 지난 주 수요예배 말씀을 사모하는 맘으로 돌리고

모처럼 들은 말씀을 동시에 컴으로 기록해 보았습니다.

우리 홍은 가족들은 수요예배에 참석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

제가 이렇게 올리는 나눔이 동일한 은혜가 흘러가는 또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사복음서에 드러난 부활의 메세지를 다루었고 오늘의 요한복음 마지막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마무리 한다.

본문 / 요21: 15~ 25

15~19 : 예수님과 베드로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20~25 : 예수님과 요한

 

 ---- 내가 부활하여 내가 부활의 주인이 되었고 생명이 되었으니 "나를 따르라"

 

+나는 어떤 초점을 갖고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1. 나와의 관계 :

내가 아닌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잇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자신을 믿었다.
  
베드로는 철저히 3번이나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했고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기쁘지만은 않다.

예수님의 현존에 비추이는 자신의 좌절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갈대)' 옛이름을 3번이나 부르시고 

('게바-바위' 라고 부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인격적 꾸짖음으로 좌절한 그에게 배려하셨다.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시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회복 시키신다.

완전한 사랑(아가페)을 요구하시지만 인간적 사랑(필레오)으로 가난한 맘을 드러낸다.


"베드로 너는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의 본질은 예수님께서 경쟁적 사랑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고

베드로는 항상 자기의 의지와 혈기로

자신의 힘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계시다.


불안하여no(17절) --슬퍼하며 깊이 근심하며

하나님 뜻대로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기독교는 주술 종교가 아니다. 정상적 근심과 고민을 촉구하신다. 
                     
---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사랑이 부족하지만 내 사랑에 대한 진심...  

    
     성장하는 예수 따르미의 진정한 고백

    내 신앙과 사랑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애통함)

 

2. 다른이와의 섬김의 관계

사랑한다면 수평적 관계가 된다. "내 양을 먹여라"

복음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을 돌보라

어떤 직책이 되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섬기는 행함을 먼저 하라.

그 상황의 베드로는 실패한 직후의 어린 신앙인이었다.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 내 양이다.

내 자녀, 내 남편, 내 가족이 내 양이고 좀더 눈이 넓어지면 맡겨진 양이 더 보인다.


양을 먹이는 것 --- 요10장  (선한 목자 예수님)

내가 직접 줄 수 없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먼저 내 인생의 답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댓가를 지불하는 희생을 통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3. 동역자들과의 관계

영적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비교를 하는 것이다.

현장의 7명의 제자들... 그 중에도 요한을 시기하고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20,21절)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고유의 트랙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상관하지 말아라(22절) 하신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여기에서 '너는' 이 강조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자신의 수준에서 자신의 가는 트랙에서

자신의 좌절에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고

내게 주신 자들을 사랑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을 따라 내 길을 가라고 하신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길 원합니다.


전 사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지는 모르겠지만
또는 그 잠재의식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지만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러는 것에 거부감이 심하고
전혀 그런 방법으로는 생각을 끊고 사는 것이 가능한 편입니다.
자랑이 아니고^^;; 그 거부감 저변에는 실수나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예 비교를 할 생각을 안 하는...^^;;

근데, 저의 생각의 잣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제 생각의 기준에 맞추어 시시비비를 가르게 될 경우에
편견에 의한 판단일지도 모르는데
적대감이 큰 편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교만한 소취라는 생각을 하며 때마다 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자각을 할 때에는 참 괴로운 맘입니다.
때로는 시시비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다름으로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전 우습게도 대치되는 갈등상황의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아시다시피 제가 웬만하면 회피하는 스타일 아닙니까?::

개선 점을 대안으로 나눌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겸허하게 사는 것이 제겐 살길입니다.

궁지에 몰려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와 대면하는 것이
가장 영적으로 힘든 경우인데
제 안에 긍휼이 없음을 발견하는 시점이 회개의 때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힘든 때는 어떠한 상황인가요?
너의 트랙과 남의 트랙을 인정하고
겸허히 생명 자체인 나에게 순종해라 메세지를 듣는 때는 언제인가요?

궁금합니다. ^^;

역사 속에 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

2010.05.29 13:56 | Posted by 허니즈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의 진실한 고민!

선택을 잘하면...

2010.05.17 11:25 | Posted by 허니즈맘
과거의 선택이 가져온 혜택...

참 희망적인 경험을 말하는 기분 좋은 표현입니다.^^



가끔 <경제, 이제는 환경이다>라는 다큐를 아침 시간에 틀어 놓습니다. (방송대학tv = oun)

오늘의 방송은 미국 포틀랜드의 도시계획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전차의 도입은 교통문제(교통정체, 에너지낭비, 주차갈등 등)를 해결했다고 말합니다.

공해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여유롭고 자연친화적인 도시문화와 개발 가능성의 증진,

부동산 가치 등 도시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에 대해 아주       

럭셔리한 분위기로 전개합니다.

나쁘진 않지만 소박함의 차원이 미국과 유럽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도 가난한 소외층이나 낙후된 동네는

소위 저렴한 주택가(긍정적) 형성의 가능성을 제시할 때에도 

미국의 흔한 빈민가의 모습은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유색인종이 거의 없는 영상이었던 거 같습니다. -.-;;
 


환경을 존중하는 경제만이 승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경제발전을 위한 환경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과정은 참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지금의 경제수준에 이르는데

자본주의와 인본주의가 부딪히는 것은 불가피한 것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소외계층이 생겨도 大를 위한 희생이라고 일축하고

당장의 사업수완의 명분으로 자연을 소모품으로 삼고 

후대를 책임지기 위한 자연을 지키고 회복하는 과정은

뒷수습거리로 부담이 되어 주객이 애매한 숙제로 남기 일쑤입니다.




미국의 번영과 미국의 정책이 얼마나 완전한 도시계획인지 가리려고

포틀래드 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사업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민으로서 갖추어 나가야 할 책임있는 주권선용에 대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선택이 가져온 혜택...

참 희망적인 경험을 우리는 만들 수 잇습니다.


         

자원의 재투자 재배치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6월이면 곧 선거입니다.

후보자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로서 성실히 투표를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선된 자들이 일을 잘 하도록

열심히 국민의 힘을 지속적으로 실어주는 역할을

우리가 잘 해내면 참 좋겠습니다. 
  
TAG 투표

박하차 한잔2 - 부모교육운동

2010.04.12 10:48 | Posted by 허니즈맘


 

+ 학부모로 살아남기



도시락 3월호에 <박하차 한잔> 시작하고

지난 4월호에 원고 마감을 못 지키는 바람에 한번 건너뛰었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라면 3월은 가장 할 말이 많은 때인데...

지나고 보니 제가 경솔히 너무 많은 말을 할까 싶어

오히려 쉼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월을 생각
하면 참 제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하네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드디어 1,3,5학년 된 초등학생 삼형제의 엄마에게

지난 3월은 참 바쁘고 또 머리도 좀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학급 임원선거, 임원엄마 모임(?), 전교어린이회 선거, 또 엄마 모임(후원),
 

각 학급 총회와
연이은 공개수업(총회와 공개수업이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쪼


개어 학교 아래 위층 뛰어다님), 청소, 녹색어머니회(아이들 등교 시 신호등


앞에서 깃발 드는 봉사) 등등...

자발적인 것도 있고 아들의 선택에 편승된 것도 있고...

저는 좀 예민해서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그러시진 않을 겁니다.

넉넉히 지켜보며 보듬으며 아이들과 함께 3월을 설렘으로 맞으시고,

보람을 맺을 건강한 긴장감을 즐기는 가정도 있습니다.

저는 바쁘고 머리 아픈 것을 넉넉히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이 과정이 성장과정이라는 것은 알기에

정신없이 지나치거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나름 긴장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제게 맡겨 주신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때때로 피하고 싶은 상황(학교 내에서의 학부모들의 관례)에


직면하고
가까이 뜻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격려도 받으며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부모교육(등대지기학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함께 성장하고자 나눔을 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매우 집중적으로 저의 부모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내 인생의 현재 좌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욱 성장하고자 새로운 첫발을 떼는 전환점이 되었고

현실적인 기대와 소망이 다져지는 내 안에 힘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줏대를 사용하고 내공을 쌓는 수련의 길에 접어 든,

갈 길을 아는 나그네로서 희망차게 출발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종의 부모교육 시민운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영향은 제 일상에 성경적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준 것 같습니다.




현재의 나와 아이들을 돌아보면,

배운 것을 적용할 것을 한걸음씩 실천하며

교육방법이 체질이 개선되길 염원했는데

변화는 들음에서 나는 것 맞지만

속사람이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가를 다시금 절감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로서

학부모 선배의 역할을 해낼 때면,

자녀교육의 방법적인 분별에 대해

좀 더 선명한 지도를 읽고 안내하게 된 거 같아

듣고 배운 선경험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변한 것을 느끼는 부분은

제가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심정이 더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제 소신을 지키려다 남을 무시하거나

나도 모르게 우월의식(내 것만 옳다)을 드러낼까 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의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가치기준이 크고 작게 달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첫 매뉴얼을 잘못 전수받아 왜곡된 습성을 갖은 학부모들...

저나 그분들이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경계심도 많고

방어적으로 나름의 기술을 펼치는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한 그 분들의 속사정을 생각하면 불쌍한데

언젠가 옳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을 알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부딪쳐서 꺾어야 한다는 그 방어적 적대감이

제겐 가장 큰 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딪치는 건 불가피 하지만, 꺾이든 꼿꼿하든

그것은 제 몫이 아닌 그들의 문제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과정으로 인정하니

저의 용기와 도전이 허무하거나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는이에 대한 애틋한 맘이 좀 더 확산 된 거 같아

3월은 제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모교육 강의



저는 듣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성향에는 개선의 타진이라는 긍정적인 부분과

들은 걸로만 만족하고 과제가 해결된 듯 착각하는 부정적인 속성이 있지만,

자녀가 성장할 때 같이 성장해야 하는 부모에게

계속적인 배움은 꼭 필요합니다.



이젠 어떤 강의는 진부하게도 들리고

제 안에 고인 물이 귀를 닫게 하고 마음도 굳게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체성 문제

그리고 그 갈등과 무지의 심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끝이 없습니다.

반복적인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지름길도 정답도 없기에

우리는 안내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었던 등대지기학교는 지금 4기가 4월에 개강했고

5기는 올 가을 11월에 시작될 예정인데 적극 추천합니다.

그곳 강의들은 일관성 있게 내 삶을 성찰하고

개념을 새롭게 해 주고 건강한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근간을 튼튼히 하라고 격려합니다.

현 교육과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무력감에 허덕이는

부모와 교사에게 힘없는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약하지만

그 아픔을 아는 우리가 함께 바로 서자는 등대지기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현 공,사교육 실태에 대한 연구자료 분석을 통한 평론으로

사회적 안목을 갖추도록 지원해 주고.

건강한 가치방향을 튼튼히 해주는

신앙적, 정신적, 정서적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우리 나들목교회에서는 4월 말부터 5월까지

<기독 학부모 교실>이-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열립니다.

역시 부모인 나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교육의 본질과 자녀에 대한 성경적 이해, 자녀교육 방법(예배, 성품, 은사 등)

그리고 부모교육 운동과 하나님 나라 확장(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배우고 소그룹모임을 합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기도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제대로 살아갈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배우기도 힘들고

제대로 배워도 제대로 사는 것이 녹록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배우지 않으면 무지의 걸림돌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횡포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계속 성장합니다.

요즘 성장통은 예전보다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삶의 필터에 오염이 심해서일 겁니다.

부모도 성장통이 있습니다.

그건 부모도 살아있고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아가자면

그 괴로움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성장의 동행인으로서 이해하고 세상을 줏대있게 살아간다면

성장통 주께 드리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우리 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삶들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으며

건강한 성장을 더불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며

강하고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유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디도서3: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추모종 (사진/최문철님)

막내가 입학을 했다.
드디어 우리 삼현이가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1,3,5학년...

예전에 큰아이 친구네, 삼형제네처럼 그 미션이 내게도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매년 <생활지도 기초자료> 라는 걸 써오라고 한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환경조사서>라는  것에 부모님 학력과 직업뿐 아니라
집에 가재도구, 가전제품을 얼마나 갖추었는지 표시해서(때로는 거수로ㅜㅜ)
경제력까지 분석접수를 하는 낯뜨겁고 불편한(상처를 주는) 통과의례를 치뤘다.

요즘은 부모님 학력이나 직업란이 없어졌다.

또 바람직한 변화라면

기본적인 아이에 대한 정보(취미, 특기, 성격, 장래희망)에 덧붙여

아이의 기호와 습관, 티비시청 습관, 샘께 하고 싶은 말을 쓰게 한다.  


나는 3월 초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 중 하나가

<생활지도 기초자료>를 성심껏 작성하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쓰고 심지어 복사해 놓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 해에 아이의 변화된 상황을 비교해 보고

적당한 표현은 다시 인용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내겐 매우 진지한 과제이고 의미까지 있는 시간인 것이다.

  

정헌이는 잘 해내리라 믿지만 좀 까불어서
아무 때나 친구들 웃기려고 애드립을 해서

샘께 폐를 끼치고 떠드는 아이로 찍힐 까봐
유치원 졸업식 이후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 정헌이가 얼마나 사랑스런 아이인지

주책스럽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려고

형들 때처럼 애써 보았다.


나의 취미 : 책읽기, 장난감 역할놀이, 종이접기, 만화그리기.

나의 특기 : 배려, 도와주기, 기도, 음악듣고 익히기, 친구들 웃기기. 

나의 성격 : 밝고 명랑, 장난끼 많으면서 진지함.

장래 희망 : 태권도 선수 (도장출입 이틀째^^;)

좋은 습관 : 질서의식, 불공평한 것 조절, 손씻기

나쁜 습관 : 손가락 입에 넣기 (심심하거나 집중할 때)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꿈을 발견하고 꿈이 자라길 바랍니다.

정헌이는 주변인들을 웃기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애드립을 잘합니다.

수업시간에 폐를 끼치고 야단맞을 때 충격(?) 받을까 걱정입니다 

(혼날 일에는 당연히 훈계를 받아야지요).  

사실, 정헌이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서

누구나 자기를 좋아해 줄 거라 믿고 쉽게 사귀고... 정이 많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 이름을 자주 불러 주시고, 많이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넘 길게 쓴 걸까?^^ (사실 형들은 더 길다)

그런데, 내가 만난 샘들께서는 나의 이런 진지한 태도를

잘 받아 주시고 좋아해 주셨다.

아이가 특별대우를 받은 건 아닌 거 같고^^

암튼 상담을 할 때 샘들께서 아이를 관찰해 주시고

아주 깊은 대화를 해 주셔서 감사했다.  

 

초등학교는 입학하고 첫 주에는

수업이 1시간 반을 채우지 않기 때문에
엄마들은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름 유익한 수다를 떤다.^^

이제, 처음인 1학년 어머니들...

내가 좀 나이 들어 보이는지 ^^;  

첫 아이 안 같은지 내게 질문을 한다.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은 좀 하고 말도 많은 나는

준비된 멘트인 양 질문에 답 술술~ 덧붙이기도 길게~.

(두번째 만난 엄마에겐 '등대지기학교'를 권한다^^)

 

1학년 아그들이 부디 학교에서

행복한 첫 해를 살아가길 바란다.

이를 위해 새내기 엄마들도

건강한 친구를(새로운 학부모친구) 사귀어야 하는데

부모도 자신을 위한 생활분석(지도^^:) 기초자료를 쓰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나도 써야지...;;

좋은 친구를 만나길 기대할 뿐 아니라

“좋은”의 개념을 진실하게 해서

세상의 대세에 휩쓸리지 말고 줏대있는 부모로서

앞으로 계속 아이와 함께 꾸준히 성장하길 소망하며 

이 첫해를 서두르지 말고 한걸음 마다 작은 경험들을 격려하고 

사랑과 지혜로 보듬어 가길 바란다.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그렇게

내 인생에 다시 안 올 1학년 엄마를 누리고 싶다.

떡국 나누던 날

2010.02.19 00:56 | Posted by 허니즈맘
 

바하밥집 <떡국 나누던 날> -- 홍은가교


참 시간 빠르네요.

벌써 지난 주 토요일, 설 전날 밥집에 홍은가족들이 다녀왔습니다.

꾸준히 올리시는 바하밥집 후기를 보며 ‘사역의 뒷심은 후기 나눔이다’ 했었는데 이번엔 좀 늦게 제가 올리게 되었네요.

전 토요일 바하밥집 사역에 처음으로 참여한 거였는데 그 동안 사역 후기를 계속 읽어서 그런지 별로 낯설지가 않더군요. 손발은 서투르고 하는 일이 없어서 어색하기도 했지만요. 물론 현장에 가기 전에 미리 그려본 장면과 실제로 식사를 준비하고 나누고 정리하는 과정이 좀 다르기는 했습니다. 학교 급식 봉사를 가더라도 줄을 서 있고 보면 배식하는 손이 왜 그리 바쁘던지 몸놀림이 둔한 저 같은 사람은 시간내내 쩔쩔매곤 했죠.
그런데, 그 날은 떡국이라 좀 쉬운 편이었다고 손이 덜 바쁜 경우였다고 하시더군요. 심지어 전 국자를 들고 있다가 전해주는 그릇을 한번 더 잡고 서 있는 없어도 되는 역할을 했지요.^^;  현숙언니의 사랑 푸는 국자는 떡과 고기를 잘 분배하고 국물도 적절히 푸짐하게 담아내고...


이번 모임은 설 명절을 앞둬서 이제까지 계속 음식을 준비해 주시던 귀한 분들이 집안일을 하셔야 하니까 모처럼 봉사를 쉬신 거라 들었습니다. (전 그 분들 중에 한 분을 아는데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2주 전부터 저희 가교에서 시간이 되는 분들이 함께 하기로 했는데 ㅎㅎ 제가 일복이 없나 봅니다. 언제 연락 오나, 당일날 일찍 만나나, 고명 만들고 야채라도 썰어야 잖나 했는데, 떡국 국물은 전날 현숙언니가 사무실 일하며 오후 내내 오며가며 우려내고 -진국이었음다 -예술적인 계란지단 고명과 끝내주는 맛의 무채김치를 현숙언니 어머니께서 해 주셨다는 겁니다. 설 전이라 바쁘실 텐데 아주 기뻐하시며 손님들 대접 잘하라고 완벽한 세팅을 밀어 주셨습니다. 손님들도~ 무채에 감탄하셨습니다.


지난 신정 때 밥집에서 떡국의 떡찜 됨을 경험한 후라

-- ^^; 끓여서 나갔더니 30여분 사이에 떡이 국물을 다 마셔버린...ㅜㅜ --

우린 매우 지능적으로 “떡을 물에 불리고 채에 건져서 현장에서 국물에 끓여 대접한다” 계획하고 나섰는데 날이 너무 차고 가스 화력이 부실하니 떡을 충분히 익히기엔 좀 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아쉽지만 기다리시게 하기 죄송하니까 ‘떡찜 보단 낫지유’ 하며 국물과 김치로 맛을 달래며 약간 생생한 떡을 감수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한 자리에서 떡국을 많이 먹은 건 처음인거 같네요. 서서 먹으니 배부른지 모르고 맛있는 김과 예쁜 고명 왕 올리고 감칠맛 나는 김치랑 막 먹는데~~ 호호깔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참여한 분은 대장님,  윤민정 목자님, 김옥란 목자님.

홍은 가교에서는 이대선 집사님, 아들 예담이, 유현숙 간사님, 조영권 목자님, 저. 
그리고, 식사하시러 오신 손님은 25분 정도 되셨나 봅니다.

그 동안 밥집팀이 잘 섬겨 오셔서 그런지 손님들은 모두 밝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 받으셨고 우리가 가져온 무거운 짐을 펼치고 거두는 작업을 기꺼이 도와 주셨습니다.


밤새 내린 눈이 녹아 공원 바닥이 젖어있고 간간히 부는 바람도 꽤나 차가웠는데

하늘은 겨울치고는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빛이고 햇살이 고운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곧 봄이 오고 날이 풀리면 손님들의 일상의 고단함이 좀 나아지시겠지요?

지금은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고 예배드리시는 몇몇 어르신들을 뵈면

그 동안 이 분들의 얼굴빛이 더 밝은 모습으로 변하신 것처럼 느껴지고

예배 전에 뵐 때의 모습이 갈수록 편안해 보이시는 건
제 맘이 편해져서만은 아니겠지요? 


밥집 대장님의 소망대로 일주일에 한번 식사만 드리는 게 아니고

손님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밥푸는 따스한 손길과 친절한 관심의 인사를 통해 전달 되길 바랍니다.
 
봄눈 녹듯 그분들의 거칠고 단단하게 언 속사람이 열리고 
어둡고 무기력하던 삶에 새싹 돋듯 희망의 전환점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며 수고하시는 밥집 사역에 성령께서 친히 일하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즐거운 은혜가 더 많은 나들목 가족에게 편만하길 기도합니다.   

  

       


 

박하차 한잔 드실래요? ^^


박하차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박하차 마니아는 아니고요, 가끔 커피를 안 마시는 지인들이 집에 오면 별미로 함께 마시곤 합니다. 박하차는 카페인이 없고 그 싸한 성분이(멘톨) 치료 효과가 있는 데에다 감기를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니 참 착한 차 같습니다. 


“박하차 한잔”...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블러그 문패입니다. 전 블러그를 만들 때 쉼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박하차 한잔을 마신 듯 또는 누군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눈 듯 삶을 누리고 나누며 기쁨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맘이었습니다. 블러그는 늘 저에게 자기성찰이 가능한 소박한 책상과 애착이 담긴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ㅎㅎ 나누기에는 부끄러운 자아도취와 때때로 힘겨운 자기부인을 다룬 잡다한 글들뿐 입니다. 그런데, 이 블러그 덕분에 도시락팀의 영광스런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고정란을 맡아 도시락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가문의 영광이네요.


지난 해 남편이 <라면파티2>를 개업하면서 나들목의 많은 가족들께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힘입어 기적의 1년을 살아내면서 남편은 도시락에 1년 내내 고정란을 맡아 <라면파티2>를 운영하며 경험한 단상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풍성히 누렸습니다. 남편이 고정란을 접자마자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좀더 겸손해질 수 있는 과정이 되길 소망하면서 고정란을 맡았습니다. 왜냐하면, ‘글의 내용과 논리나 표현력이 빼어나야 공적인 자리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적어도 자신에게 자숙을 빙자한 소심함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많이 부끄러울 것이고 그 나눔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이나 문제의 직면은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접목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성이 안팎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제가 앞으로 박하차를 함께 마시며 나눌 이야기는 “자녀교육” 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한 “교육”이라는 키워드...

익숙해도 별로 좋은 감정 남아있지 않아 맘이 불편하기 조차한...


거기에다 여러 가지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 버리는,

삶의 무게를 본질적으로 다르게 해주는 “자녀”

내 소중한 아이들...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소위 세상적인 속성으로 경솔한 표현을 해 버려 죄송합니다.


자녀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신 기업입니다.

교육은 생명력 있는 것이고 희망이며

인생에 인격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참 힘없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 고독하다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지만

때때로 성경 말씀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기 줏대를 내세우다가

세상의 쓰나미 같은 교육풍조에 무기력을 통감했습니다.

또 외부적 혼란을 이길 만큼 속사람이 강건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구하지 않음으로 일용할 은혜가 근근할 때도 있고

반복적인 죄성의 대면에 지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영성을 드러내는 것은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부모님들까지 한꺼번에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에서 교육이라는 과제를 화두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인간이해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성을 절절히 경험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백했지만 - 우리 삼헌이가(귀헌,승헌,정헌)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데 - 전 아이들를 양육하면서 비로소 저의 강력한 이기심, 사랑과 인내의 부재를 아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제 블러그의 대부분은 그로 인한 궁상스런 자기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제 주변에는 매우 의지가 강하고 사랑이 많고 인내심이 남다른 훌륭한 어머니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그 분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연약한 사람에게 친절한 격려와 위로를 전합니다. 그분들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인생에 대해 인정합니다.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겸손함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젊은 부모들이 (3.40대 포함^^) 자기애가 강해서 자기몰입을 원하는 성향이 흔하고, 매우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적 습성들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나 자기를 성찰하는 태도가 건강하게 생존하기 참 어려운 구조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자신이 그렇다고 동의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물질만능주의나 이기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무한경쟁...그 마수는 우리 세대의 삶을 화려하고 첨예화시켜 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고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기준, 자녀를 이끌어 주는 최선의 때와 방법들이 옳지 않고

함께 가는 방향이 잘 못 되었으니 관계가 깨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치 개념의 본질 자체가 오염되어서 정체성도 관계도 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팽배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은 세상권세와 맞닿은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며 그 경계 너머 더 안전한 곳을 갈망하며 소모전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힘없어도 고독한 불안을 견디며 살아남을 길을 찾고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교육의 실정에서 최선의 해법은 자녀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입시교육의 횡포에서 정의로운 주권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의 파트너인 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학교와 가정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평화와 자유가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사랑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전수하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깨닫고 바로 잡고 변해야 합니다.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줄 수 있는, 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는 부모로서 계속 성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전 이제까지 남달리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으로 자녀교육을 실천하는 선두자도 아닙니다. 제가 이 지면을 통해 감히 가르치듯이 말하고 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반복적 시행착오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바른 방향을 계속 가라고 자신에게 격려하기 위해 열심을 내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몹시 못마땅한 듯 “마치 정답을 다 아는 것 같군요” 핀잔을 듣습니다. 제가 잘 못 전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경우일 겁니다.


인생에 대해 그런 것처럼 자녀교육에도 정해진 정답은 없고

다만, 바른 방향만이 있습니다.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시행착오 또한 각자 불가피한 것임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멀고 지루한 마라톤일 겁니다.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고 지치니 우리가 함께 불가피한 성장통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해, 저의 인생전환 키워드는 “회심” 그리고 “용기”였습니다

그 때의 은혜로 이 지면을 잘 감당할 수 있길 기쁨으로 소원합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더욱 겸허해지길,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이번 달 추천하는 책

부모가 학교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달팽이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제인넬슨, 쉐릴 어윈, 프리미엄북스

나는 아이보다 나를 사랑한다, 신의진, 걷는나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 서원희, 내일을 여는 책

칭찬과 꾸중의 힘, 상진아, 랜덤하우스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 박재원, 스쿨라움

내 아이의 공부를 살리는 아빠 마음습관,  ..

굿바이 사교육, 시사인북


+ 위의 글은 나들목교회의 월간지 <도시락>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판소리와 친하신가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 판소리에게 첫인사 했어요. 편견이 깨졌습니다. ^^

 

전  판소리에 편견이 있는 문외한 족이었거든요. 왜냐하면~

1. 뭔소린지 못 알아들으니까 지루하다.

2. 넘 소리 지르니까 시끄럽다.

3. 예측할 수 없는 가락이 불편하다.


제대로 실황 판소리 한번 들어 본적도 없이

방송을 통해서 또는 예전에 어찌어찌 음반으로 들어 본 것이 다면서

그 경험만으로 늘 익숙한 서양 것만 가까이하고 산 것이 넘 오래였네요.

미디어를 통한 판소리는 전달이 약해서 제맛을 알기는 내겐 거의 불가능했다는 걸 깨닫고^^.


1. 판소리는 현장감이 주는 재치와 특유의 소리전달 파워가 있으니

   그 엄청난 대사는 라이브로 들을 때 여느 연극과 달리 
   귀에 쏘옥쏘옥 감칠맛나게 엉키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고

   시원한 약숫물 씹어먹는 맛이더라~

   그래서, 그 전통있는 마당놀이는 겹겹이 포복절도하는 관객들에 휩싸였었나 보다

   이제야 알겠네 했지요^^


2.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거칠게  악쓰는 거 같아

   예전에는 심지어 시끄럽다고 무식한 반응도 했었는데

   이번 현장에서 당겨지는대로 푹 빠져보니,

   감정의 극대화를 표현하고 바로바로 토해내며 감정을 담아내는 데에는 그만이며

   그 소리 크기의 그릇도 다양하고 섬세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어요.^^


3. 딱히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좋아라 한 건 아니지만

   판소리의 가락보다 위의 쟝르가 다양함과 섬세함이 앞선다고 생각했었는데

   ㅎㅎ 그것도 아니었네요. ^^;

   그니까 따로 대사 치지 않고(간간히 있지만) 소리로 계속 이을 수 있는 이유가

   독특한 가락에 그 많은 대사를 풀어내어도 마냥 자연스럽고

   잘도 신나고 때로는 슬프게 청중을 몰입하게 해 주는 힘이 있더군요.(신명?)

   오페라의 대사의 그  정형화된  가사나(곡만 듣고 싶은...번역하면 감동 깨지는)

   뮤지컬의 대사와 노래가 뚝뚝 끊어지는 어색함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던데... 
   (물론 대중가요를 능가하는 흡인력 있는 창작곡 좋아요^^)

   
  

왜 여직 모르거 살았을까요? ^^

사실 판소리에는 까막눈이고 문화생활 마이너스 지경이었으니 당연한 거죠.^^;;

 

아~~ 이거 또하나!!

판소리에도 하모니가 가능하다는거 그건 아마 창의적 연출이겠죠?

아님 제가 무식해서 전통을 잘 모르는 건가요? ㅎㅎ

 

제가 굳이 이렇게 매력적인 잼나는 판소리에 새로운 눈뜨기

감상후기로 앞세우는 것은

내가 잘 몰라 알아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외국어를

맘이 열려 경청하니 다 알아 듣겠더라~ 하는 놀라움이 넘 즐거워서랍니다.

저 같이 판소리 문외한인 대한민국 사람 너무 흔하지 않을까요?  ^--^

 

김수형 님의 작가로서의 그 뛰어난 영감은 익히 아는 바였는데

이번 주제에서도 "역시" 하며 그 따뜻한 긍휼과 존중의 맘씀에 눈물나게 감동했고요...

   

제 글이 넘 길어져서 아무도 안 읽을까봐 좀 걱정이 되는데^^;;;

   "키워드"는 <꿈을 이루는 닭수리>입니다.


   부대끼는 일상중 꿈을 잃은 무리들은 가끔 꿈을 만나면

   지레 겁먹고 심지어 버럭 화를 내지요.

   늘 허덕이는 에너지 고갈상태에서 더이상 벅차고 싶지 않다고

   악순환에 안주하길 선택하는 거죠.
  
   선순환이 뭔지 통찰할 수 있는 맘이 말라 비틀어졌어요.
   

   '더불어 함께' 가야만 가능한 꿈의 비행...

   정미소에 가셔서 꼬비를 만나보십쇼~ ^^     


난 엄마니까 ^^;;

2010.02.05 18:25 | Posted by 허니즈맘
참 ~.. 다르게 좀더 쿨하고 말 아끼며 듣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의 정서와 일상이라는게 동서를 막론하네요^^;;

제가 삶이 우울한 이유가 저 잔소리죠ㅜㅜ

노래가사의 3/5는 현재 쓰고 있는 말이고요,

나머지는 안쓰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쓸 가능성이 농후한 거 같아요.

암튼 엄마라는 대단한 위치가 고상하고 절제 가능하기보다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지...

엄마의 일상은 더더 한계를 만나면서 문턱이 없는 사람이 되는 길 같아요.

겉은 부끄러운 모습이어도 속사람은 살수록 겸손해지면 좋겠어요ㅜㅜ 




 

 


한자 급수따기에 대해서

2010.01.30 15:27 | Posted by 허니즈맘
아드님이 한자를 좋아하니 즐겁게 하고 있나 보네요.
제 큰 아들도 7세때 실력이 지금 실력이지요^^;
급수시험의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해서 아이가 원할 때까지
시험 있다는 거만 알려 주고 2학년때 첨으로 급수시험 보고 그랬어요.
근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 한자 경시대회(1년 재량학습 검토 및 성실에 대한 격려 차원- 어렵지 않음^^)를 설렁설렁 보며 더 이상 새로운 한자를 배우려고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아서 그냥 두었어요.
한자를 익히는 것은 여러 모로 유익이 많지요.
근데 요즘 이걸 일종의 조기스팩으로 다루는 분위기는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또는 다른 사교육을 늘리는 가운데 계속 하던 거니까
급수 올리자고 애 잡는거 흔하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무작정 외우는 식으로 팔떨어져라 반복강화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괴로운 과정이 되어
징그러운 사교육의 한 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셋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원투 때는 몰랐는데 우리 막내 유치원의 친구들 사교육 분위기에 참 질렸습니다.
전 세번째니까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정서적 여유가 가능하다는 걸 아는데
부디 **님~ 아이들의 흥미를 이끄시고 지원하실때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둔갑한 이상한 유행에서 아이들을 지켜 주시길 부탁합니다. ㅜㅜ
한자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어휘력이 신장되면서
한자의 접근이 자연스러워지고 한자를 적절히 사용하는 감각도 생깁니다.
한자 외우느라 책읽을 시간 부족한 경우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5학년 올라가는 큰 아들은 어릴 때 부터 문자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기호화하는 걸 좋아하고 언어감각이 있어요.
그래서, 중국어와 일어를 맛 보여 주었었는데
확실히 외국어는 자기동기가 분명해야지
조기교육에 대한 맹신은 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구요...
암튼 중국어를 배울때도 한자를 좋아하는 강점이 좋았구요, 요즘은 다시 일본어에 관심 폭발인데 일본글자가 맘에 든대요. 일본어를 배우는데도 한자가 엄청 필수인거 아시죠?
어차피 한자로 돌아가야 하는데 제가 어릴 때 한자급수 한번 시작 한거니까 계속 하라고 했으면
한자랑 웬수 되었을 거고 한자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삭제되거나
더 이상 새로운 배움의 동기에 악영향을 끼쳤을 거에요.
저의 경우지만 그닥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경우라고 생각해요.

전 시행착오가 많았고 지금도 부족해요.
그런데, 아이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고
현재의 교육을 잘 알고 줏대를 갖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거를 알았지요.
^^ 부모가 학교라는 거 기억해 주세요~.

우울한 이에게

2010.01.27 00:04 | Posted by 허니즈맘

 

저를 통한 위로가 힘이 되셨다니 참 감사하네요^^

***님은 참 밝으세요~.
따스하고 양심적이고 분별력이 있고 자존감도 건강하시고요...

제가 지난 시간 동안 블러그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부끄러워하시고 과분하다고 또 그러시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런 자아상으로 40대를 살고 계신 것이 참 큰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옆에 좋은 사랍들이 붙기도 하고요.(저요? ㅎㅎ)


제가 신앙이 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시고 말씀을 바로 알고 살라고
끊임없이 가르치는 교회에서 성장하게 하신 것은 저에게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로 받은 지식과 훈련을 하나의 잘난 척으로 드러내는 것 같지만
배운 것을 또는 나의 상처를 통해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하고 돕는 것이나
아직 몰라서 답답함으로 힘든 것을 눈뜨는데 돕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들에 맘을 열어 주시지요.

저도 그런 무조건적인 손길들과 마음들의 돌봄으로 지금 살아 있는 거에요. .
오~제가 엄청 열심인 크리스찬 같이 스스로를 높이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네요.
애 셋 키우느라 맨날 허덕이며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삶을 사니
그것이 저에겐 늘 함정이 되곤 하지요.ㅜㅜ


***님은 우울을 이길 내공이 없다고 하시는데^^; 

기질이나 성향이 우울이랑 거리가 먼 거 같고 
아마도 이제까지 살아오시면서 어려운 고통은 있으셨지만
지금 같은 고통은 처음이시지 않을까
아니면 외면해도 자꾸 부딪히게 되는 괴로운 상황이 징그러운신 게 아닐까 싶어요.

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는 거 맞아요. ^^

우리의 고통은 결국 다 내면적인 문제에서 시작되니까 영적으로 먼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잠깐 안 보일 뿐 사실 사라지지는 않잖아요? 
응급처치로 털어내시는 것도 방법이고 -호흡은 해야 하니까요^^;
힘을 내시는 건 좋은데
용기를 내시다가 수호천사님의 도움으로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느끼신다면
문제를 직면하시길 바래요. 그 때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영적인 운동에 반응해야 하는 것은 분명 내 몫이라는 게 저의 깨달음이었어요.


신앙의 걸음마 과정이시라는 게
겸손한 표현이실 수도 있고 모태신앙이어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하지요

신앙은 유전이 아니라, 인격적인 개인적 반응이고 고유의 인생이니까요.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님이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신 것에 감격하지만 왠지 아직도 미안하고 서먹하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잠잠히 생각해 보시고
혹여 그 정체성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력이 없다면
제가 생각키론 그 우울의 해결도 여기서 시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의 우울의 가장 큰 원인은 그 정체성을 잘 알지만
그 정체성을 누리고 잘 지키며 살지 못하는 무력감이에요.
세상이 넘 복잡하고 거칠고 전 박약하고 게으르고...
그래서, 말씀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쉬 메마르고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지 못하는 거지요.
정체성을 다지는 것도 사실 성령님께서 하실 일이에요.
그리고, 내 몫은 성령님께 기도하고 가르치시는 지혜를 따라가려면
말씀을 읽어야 하고요.
제가 잘해서 드리는 말은 아니어서 죄송하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 변하지 않는 생명있는 삶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주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을 적대하지요.
우리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무력감에 빠지는 것을 가장 기뻐하지요.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 은혜를 고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사랑에 반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그리고, 미사참례 꼭 참여하세요.
삶 자체가 예배이지만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지만
회중의 모임으로 드림은 내 일상의 결단이에요... 

그리고, 함께 미사 드리는 이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속했습니다” 라는 고백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에요.
우리 삶의 힘이 개인으로 안 되고 공동체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성경의 말씀대로
힘을 나누시고 전하시고 또 공급받으시길...
성도의 교통함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잘 아시죠? 
부디 속하신 교구에서 하나님 안에서 가족 됨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고린도후서5:17) -찾아보시길^^


라면파티2 - 조영권 변혁일기(12월)

2010.01.14 18:33 | Posted by 허니즈맘

 

또 다시 찬바람이 부는 지금, 지난 겨울 빈 공간에 들어서며 여기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

나 하는 생각에 빠졌던 적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장사를 하다 만 듯한 흔적이 있지만 현재는 실패의 흔적이 되어 버린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움을 주고자
열심히 격려하고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 탓에 심한 외로움이나 우울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 틀림없이 된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끌어 가
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한 일년 동안은 쉬는 마음으로 장사를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진심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내려놓으면서 교회 사역의 복잡 미묘함과 계량화 할 수 없는 영적인 가치등의 위압감에서 잠시 비켜나 있으면서 단순하고도 명쾌한 매상과 이익의 숫자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사실 옆 가게의 사장님이 묻는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오늘은 몇 그릇이나 팔았어?


아주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질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표현해 주죠.

몇 사람이나 왔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매상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말입니다.


복잡함과 번잡함 그리고 미묘함을 벗어나 그 단순함이 저를 잠시 쉬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적인 과제나 지도가 매우 명확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요. 저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든 듯하고 생활인으로서의 새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로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아가는 과정이었지요. 사실 살아가는 과정 자체에

개입해서 서로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렇게 생의 과정상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누구의 도움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모르는 부분을 깨우쳐야 하고 할 수 없는 기능을 익혀야 하고 안되는 이유를 알아서 극복해야 하는 반복되는 극복의 과제를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실제로 가게 안에는 장사를 하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의 과제들이 있습니다. 지하 공간이기에 환풍시설, 물을 퍼내는 펌프시설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이것들이 가끔 문제를 일으킵니다. 장사하는 시간에 고장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랄뿐이죠.
한번은 엄청난 비가 환풍 시설을 통해서 들이쳤습니다.
그것이 조리대 바로 위로 떨어졌지요.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고 올라가서 비닐로 새는 부분을 임시 방편으로 가리고 내려 왔습니다. 아직도 그 부분은 그 상태 입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방수 시설을 해야 합니다. 장사를 하다가 가스가 떨어지는 일도 두번이나 있었지요. 가스 회사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당황스럽더군요. 전화기에 대고 항의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사 도중에 밥이 떨어지는 경우, 잔돈이 떨어져 돈을 제대로 내어 줄 수 없는 경우, 설거지 할 시간이 없어 물컵이 떨어지는 경우 등등...너무도 많은 사고들이 있고 하나하나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하는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보온 밥통을 하나 더 보충하고 그릇도 더 사고
물컵도 더 보충하고 이럭저럭 살림도 양이 늘어 갑니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케이블TV로 본 적이 있는데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뉴욕의 한 식당에서 주방의 일을 하면서 실제로 요리를 해서 서빙을 하는 내용입니다. 서투른 사람들이 급히 요리를 배워서 단시간에 요리를 해 내려니 얼마나 긴장이 되겠습니까? 12시에 가게는 열어야 하고 시간은 되어 오고 아직 재료 준비는 안되어 있고 주방은 어수선하고... 막상 시간이 되자 초긴장 상태에서 주문을 기다립니다.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등등.. 상상이 되시죠? 


문제는 그 사람들과 내가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시작했고 아직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저는 아침에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안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놀라지 않고 담대하도록 간구합니다.

감사하고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때껏 도움을 준 분들이 계시기에 이렇게 지금껏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면파티2> 1주년^^ -조영권 변혁일기

2010.01.12 11:11 | Posted by 허니즈맘
 <라면파티2>의 시작을 알리는 글로부터 지금의 시점까지 벌써 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장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그 때부터 내가 과연 정말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번민의 시간들... 도움을 받으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던 광야의 길 같은 날들이 이제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 가운데 들어가 있게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이 바닥에서 알아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고 이루어야 할 일들도 아직 많습니다.


아직 매상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저 팔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적절한 가격정책과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시도할 부분이 조금 더 있습니다. 가격을 인상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서울 일반의 적정가도 알아야 하고 가게가 위치한 지역의 일반 라면의 판매가도 확인해서 인상을 준비 중입니다. 가게의 크기상 판매가 원활해지면 가족종사자가 있든지 혹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든지 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직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고 있어서는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매상이 좀 더 오르는 시점이 될 때 사람을 고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시점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가격인상을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라면파티>본점과 상의한 끝에 일단 결론을 내고 실행만이 남았습니다. 가격은 내방하셔서 확인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 일을 통해서 생업의 터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좀 더 돕는 일을 많이 하고자 합니다.

<라면파티> 3호점도 생겨났고 앞으로 더 생겨날 때 돕는 자로서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지금은 방학을 맞이해서 대광의 학생 한명이 견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리에 관심이 있고 조리사로서 직업을 갖길 바라고 있는데 <라면파티2>에서 한달의 과정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저 점심 때 두어 시간 와 있으면서 일들을 거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서 1월 방학기간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단지 가게를 경험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인생을 알아가게 하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기를 바랍니다.


<라면파티2>의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감춰진 빙산 90%는 바로 <라면파티>본점입니다. 작년에 이 고정란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라면파티>본점 사장인 전민석 형제와 변혁사역을 통해 오랫동안 나눠 온 비전과 구체적 계획들이 있었고 형제의 전적인 나눔과 헌신으로 소액창업 <라면파티> 분점들이 가능해졌다고 말입니다. 1년을 자영업을 하는 사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분투하면서 본점 사장에 대한 감사가 더 깊어졌습니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요? ^^ 저를 돕기 전, 5년 간 본점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시간이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물론 대박사장님이지만요) 그 귀한 인내와 열심의 열매를 은혜로 나눔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이 <라면파티2>와 함께 하려고 했던 일은 지역공동체룰 세우는 일입니다.

나들목에서의 변혁사역 디렉터로서의 사역을 멈추고 좀 더 현장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우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의 살 길은 공동체가 배운 성경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전환기에 나들목은 정중앙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사역을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생활이 성경적으로 변화하고 ‘세상의 지배 질서’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섬김의 사회 질서’를 나의 생활의 영역에서 세우는 것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교회에서의 종교적 생활과 실생활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정교회가 어느 정도로 공동체적 기능을 발휘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가정교회는 그런 갈림길 가운데 한 고비를 넘어 말씀이 살아 생활 가운데서 살아날 것인지, 아니면 시간 단위의 모임과 일주일 동안의 흩어짐을 반복할 것인지를 결정할 시점에 있습니다.


저는 변혁사역의 디렉터를 종료할 시점에 '변혁적 지역공동체'를 세울 비전을 나눈바 있습니다. 저는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재미있는 여러 가지 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들목에서 우리 공동체가 세운 “도시”에서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아직 지역을 결정하지 못한 광야의 생활을 아직 ”지역공동체 준비모임“ 이 한발한발 가고 있습니다.


요즘 한 가지 관심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점은 ‘도시농업’입니다. 이 공동체가 도시에서의 농업을 같이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도시농업’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에서 일을 같이 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영역에서 일을 하던 노동을 통해 생산자가 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노동과 생산이 그 안에 있되 그것이 도시의 삶을 점차적으로 생태적으로 바꾸어 가는 기능을 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 안이든 마당이든 텃밭이든 나름 취미 농업을 하든 그 이상을 하든 공동체적 의미를 가지고 실제 삶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길 바라고 그것이 좀 더 커져서 시골 공동체와 네트워크 하는 일도 가능해 지길 바랍니다.


<라면파티2>에 쏟는 시간이 많지만 생각은 공동체에 가 있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 <라면파티2>에 대해 쓸 말 반, 공동체에 대한 것 반 이렇게 나누어지네요. 저는 이 일을 하는 가운데 있지만 동시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관찰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라면파티2>를 통해 되어질 일들을 기대하고 있고 또한 공동체를 통해 될 일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들, <라면파티> 2호점을 세우는 데 든든히 함께 해 준 동역자들을 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공동체의 비전을 같이 하기 위해 준비시켜 주신 멤버들과 또 앞으로 같이 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고 찬양할 것입니다. 이 공동체를 세우는데 함께 할 사람은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 도 있습니다. 꼭 나들목 안에 있는 누군가가가 같이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들떠다 밀어 주실 테고 거기에서 이루어질 일들은 제 생각을 뛰어 넘을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임을 결정하고 이러저러한 계획을 어렴풋하게 대표목사님과 같이 세우던 미국의 한 신학교의 복도 구석의 한 소파와 그 건물 밖의 계단을 떠올립니다. 테이블에 앉아 잔잔히 깊이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정작 결단을 내린 것은 어느 건물의 복도였고 돌계단 이었습니다. 그 때 “뭐할래?” 하고 대표목사님이 물으실 때 거의 망설임 없이 ‘라면 집’ 한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으론 제 정신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 능력을 뛰어 넘어 일하셨습니다.

계단에 앉아서 지역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대해 말씀드릴 때도 계획은 분명치 않았고 주신 마음만이 분명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저와 사람들을 휘몰아 오쎴고 가실 것입니다. 


<라면파티2>를 위해 헌금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지면을 할애해 주신 도시락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라면파티> 2호점의 첫 출발을 위해 애써주신 여러분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이름을 다 열거하기 보단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들목교회 월간지 <도시락>2월호에 기고한 글

포스팃으로 도배가 된 코르크 게시판과 홀을 빙 두른 벽면 거울 위쪽을 알록달록 채운 고객들의 맛품평과 소소한 흔적들이 지난 1년의 발자취를 남겨 놓았지요. 나들목 가족들의 손길에서 시작된 격려라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지난12월 마을별 예배때 독립된 가교 모임중 ^^;

.

<주기도문> 진심으로 하기

2010.01.07 15:32 | Posted by 허니즈맘

+ 진정한 '주의 기도'


당신이 다만 세상의 것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기주의 속에서 혼자 떨어져 살고 있다면,

"우리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매일 아들로서 처신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과 물질적인 성취를 혼동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뜻을 고통스러울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약도 없고 집도 없이, 직장도 미래도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형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집짓기를 계속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단호하게 악을 반대하는 편에 서지 않는다면,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의 기도'의 말씀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아멘"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작자 미상, '진정한 주님의 기도')  --'뉴스앤죠이'에서 퍼온 글


MBC 스페셜 -  타샤의 정원>

MBC에서 타샤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타샤를 TV에서 보게되었네요.

타샤의 정원이나 가족들 이야기가 궁금하셨던 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 타샤의 정원 *


기   획 : 윤미현,  
연   출 :  이현숙,   작  가 : 문소영
방송시간 :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밤 9시55분 MBC



기획의도

 세계적인 동화작가 타샤튜더.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으로 더 유명하다.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는 ‘시크릿 가든’, 신비한 타샤의 정원에는
어떤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혼 후, 네 자녀를 키우며 힘겨웠던 타샤는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하였고, 타샤의 손길이 닿은 집과 정원과 살림은 예술이 되었다.


고달픈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복한 사람 타샤튜더.
올해 6월,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쓸쓸한 가을, 행복이 있는 그 곳, 타샤의 정원으로 떠나보자.


주요내용

① 자연을 닮은 타샤튜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 타샤튜더!
우리에게도 친숙한 ‘비밀의 화원’ 등의 100권이 넘는 동화책을 세상에 내 놓았고, 최고의 동화작가에게 주는 칼데콧 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30만평의 정원을 혼자 가꾸며 숲속 오두막집에서 동화처럼 살다가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동화책은 물론, 집과 정원, 레시피 등을 담은 타샤의 책은
세계 곳곳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의 타샤튜더>                     <딸 베서니에게 수유중인 타샤튜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샤튜더>              <타샤가 80대에 그린 삽화>


② 타샤의 시크릿 가든을 찾아서  “고달픈 삶을 딛고 꽃 피워낸 정원”


레몬 빛 수선화 무리 속에서 피는 흰색 돌능금 꽃, 꽃잎이 탐스러운 작약.
영국식으로 꾸며진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타샤의 정원은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비밀의 화원’이다.

타샤는 특히 파스텔 톤의 꽃을 좋아했다. 층층이 계단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타샤의 정원은 일본, 유럽 등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손녀와 함께 꽃밭에서 행복한 타샤>           <꽃을 가장 사랑했던 타샤튜더>



         <타샤가 살던 버몬트의 집>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았던 타샤의 정원>


③ 살림이 예술이 되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두막집. 타샤의 집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오래된 엔티크 가구들과 블루&화이트 골동품 그릇들.
수도 펌프, 장작을 떼는 스토브, 타샤가 즐겨 입는 고풍스런 옷까지...
집안 구석구석 눈길을 끄는 타샤튜더 스타일은 모든 여성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던 타샤는 직접 베틀을 돌려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필요한 식재료는 밭에서 일구어 얻었다.


타샤는 자녀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엄마였다. 인형은 물론 인형 옷, 인형에게 주는 카드까지 직접 만들어 주고,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아이들의 생일에 해주던 ‘뗏목케이크 이벤트’는 자녀들이 성장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1830년대 삶을 꿈꿨던 타샤>              <타샤 스타일 그릇 - 블루&화이트>



     <아이들을 위해 만든 미니어쳐 인형들>    <자녀들의 생일 이벤트 - 뗏목 케이크>





④ 타샤의 한국인 며느리 “김은임, 탐” 부부


* 타샤튜더의 한국인 며느리 김은임씨.
 처음, 탐과 함께 타샤의 집을 찾았던 은임씨는 그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동물이 깬다고 차를 두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구두를 신고 험한 산 길을 걸어오는데, ‘아~ 이제 예쁜 구두는 다 신었구나’ 싶었죠”
* 아들 탐이 말하는 타샤
“어머니는 우리보다 정원과 동물 돌보는 일을 더 열심히 하셨죠.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뭐든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 맏딸 베서니가 말하는 타샤
 내가 고민을 이야기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베서니, 나가서 꽃향기나 맡고, 초콜릿이나 먹어!”  
엄마는 불평하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기를 원하셨죠.


* 막내 딸 에프너가 말하는 타샤
 “Make Money! 엄마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돈이었어요.”
이혼 후 네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것들이 타샤에게는  
가장 힘든 점이었다.


 
              <맏딸 베서니 튜더>                        <막내딸 에프너 튜더>


 
           <막내 아들 탐 튜더>                           <한국인 며느리 은임 튜더>


⑤ 타샤가 주부들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타샤는
늘 산골 생활을 꿈꾸었다. 결혼과 동시에 농장이 있는 시골 생활을 시작한
타샤튜더. 그러나 도시 사람이었던 남편은 그 생활을 힘들어 했고,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은 실패로 끝이 났다.

좌절하고 포기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타샤는 주저앉지 않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 속에서 치유하고자 하루 온종일을 정원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꽃을가꾸며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 아름다움으로 가슴 속 상처를 치료했다.

이혼 후, 혼자서 4명의 아이를 키우는 동안 왜 힘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타샤는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자연을 통해 기쁨을 얻었다



 
<타샤가 한국인 며느리에게 물려준 브로치>   <타샤가 늘 앉아서 차 마시던 티 테이블>


 
 <막내 딸에게 물려준 타샤의 그릇들>        <타샤의 집에 남아있는 오래된 찻잔 세트>

       

 
        <꽃은 타샤의 영혼이었다>              <늘 직접 물지게를 지고 정원에 물을 주었다>

 



Tasha Tudor는 미국을 대표하는 90이 넘은 동화작가지만
지금은 가드닝으로 유명해져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모두 별세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 집은 미국 북동부 지역 뉴잉글랜드에 있습니다.
언덕 경사면에 세워져 포도나무나 덩굴장미 등으로 덮인 낡은 건물.
지붕 위에는 비둘기, 헛간 마당에서는 산양이나 닭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는 허브 정원이 있고 집 앞의 경사면에는
꽃들이 가득히 심어져 햇살을 담뿍 받고 있습니다.
이 개척시대의 농가 같은 집에서 화초를 키우고
무엇이나 직접 만들어 살아가면서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타샤는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정원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
차를 직접 만들고
재배한 아마를 자아 천을 짜고 염색을 하고...

"
살벌한 세상 속에서 나는 정원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정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행복은 물질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왜 그토록 행복을 바라는걸까요? 아마 그건 텅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퍼온 글이에요. 댓글을 남길 수 없어서 .. 혹 저작권에 문제가 있다면 삭제할게요.).

2010 겸허한 날개를 달고 ^^

2010.01.06 11:33 | Posted by 허니즈맘


일단, 지난해 2009 성서한국에서 깨달은 <회심>의 맥을 되짚어본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욱 분명히 발견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소망과 절망의 양면을 좌우에 두고 모험을 미룰 수 없음을 결단했던 
내 인생에서 불가피한 진정한 회심...

과거의 회심을 폄하하지 말아야지, 내가 어리석고 그릇의 용량이 그랬을 뿐 
이끄시고 채우시는 분은 성령님, 동일하신 역사였으니
자칫 성령님의 사역을 회심의 본질을 가볍게 하는 수선을 떠는 것이 될까 조심스럽다.

세상의 끝           -------             절벽

한계의 극복        -------             날개

회심                  -------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

삶의 대안           -------             메시아 공동체


* 메시아 공동체 --- 공평과 정의,
                             자비가 넘치는 공동체
 
  순종  --- 하나님 나라의 임대료
  
  실제적 영성 --- 예배의 영성
                          가정생활 영성
                          청지기 영성          


 

청년 때 만난 하나님~
결혼후, 육아를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삶으로 드려지는 것이 정말 고단하고 어려웠다.
세월은 지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육아의 끝이 보일듯 하지만 아동기의 중후반을 가는 아이들과의 접전은 (내겐 누리는 것이기 보다 늘 영적 전쟁이다^^;) 철저히 나를 낮아지게 한다.

삼형제 양육이  20살까지(18세) 이길 바라며 지금 잘 키워야 하는데...
열심을 내지만 사는게 무기력의 연속이어서
하나님의 은혜 앞에 
십자가 앞에 송구해서 '차라리 내가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모르고 짓는 죄가 좀더 가볍지 않을까 궁색한 자구책을 웅얼거려 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무기력의 점철로 가볼 때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하던 때에 절벽 끝에서
오로지 예수님 믿고 뛰어 내리듯 나를 맡기니 믿는 내게 날개를 이미 주셨다는 것을 확인 했다.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이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임계점이었다)

날개 펼쳐 본 자로서

아직 그걸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만 의지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의 한계와 무력감의 절망이 자기부인을 가능케 하고
(인간은 다 약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약한 자가 가난한 마음인 자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약함은 무책임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반사를 대충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온전한 전적 의존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완전함과 영원함)

그리고 십자가를 믿는 인생에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인 완전한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인생을 사신 고난의 삶의 이유이다) 
전해야 하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성서한국에서 경험한 것들이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제까지 교회공동체의 가르침과 나눔이 있었기에 그 연장선에서 선한 과정이 이루어진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의 선한 연장선은 바로 등대지기학교와의 만남이다.

소통의 유익을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비전과 계몽은 복음전수자로서 나아갈 코드를 발견한 거룩한 부담과 더불어 내 안에 빛이 있음을 새롭게 자각하는 정체성이 성숙해지는 성장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내 인생 중 어떤 시점보다 복음의 전수자로서 특권과 당위를 가장 선명하게 경험하고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이제, 내게 주어진 과제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실제적 영성을 살아가는 훈련의 새출발이다. 성령께서 새로운 맘을 주시고 게으르고 약한 나를
강건케 하시길 바란다. (자비,공평,정의,순종)

둘째,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모임에 기도하며 공부하며 몸과 맘을 더 집중해야겠다. 
(토요일 모임의 우선시, 관계의 관리를 위해 시간 잘 나누기) 

셋째, 도서관에서 만드는 학부모 모임에서 건강한 학부모로서 기독인의 복음전수가 무엇인지
서로 도전을 주고받고 교육의 방향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마인드를 갖고 제안하며 함께 성장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겠다.

아~ 셋째가 입학한다.
올해는 정말 이제까지 어느 때보다 몸과 맘이 건강해야 한다.
내년 이맘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감사하며 

내가 순종하며 따라간 그 길에서 발견한 또다른 소망을 나누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게 하시는 감격이 살아있는 일상이 되고 
눈을 들어 산을 보니 깨닫게 하시는 힘있는 지혜로 겸손해지고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겸허한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내가 되길 우리 가정이 되길 우리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지난 겨울 2009년 1월에 승헌이가 만든 눈사람- 유쾌한씨 ^__^

     

                 

2010 강추 기도문

2010.01.05 16:45 | Posted by 허니즈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은혜로운 임재를
우리 안에 새롭게 일깨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순례 길을 가는 동안
우리 안에 평화와 진실함과 용기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굳세게 붙들게 하시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식지않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연합된 우리의 마음이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하는 무슨일에든지 항상이어지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시고
당신께서 주시는 경고를 묵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당신께 재물로 드립니다.
오셔서 당신의 지성소를 채워주시고
그 곳에 더러운 것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 주십시오.

오,사랑의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이 우리의 모든 영혼 속에 강같이 흐르게 하시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아멘

-게르하르트 터스티겐-



-우리가 우리신앙의 기본이 되어주는 기도와
또한 날마다 새로운 영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가정교회에서 기도문을 가지고, 함께 동일한 말로 주께 기도드리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기도문있음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2008년 8월 현숙언니의 강추글)
(나들목 가정교회나눔터)

.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하기수련회 겸 가정교회별 엠티 - 개척자들 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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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홍은의 추억 2008 하기수련회~ 성찬 마치고 넘 감동하여 다들 눈과 코끝이 얼얼한 모습 근데 나만 넘 생생한 얼굴이라 좀 민망하네요^^; 나도 성령 안에서 하나였는데 그쵸? ^^ 재경과 한나 그립구나 ^--^  (이 사진 현숙언니가 안 좋아 할 텐데 그날 언니가 젤루 은혜 받아서... ^^; 미안 언니~)
 .

2009년을 돌아보며 감사의 고백을...

2009.12.16 11:40 | Posted by 허니즈맘
지난 주일예배때 드린 감사의 고백 중에서 우리 부부의 것을 올립니다. ^^
 

조영권-

하나님께서는 작년 11월말부터 새로운 길을 가게 하셨고

그 길은 사실 저에게 아주 낯선 길이었지만 아주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우리 가족을
잘 인도하셨습니다.

사실 1년간의 안식년을 가지길 원했었는데 1년간 잘 쉬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사하는 일이 쉬울 리 없지만 아주 1년을 꽉 채워서 잘 배우게 하셨고

돈도 벌며 생활비를 채우게 하셨습니다.

그 기간이 교회에서 일하던 때보다는 훨씬 적은 스트레스로 일하게 하셔서 잘 쉬게 하셨습니다. 잘 쉬게 하셨고 그 동안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활인으로서 장사하는 상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나 기대 등등을 깰 수 있었습니다. 가정교회의 인원이 급속하게 줄어들어서 공동체를 세우는 게 가능하지 않은 것 아니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은 정병들을 남겨 주셔서 이제 새로움 패러다임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길을 밟아가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공동체, 지역, 삶의 방식을 주실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도시의 농사꾼이 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고 물건과 생활의 공유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질 것을 인해서 미리 감사합니다.



박혜성-

2009년에 저는 40대를 맞이했습니다.

어느 해보다 성장하게 하시고 주의 신실하심과 긍휼을 깊이 알게 하셨습니다.


남편의 공공하는 삶을 향한 탈선은 저에게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한 발씩 밟고 지나가야 하는

일상의 시행착오와 심리적 적응의 부담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은 남편의 행보를 지키셨고

그것을 지켜보는 저의 변화와 성장은 작지만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것은 충분하였습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무기력에 빠져있던 제가 등대지기학교 수강을 통해서

그 동안 이미 배우고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가치관과 철학들이
얼마나 탁월하고 유용한 것인가
확인시켜 주시고
다시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햄스터 13마리와 불쌍한 강아지 토토를 만나고 키우면서
주의 사랑과 긍휼을 알게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배운 중요한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일상에서 드러나게 하셔서

부모로서 보람을 느끼고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삶의 방편 중에 소통의 가치를 바로 알게 하시고

공동체의 마을 형태가 얼마나 필요한가도
마침내 깨닫게 하신 것도 감동입니다.

앞으로 함께해 갈 지역공동체 준비모임을 생각할 때 주신 소망이 든든하고

계속될 사랑과 인내의 연단에 성령께서 친히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올해 초 개업을 앞두고 홍은 가족들과~ 세월 참 빠르네요^^

.



나들목이 마을별 예배 드린 지난 주일~
홍은 가교는 라면파티2에서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모임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열린한뿌리 마을에서 조영권 목자가 마을지기를 내려놓고 열린한뿌리에서 독립해 나와서 우리가교가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을별로 예배를 드리며 동시에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연합교회로 모였을 때와 달리 서로 돌아볼 수 있는 소규모의 교제와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은혜는 아주 특별한 의미와 우리 안에 주신 소망을 좀더 선명하게 발견하고 기뻐하게 되는 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홍은은 소규모가 아니라 그야말로 한 상에 둘러 앉을 수 있는 적은 수의 모임이라 보통 가교모임이랑 그리 별다른 차별성을 느낄 수 없을 수도 있었지만 나름 예배를 나누어 준비했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성령의 임재하심을 깊이 누리며 서로 화답하는 드림이 되게 하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이득형제의 아주 오래전에부터 준비된^^  찬양인도로 예배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찬양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대선 집사님의 시를 읊으시는 듯한 감격에 벅찬 대표기도와 전원이 미리 준비한 한해를 돌아보며 드리는 감사의 고백은 아름다운 꽃다발로 주님께 드려지고 우리 안에 있는 주님 은혜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나눠온 세월의 정이 특별하고 가슴이 뜨뜻해졌습니다. 조영권 목자님은 염려하지 말고 두맘을 품지 말고 오직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을 권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셨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대화식 기도를 드리며 강물이 흐르게 하시듯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찬양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

그리고, 삼헌이가 고대하던 푸짐한 식사 ^^
각자 한 묷씩 준비해서 풍성한 식탁을 대하며 예배가 감사하고 함께하는 것이 기뼜습니다.^^  

득형제의 찬양은 예배 순서마다 계속 이어져서 좋았고 새노래를 비롯해서 영감있는 선곡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찬양인도는 쭈욱~^^ ...

"올해 감사한 것중 첫번째는 강아지를 주신 것이고요 ..." 각자 자유로운 분량으로 준비된 고백을 드리니 드림이 곧 채우심이 됨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ㅜㅜ

말씀도 참 좋았어요^^ 울 목자님은 날로 표현이 유연하고 소통이 친밀해지심은 늘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 때문입니다^^

언제나 식기도는 짧게~ ^^; "아그들아~ 짧지 않은 예배에 참고 참여한 거 참 대견하고 감사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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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네 새 가족을 소개해요~^^ 토~토!

2009.12.12 17:35 | Posted by 허니즈맘

수요일(2009. 12.9) 두 가정을 전전한 토토가 승헌이의 소원으로 우리 집에 왔다. 겁에 질려 으르렁 거리고 몹시 사나와서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다.당황스럽고 막막했다. 토토는 깊은 상처를 안고 온 것이다ㅜㅜ.

첫날 늦은 밤, 마르티스 두 마리를 키우시는 정많은 아랫층 아저씨께서 소식을 듣고 애견용품을 주시려고 오셨다가 토토가 너무 딱하다고 기를 살려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고 데려 가셨다. 천진난만한 순한 마르티스 사랑이와 이슬이가 환대해 주었고 아저씨는 토토를 깨끗이 씻기시고 이것저것 맛난 걸 주시고 놀아 주셨다. 토토는 무서워하면서도 아저씨 앞에서 완전 포복에 절대복종의 모습이었다. 우린 밤 10시가 넘었는데 폐를 끼치며 그 과정을 거의 관람하고 배웠다^^;;허니들은 넘 좋아했다 ^^ 넘 감솨~~이 사진은 하룻밤 자고 우리 품에 돌아온 토토다(목욜 아침) 역시 겁먹었지만 누그러지고 우울모드 본격 보여 주기 시작했다. ㅜㅜ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조용히 나랑 있으면서 첨으로 다리 뻗고 한참 자는 모습을 보았다. 깨어나서 첨으로 개껌을 달그락 몇번 하더니 역시 그 허망한 표정으로 슬픔에 빠져있었다 (2일째 목요일 오전)

슬픈 얼굴을 가리거나 얼굴을 뒤로 돌려 외면하기도 했다.완전 인간의 우울증과 같다.ㅜㅜ 토토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토토를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배려하고 돌보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의 특히 나의 태도를 성숙시키려는 천사가 온 것이 아닐까? )

오랫만에 방과후 한달음에 귀가한 승헌이 ^^ 첨에는 자기를 거부한다고 넘 속상해하고 화까지 내기도 했는데... 만질수 있게 되니까 자꾸 끌어 앉고 무릎에 앉히고 ... 사실 토토는 만사가 귀찮아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거 같았다. 그래도 잘 참고 아이들이 나가면 그 동안 계속 잤다. 내가 시끄럽게 집안일 하는 거는 개의치 않았지만 낯선 소리가 작게라도 추가되면 번쩍 눈을 뜨고 긴장했다. 나도 모르게"미안~"소리가 나왔다^^;; (2일째 오후)

.

I cried a tear,                          내 눈에 흐르는 눈물,
You wiped it dry.                     당신이 말끔히 제하여 주셨고
I was confused,                      내 혼돈된 마음을
You cleared my mind                당신이 정돈 시켜 주셨고

I sold my soul,                         내가 영혼을 팔아 버렸을 때
You bought it back for me.         당신은 되사서 제자리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And held me up                        당신은 나를 일으키셨고
and gave me dignity.                 나에게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Somehow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그렇게도 필요로 하셨나봅니다.

You gave me strength to            당신이 내게 힘을 주셔서 
stand alone again to                  난 다시금
face the world                           세상을 향해 
out on my own again.                홀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You put me high upon                당신이 나를 
pedestal so high                       이렇게 높은 수준의 발판위에 올려 놓으셔서
that I can almost see eternity       이제는 영원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필요로 했습니다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원하셨습니다.
And I can't believe it's you         나는 당신이  믿겨지지도 않고,
I can't believe it's true               당신이 하신일이 정말인지 믿겨지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I needed you and you were there  내가 당신을 필요로 했을 때 당신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And I'll never leave.                     하여,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Why should I leave I'd be a fool     왜 제가 바보처럼 당신을 저버리겠습니까?
'Cause I've finally found               내가  마침내
someone who really cares            나를 진심으로  보호하시는 분을 발견 했는데 말입니다. 

You held my hand                     내 손이 찰 때     
when it was cold                      당신은 손을 꼭 감싸 주셨고
When I was lost,                       내가 갈곳 잃어 방황할 때
You took me home                     나에게 안식을 주셨고  
You gave me hope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할 때,
when I was at the end               희망을 주셨습니다.
And turned my lies                     나의 거짓된 삶을 돌이켜
back into truth again                  진리로 향하게 하셨고
You even called me friend          나를 "친구"로 불러 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원하셨습니다
You needed me                        당신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많이 아는 관심 갖지 않고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연도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오래 바라보리라

 

많이 껴안고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자주 보리라

 

단호하고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한참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직 회개의(return) 기회가 있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재회한 이 시를 보니 참 마음이 무겁다.
현실의 나는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성실히 가고 있지 않기에 현장에서 불량한 모습을 옛스승에게 제대로 걸린 그런 기분이다.
친절히 세밀히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사랑과 그 날의 감동과 신념을
먼지 뿌연 선반에서 그 자리를 더듬어 찾는 허둥거림이 부끄럽다.

방학도 이제 끝나간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떠날 날도 아니, 내 양육의 영향력이 가할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어쩔수 없이 분리될 그 날이 되면 보기 좋게 마무리 되는 과제도 아닐 것인데
어리석게도 가끔 그 날이 오면 해방이라도 될 듯이
이리도 못나게 '자기부인'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음에 매양 위축된 모습을 어서 벗어 버리고 싶어 한다.

낙심할 때마다
아침을 힘겹게 시작할 때마다
깊은 밤을  아쉽게 끝낼 때마다
나의 유약함과 이기심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어쩌다 방심하면 나는 늘 넘어지기 쉬운 약한 엄마인 것이다.

이 땅의 시한부 인생에 난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는게 갈수록 복잡하고  더 난해하기만 하다.
어쩜 세월이 갈수록 현실직면이 첨예화 되고 자아도취에서 깨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연륜의 지혜는 능수능란을 기대하게하지만 진실은 자신의 어리숙함을 대면하게 하고
부유함이나 안정을 원하지만 본질적인 가난함과 불안정을 보게 한다.
이 시점에 인생에 가장 큰 위로와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은 동일하시고
내가 정직한 영으로 나갈 때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시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함께 어울리기 보다는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 있다.
함께 하면 함께 즐기고 누리기 보다는 끝없이 통제하고 잔소리 하는 내 자신이 넘 괴로워서
그 도피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나를 아이들과 분리시키곤 하는 것이다.
어느 시절에 이르면 후회할지도 모를 이 차선책이 
성경적 가치관에 순종하는 지혜를 힘입어 최선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놀라운 신비는 이런 나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삼형제 아들들도 이 잘 삐치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안하다. 


    

요즘 저는...

2009.10.12 10:50 | Posted by 허니즈맘
주말 잘 지내셨어요? ^^
전 보통 주말에는 토욜 저녁에 저희 집에서 모임이 있으니까 없는 실력에 저녁상 차리랴
일주일 만에 청소다운 청소하랴 좀 바쁘지요.

일요일에는 아침에 일찍 나가서 저녁즈음 들어오는데 어젠 특별한 모임이 있어서
오밤중에 들어 왔어요. 물론 삼형제는 아빠와 오후에 귀가했지
요.
남편의 배려가 참 감사하고 제가 마치 뭐라도 된양 자칫 ... 찰나에
남편의 겸손 덕에 정신을 차리게 되네요. 오~ 남편 자랑에 잘난 척 한게 되나요? ^^;

하나님의 일하심은 똑똑하고 완전한 사람이 아니고
부족하고 힘없는 사람 또는 자기 힘빠진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을이 깊어가네요.
가까운 지인 몇 년만에 휴가차 제주도를 다녀온다는 말에 오~벅차오르는 부러움^^;;
철없는 저지요.
작년까지는 정말 "여행"이라는 말 들으면 남얘기일 뿐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가 아니라면
-고건 2년 전 부터 부담이 없음,
 아이들이 제법 알아서 안전하게 놀고 먹이는 건 알아서 먹으라 방치;;

소규모 엠티는 아직 짐싸기나 해 먹을 부담에 울렁증이 오기 때문에 거부감이 남아 있었어요.
근데... 아이들의 성화도 있지만 어디 아름다운 곳에 자연 가운데로 다녀 오고 싶은 이 갈망~
현실은 남편의 시간과 재정이 거시기 하군요^^;;

저의 현실감각이 얼마나 둔한지 그래서 씩씩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이라 누릴려면 누릴 심리 정서는 받쳐 주는데
엉뚱하꼐 현실감각은 게으름에 밀려 불쑥 들이 미네요.

애쓰고 수고하기를 한치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 남편의 책임감과 분투의 의지에
하나님이 주신 열정이 참 자랑스럽고
지치고 고단할 몸을 지키시고 아침마다 새힘을 부으시고 그 영혼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신 사랑이 절절히 감사합니다.

10월이 더 깊어지기 전에 -- 그 땐 좀 춥겠지요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작년 가을에 할 수 없었던
아내와 엄마의 이벤트를 계획하고 싶어지네요.
넘 오버하다가 넘어질래나요?

님편에게는 예쁜 두건(?)을 마련해 줘서 요리할 때 내리는 땀비을 받쳐주고
자전거 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겠어요.
아이들과는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요. '과연 내 제안을 받아 줄까요?' ^^;

이 글을 누가 읽으실래나 모르지만 ^^
몬가 공약의 냄새가 나는 분위기를 자조했으니
약속 수행하고 후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 떨린다. -.- ;;  

2009년 지난 8월 방학 어느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운동하러 마당에 나가다가 감나무 앞에서 (그 즈음 훌라우프에 꽂힘^^;)


2009년 10월 그 감나무에 열매가 열렸어요. 지난 7년 중에 가장 실하게 열매맺고 다 익기도 전에 여기저기 홍시가 되기도 하고...

.  



   

엄마의 나쁜 습관 바로잡기

2009.08.24 14:26 | Posted by 허니즈맘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네요. 
아이들이 이틀후면 개학이에요.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개학즈음 '와~ 해방이다' 내심 좋아라만 했는데

아이들이 크는 모습에 좀 안타까움과 조바심도 납니다.
저의 게으름과 인내의 부족이 당장 쓴 열매를 쏟아낼 거 같은 위기감에 괴롭네요.
(사실 현실을 외면했지 늘 사고친다는 걸 알고도 죄를 저질렀지요) .

사춘기... 그리고 그 뒤에 줄지어 서서 관찰하고 모방하는 동생들... --;;
떄를 놓치지 말고 마주 보아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좀더 어렵네요.
(어느 지인에게 전한 인사中)

시치다 마코토의 한 마디

육아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인생에서 거쳐야 할 가장 존엄한 일이라 생각해야 한다.
또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주인공으로 생각해
소중한 보물을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

 ---네~ 시치다샘, 그래야죠. 근데, 전 첫 맘이 대단했던 만큼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거 같아요.
     (사실 용머리가 되고 싶었지 용은 아니었을 거다.)

오늘의 돌발행동은 이 책에 꽂힌 거다.
사실 시치다의 <태내기억>이라는 책을 찾다가 멈추고 엉뚱하게
기본부터 다시 해야 할 내 형편을 생각하며
조금은 식상한 이 책을 좀더 들여다 보았다.   



<똑똑한 아이를 둔 부모들의 7가지 습관>
 
시치다 마코토 저, 김하경 역, 산호와 진주, 9000원 
--- 원제목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제목은 마케팅 전략이 농후해 좀 거부감이 든다.
      

+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내 아이 심리발달의 세 계절

마음의 계절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 시기는 과거 위인들의 말을 암기하여 읊기에 적합하다.『천자문』이나 『한시』, 『논어』 등의 고전을 외워 암송하게 한다. 그러면 그 명언들이 아이의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아이가 성인이된 후에도 그를 지탱해주는 학문이 된다. 이렇게 무의식의 정신세계로 파고든 한문의 깊은 뜻이 아이의 근본을 이루는 사상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계절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이 기간은 정신적인 여명기다. 전기나 소설을 읽기에 적합하다.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의 시기이며, 정신에 눈을 뜨는 때이기도 하다.

사회의 계절 중학교 3학년 이상에 해당
  인간이란 무엇인가,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계절이다. 이 시기에 만나는 훌륭한 스승은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나가는 시기다. - 보슬비


+현명한 부모의 습관
 - 만들어지는(?)  똑똑한 아이

1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라 그러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가 된다.
2 전기를 들려주고 기초학력부터 다져라 그러면 창의력 있는 아이가 된다.
3 사랑하라, 엄격하라 그리고 신뢰하라 그러면 참을성 있는 아이가 된다.
4 타고난 소질을 최대한 살려라 그러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된다.
5 가정의 질서를 재확인시키고 칭찬하라 그러면 예절을 아는 아이가 된다.
6 날마다 감동하라 그러면 성장하는 아이가 된다.
7 웃는 얼굴로 좋은 말을 하라 그러면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 - 보슬비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부모가 되기 위한 7가지 습관을 말해 주고 있다. 
자녀교육에 "성공"이라는 말과 "똑똑한" 아이라는 어휘의 선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느 해와 달리 개학을 맞이하는 이 엄마의 심정은
첫아이 입학하는 심정으로 착한 긴장감 모드를 회복하려는 거니까
수많은 자녀교육서에 원론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첨 듣는 것처럼 겸손히
그러나 미련하게 맹신하지는 않고 방법적으로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맘먹고 제대로 읽어내릴 책 하나 < 성경으로 아들키우기>

<성경으로 아들키우기>,최에스더 지음, 규장, 9000원

난 아직도 아들을 잘 모른다.
난 여전히 성경적으로 양육하기에 매우 서투르다.
그동안 삼형제 키우며 박사된 것은 나의 죄성이다.
그리고, 그 죄성을 더이상 묵상하거나 설파할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긴 내 본질을 새로운 피조물로 선언해 주셨으니 
이제는 그에 걸맞게 살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 지식이나 의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박약한 지도 알았으니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와 말씀에 힘입어 차근히 성실하게 해야 한다. 

난 원래 생긴대로라면 정말 아들키우기 힘든 사람이다.
아니, 결과적으로 보면 아들들에게 위험한 엄마이다. ㅜㅜ

몇해 전까지는
7살 전에 완결되는 또는 그 경계의 중요성에 대해
10살의 발화 위력에 대해서 기대도 하고 집중하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라는 위험천만한 경계가 
나를 오그라들게 한다.
예의 무력감이나 '내 코가 석자'는 찾을 새도 없게 느껴진다.

우리 아들들 아시는 몇몇 분들이 우리 아들들 귀하게 여기시고 아껴주시면서
"보물들"이라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다.
자신의 아이를 "내 보물"이라고 말하는 사랑 많은 친구를 보며 
그렇게 귀하게 내 아이를 끌어 안지 못하는 나를 비춰보고 괴로운 때도 있었다. 
왜 보물이 아니겠는가?
또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인생에서 거쳐야 할 가장 존엄한 일이라는 것을 어찌 모를까?

내 회심의 역사에 
성숙단계 레벨 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결혼후 최고로 호사스런 휴가 ^^ 은혜와 쉼이 공존한 "성서한국" 수련회 4박5일 마치고 ... 나만 좋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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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홍은mt 둘째날

2009.07.31 13:32 | Posted by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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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 잡는 도사, 승헌이. 형아가 보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눈물을 닦았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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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은혜의 분홍색 옷자락이 보이네요. 정헌이와 씩씩하게 윗쪽으로 물을 거슬러 갔는데...위험한 상황이 몇번이나 아슬아슬 했다는 ^^; 은혜야 홀랑 젖은 씩씩한 모습 남기지 못해 미안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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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너무 추워... 그만 옷갈아 입을 거야" 계곡이 떠나가라 엄마를 불러대길래 갔더니 은헤보다 먼저 물에서 나왔네요. 하얀 고릴라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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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언니가 선볋하신 아주 맛난 고기를 무열,득형제가 특제로 구워 우릴 행복하게 함 ^^ 집게가 없어서 천연 젓가락 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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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방갈로~ 걸레질로 애써준 득형제 감사. 나조차 맛있게 고기를 씹어줌 " 딱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컨셉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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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즐겁게 해준 순한 똘이와 누렁이(개) 그리고 콩이와 알이(고양이) "엄마, 손 닦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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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기도실 책상에서 열씨미 그림을 그리네요. 무엇을 하든 열중하고 정성들이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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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은 자유시간, 대화중...

2009 홍은 mt 둘째날

2009.07.31 13:25 | Posted by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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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형제의 미션^^ 수행차 선발 하기전 기념비적 단체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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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는 현숙언니~ mt준비하시고 우리 먹이시느라 무척 피곤해 하셨는데 햇살 제대로 받으셨네요. 이후, 언니는 충전하러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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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불편한 잠자리로 허리가 많이 편찮으셨을 텐데... 설거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마... 1년치 설거지 다 하신 거 송구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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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오만가지, 부지런쟁이 무열형제, 특별한 곳에 우릴 데려가 줘서 게속 빈틈없이 섬겨줘서 고마워요. 홍은의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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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참 좋았어요. 물고기 잡느라 한중맘... "여보~ 한번만 더 쳐다 보삼!" 3장중 고른 사진^^; 그날, 우리 목자 부부는 귀한 섬김으로 많이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 홍은 가정교회 1박 mt ^^

2009.07.27 22:19 | Posted by 허니즈맘

얼마만의 "박"엠티인가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요.
여러 가지 여건상 -- 사실 어린 자녀가 많은 여자 목자의 몸사림으로 ---
자고 오는 엠티가 쉽지 않았는데

공사다망했던 함께 해온 세월 속에 만 7년이 훌쩍 지나고
홍은 (자고 노는)엠티는 네번 째네요.

혹 제가 추억을 잘못 헤아렸다면 정정 좀 해 주세요^^;;  
이번의 엠티에 새 얼굴 둘 ---  박무열 형제와 이득 형제.
놀라운 남초현상^^  

현진자매가 못 가는 아쉬운 맘에 교회에서 떠날 때 저녁이라도 함께 하려고
짧은 거리지만 긴 시간을 헤치고 (교통체증) 와서 배웅해 주었지요.

조금이라도 함께 하겠다고 같이 타고 가다가 엉뚱한 곳에서 내려
학교로 다시 연구하러 가는 눈물겨운 장면 연출하고요 ^^;;


동규형제도 같이 못 간 안타까움에 겨워 " mt 사진 없나요?" 궁금해 해주니
찍사였던 제가 분발하여 이렇게 보고를 남깁니다.

근데, 사진 찍는 거 좋아는 하는데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찍지는 않아서 몇장 없네요.
애들 사진이 적어서 아이들이 소외된 mt 티가 나네요. 
---아, 제가 애들 신경을 잘 못썼다는 말이죠 ^^;;

일시 :  7월 24일 18시 ~ 25일
장소 :  개척자들 (그 개척자들 맞고요 ^^) 의 쉼터이자 본부  "감사할 따름입니다"
     --- 경기도 양평 국수리 "엄마, 우리 여기서 국수 먹고 가요~"  (정헌 왈 ^^ )

특별하고 귀한 장소에서 함께한 소중한 홍은 가족들 :
이대선집사님, 현숙언니, 무열형제, 가일자매, 득형제, 조.박 목자
승헌이, 은혜, 정헌이 (귀헌이는 초등부 수련회 참가중)   10명  


가일자매에게 저녁 프로그램을 부탁했는데 ^^
우리 가교 역사상 가장 타이트하면서도 주어진 시간 안에 골고루 나누고
깊이 공감할 수 있음을
경험한  시간이었어요..
서로를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있지요.
우리 구성원들이 워낙 P성향들이라 ^^;; 가교모임시간이 좀 늘 아쉽잖아요?!  

1. 내 인생에 최고의 성공이라고 기억되는 경험
2.   ..                    실패
3.   ..          행복했던 시간
4. 내게 아무 제한 없이 1년의 시간이 마지막으로 주어진다면 아떻게 살고 싶은가?

...... 함께한 세월동안 두터워진 관계 덕일까 성령께서 그 세월을 기뻐하게 하시더군요.
물론 새 식구들을 보내 주신 것에도 감사하구요.
이제까지 우리 한사람마다 그 인생을 이끄시고 소망을 붙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주시는 은혜로 서로를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2층 기도실에서 찬양과 삶의 나눔 그리고 예비하신 중보기도와 축복의 시간을...ㅠㅠ


낭만스런 무열형제의 촛불조명~

가일자매의 인도로 우리 인생을 돌아보아 열어보이고 들여다보고 ...

나의 달콤했던 시절

2009.06.12 20:25 | Posted by 허니즈맘
오늘 아주 오랫만에 예전에 듣던 영화음악을 들었다.
늘 몽상에 차 있던 행복한 소녀시절이 떠 올라 눈물이 나려고 했다.
정말 몽상이었지만 참 재미있고 행복했었다.

중고시절, 밤새고 음악 정말 많이 듣고, 눕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머리로 소설 수백 권은 썼다^^;;
그땐 여러 가지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기분은 아주 냉소적이고 자학적인 글로 해소를 하곤 했다. 그리고,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내 머릿 속에 영화 한편 뚝딱 지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기가막히게 달콤했던지...^^;; 밤을 새고 학교를 가도 피곤치 않았다.

20대 넘어 오면서 팝 영화음악 클래식 제목파일이 머리 속에서 완전 삭제되다시피 했다. 나의 20대는 가만히 앉아서 내게 다가오는 이들만 만나지 않고 제법 많은 관계들로 바빴다. 그리고, 상상해 보지 못한 행복한 일상이 있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 선후배가 참 다양하지만 착하고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혼자의 몰입도 내용이 바뀌었고 말이다.

음악을 여전히 좋아했지만 중독 수준이었던 10대 때와는 달랐고
제목을 기억할 수 없으니 찾아 듣기도 번거로워 멀어지고
애셋 낳고 나의 음악 목록은 완전 백지가 되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그 음악들을 들으면
그 오래 전 지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듯 이렇게 흥분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아마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나를 설레이게 할 거 같다.
그의 음악은 슬프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100% 감성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엣날 친구들은 나를 "빨간머리 앤"이라고 여긴다.

찬사일까, 놀리는 걸까?  --;;

나의 과거지사는 그렇게 "행복" 만끽으로 미화되어 있다.
그래서, 자아도취에 대한 향수병이 심한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종아하던 음악을 그런 자세로 감상할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겠고... 말이다.
난 그 이후로는 날마다 새 노래를 내 영혼에서 울려나는 것을 소망하고
그 노래에 참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내 영혼의 노래가 약속된 것이지만 깨끗한 맘이어야 하는 것이라
내 삶이 그 노래로 참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

집 근처의 30년 이상 된 은행나무. 봄에 꽃보다 예쁜 새잎이 돋았을 때이다 2009.4.



내가 어른이 된 것이 이럴 때 다가온다.
참된 것은 수고해야 얻고, 때로는 눈물로 견뎌야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이제는 더이상 모른 척 할 수 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나의 지인님~ ^^
당신의 어린 시절 "몰입"의 매개체는 무엇이었나요?   
 
죄를 발견하다.
전에는 "죄"를 잘 몰랐다.
진짜 죄라는 것을 전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신앙입문하고도 시간이 좀 걸렸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외형적으로 꽤 잘 나가는(?) 신앙생활을 한 5년 하다가 그제사 나의 원죄를 마침내 깨닫고 울고불고하며 한 획을 그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거듭난 것을 비로서 인정하고 사실 일회적 사건처럼 또 그렇게 내 젊은 날은 적당히(?) 뜨겁고 부대낌 없이 편하게 성장가도인 거 같았다. "죄"라는 것과 강렬한 만남을 갖었지만 옛사람의 전유물로 그렇게 떠나 보내고 잊혀졌고 그후 쉽게 살았다.

죄를 묵상하다
육아 전에는 크게  힘겨운 스트레스가 없었다. 왜냐하면 할 수 있다면
그 상황을, 관계를 피하며 살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 내 맘이 편한 것을 누리며 기꺼이 할 것도 넘치니 굳이 심경이 괴로운 상황을(사람을) 정면으로 직면할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늘 합리화 했다.
육아는 자아도취에 살기 원하는 개인주의적인 내 본질적 죄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체력은 소진되고 전인격이 흔들렸다. 물론 도피는 커녕 외면도 할 수 없는 내 일상의 현장에서 자녀와의 관계 뿐 아니라 내 취향에 안 맞는 사람과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은 "죄"라는 것을 아주 현실적이고 자세하게 들여다 보게 했다.
자아도취에서 깨어나 착각을 가능케 하던 얄팍한 포장지를 벗고 자기부인을 해야하는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속이고 사는 것을 묵인해 주던 "죄"를 떠나 보내던 첫 발견 때는 "죄"에 대해 무심했고 오직 주님과의 관계에 몰입하며 행복했는데, 떡하니 내 곁에서 있는 "죄"는 마치 돌아온 애틋한 나쁜 옛애인처럼 나를 괴롭게도 하지만 예전에 알지 못했던 친밀함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자기부인"의 힘겨움에 지쳐있다가 엉뚱한 돌파구라도 찾던 마음이었는지 죄를 미화시켰다.  "죄"는 내가 "자아도취"에 빠져도 묵인해 줬는데 나를 편히 살게 해 주었는데... 심지어'그때가 좋았어' 하며 "죄"와 친밀감을 느낀다. 교감이 이루어진다.
분별력은 성령을 떠나는 나에게 안타까움으로 경고를 하고 옛 삶은 죄의 묵인 속에 평안했던게 아니라고 시한폭탄의 한계점까지 긍휼로 온유하심으로 예수님은 참고 기다려 주신 거라고 선하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진실하고 변치 않을 참 인생을 함께 누릴 착한 현재 애인을 보라고 정신차리라고 한다.    

은혜로 가는 통로
"자기부인"이 힘들어서 ...게으르고 편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성령의 일하심을 설득하려는 고집스런 나의 행태를 볼 때 가끔 정신나면 한심해서 또 잠시 넋을 놓는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예수님 믿고 교회 공동체에서 성장한지 20년 나는 예수님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내 죄성이 참 싫다.
그러면 단호하게 그것을 버리면 되는데 내 짧은 인내는 잘 안 되니까
그것을 모르고 살았으면 참 좋았겠는데 하며 유치하고 퇴보적인 생각도 가끔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시면 안되나요? 나 하나쯤...

사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아무리 잘난 재능이라도 객관적으로 존경 받을만한 인격이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는 확신이 있어도
그것이 성령안에서 거듭나는 과정이 없다면
주시는 은혜 앞에 거침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내 평범한 재능과 허접한 실력과 얄팍한 인품은...
오히려 받을 은혜가 더 할지도 모르는데 ...

나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누리기 위한 통로가 될 것이다.
죄가 큰 자 그 은혜도 클 것이다.
난 내 인생에 내 죄를 제대로 심각하게 깨달아 통회하는데 둔감했고 대의명분 속에 제 3자의 눈만 키워 온 거 같다. 내가 어릴 때 (20대)자신의 원죄를 세세하게 맞닥뜨렸다면 과연 지금 다시 이유식 달라고 떼 부리지는 않았을까? 아니 이유식도 단단한 식물도 다 안 먹겠다고 버티고 있는 나를 본다. 난 내 죄를 잘 몰랐고 죄를 좀 알 것 같으니 오히려 죄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
어쨌든 지나가야 할 통로에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지치고 있다.

죄 속에 빠져 헤엄치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전한 길이리라.
지름길이나 아무 영감없이 쉽게 가는 길은 은혜의 길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귀고 알아가고 있고 더욱 사랑하길 원하는 소원이 내 안에 있지만 고통과 괴로운 사연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본질이라는 진실에 대해서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많다.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철저히 의지하지 않고 기도에 게으르고
쉼을 얻는 방법이 무책임하고
몸이 힘든 수고와 자기를(시간, 정신 등) 희생하는데 인색한...  
시간을 관리하고 규모있고 균형있게 사는 것과 거리가 먼
그래서 위축되고 두려움과 불평이 강화되는 ...
결론적으로 여전히 원래 생긴대로 사는게 생존전략이 되어버린 현실...


어디를 바라보는가?
머리와 가슴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협력하는데 동의를 했다.
몸과 감성은 핑계거리가 넘 많다. 산만하다. 실속없이 바쁘다.
내가 잔다르크 형이란다.
소소한 일상에 요령이 없을 뿐 아니라 수고에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사실 잘 못하니까 재미가 없다. 자체의 의미가 나를 붙잡지 못하니 나도 죄책감이 심하다.) 공적이고 추상적인 것에는 에너지가 생기는데 일상이 급급하니 둘다 접고 대충 사는 꼴이라 자존감도 엉망이다.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내세우고 싶은 거 같다. 별로 그렇지 않다고 믿어 왔는데 주께서 주시는 훈련의 장에서 뼛속 깊이 나의 반항심과 유치한 고집을 느낀다.
내 무릎까지 죄의 물에 빠져 있다
여차하면 물을 바라보다가 때떄로 유혹받는대로 엎드려 헤엄칠 수도 있고 잠수도 좋다고 무아지경에 들어갈 형편이다.
죽음이 그렇게 아래에 있고
생명은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에 내가 걸어가야 할 수면 위로 충만하다.
진리는 생명이니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생명이다.
보이지 않지만 그 생명은 진리니까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고 앞을 내다 보아야 한다.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더구나, 낯선 여행이다.
이제까지는 내가 바라고 선택한 인간적인 배경이 선명한 여행지를 가 보았는데 안전했다.
그래서, 본능적인 걱정은 없다. 다만 낯선 것에 긴장되는 것이 나혼자가 아니니까 매우 무겁다. 차라리 싱글이었으면 하지만 외로움의 처절함을 모르는 나로서는 가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경솔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선물 패키지 여행은 내게 맞춤일 텐데  내게 바라시는 분량의 성장을 내가 기꺼워 하지 않으니 내 신앙의 단계에서 어떤 훈계를 하실지 좀 두렵기도 하다.
   
걷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방콕족이다. 운동을 별로 즐기질 않는다. 뛰어 다닐 일은 없고 바쁘면 씩씩하게 걷는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성경을 통해 주께서 주시는 부르심은 "전력질주"이다. 내게 주시는 성장의 스타일을 바꾸길 원하시는 메세지 같다. 내가 경험한 "전력질주"는 매우 적극적이고 치열하고 승리를 향한 강한 집념이다. 완전 내가 아는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장 모형은 그럴 수 밖에 없지만 혹 내가 그리는 이미지나 자세에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좀 많이 긴장한다.
감당하기 벅찬 정도가 아니라 숨이 막혀서 순종의 문제로 돌입한다.
그래서 망연해서 질주는 커녕 가만히 서서 넋을 놓기도 하고 다리 아프면 주저 앉고 앉으니 눕고 싶고 그렇게 죄에 젖어 살아 보았다.
'풍삶기 인도자반'과 '파파기도'를 두고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도가 참 급했지만 긴급한 만큼 오히려 풍..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영적 상태가 기도 시간에 오픈하는 것이 꺼려져서 피하고도 싶었다.
풍...은 강의를 듣고 체켕 역할 하면 된다고 했다. 근데, 조장이라니 "헉.."했지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누구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보호하실 줄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를 다시 걷게 하시고 달리게 하실 것을 기대한다.    


혼자 있는가 함께 있는가?
지난 몇 달간 내 안에 기쁨이 메말라서 목말라 죽을 뻔 했다.(우울증)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교 중 김목사님이 전하셨다. 그 한 줄을 내 머리 명령체계 꼭대기에 적어놓고 전환점 삼으려고 애썼다. 내 영적 상태가 안 좋아서 사랑을 못한 건지 사랑을 애쓰지 않아 영이 다운 되었던 건지  중요하지 않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응급처치였다. 사랑하지 못하는 변하지 않는 내가 지겨웠고 더 사랑받고 싶은 조바심에 두려워 사랑을 버리고 싶은 위기의 내가 너무 초라하고 서러웠다.
우리 공동체 안에 내 남편 말고 나는 누구랑 얼마나 깊게 소통하고 사랑으로 돕는 관계인가? ... 없지 않다. 다만, 내가 힘들 때 홀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고 방어적인 경계선이 분명하다. 또는 넘 사랑하고 아끼다 보니 배려하다가 내 짐을 주기가 싫어 망설이다 물러선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인거 같다. 누군가 나와 소통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 거리를 엄격히 준수해 주길 바라고 살아 온 거 같다. 존중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주의 사수... 홀로있기의 존중을 남발할 때가 있다.

설교중에 여러 번 말씀 하셨다. 내 주변에 가까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 인류를 품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주신 그들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다.
꼽자면 또 넘 여러 명이다. 행복한 미안함이다. 그런데,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주님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 할만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충해야 하나?  난 늘 에너지가 시간이 부족하다...
가교 가족들, 도서관 팀원들, 그리고 더욱 뒷전되기 쉬운 집가족들. 

 
무엇을 따라 어떻게 가고 있나?
나는 아직도 내 것을 주장한다.
내 시간, 내 취향, 내 소견, 내 그릇...
세월이 가면 좀더 너그러워지고 지혜와 용기가 더해지면 좋겠는데 거저 되지 않는다.
말씀의 강권은 늘 신실하시고 따라야 마땅한데 자기부인에는 이력이 붙지 않는 것 같다.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겸허하지 않으면 그 단순하고 마땅한 말씀이 한 없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방법이나 걸리는 시간이 좀 빠르고 지혜롭다고 한다. 이번에 넘어짐은 전치 3개월 짜리 였다.
꽤 큰 사고였다.
난 "죄"랑 바람을 핀거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내 남편이 힘겹게 부르심에 전력질주할 때 나는 부적절한(!) 배우자의 모습이었다.
"죄"는 자기랑 사귀고 질척해 지는게 얼마나 쉽고 또 중독성 있는지 숨기지 않는다. 내 지각은 그리 둔하지 않다. 다만 내 유약한 속사람의 감성이 현실의 모험을 등지고 도피처를 찾기에 못이기는 척 고꾸라지는 것이다. "죄"는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멀리 떠나지도 떠나 보낼 수도 없다. 내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언제나 대기 중이다.
'바람피는..'개념으로 다가왔으니 순결한 내 남편, 순결한 예수님을 생각하니 더이상은 정말 단호히 아니다. "죄"는 계속 나를 짝사랑하는 척 나를 기다리고 내 삶을 깨뜨리려고 내가 휘둘리길 기대하고 있다.
관계정리 주도권은 내게 있다. "쫑"

ㅎㅎ 내 맨토가 오래 전 내가 힘들어 울 때 위로해 주면서 살길을 알려 주었다. "십자가 말고는 해답이 없어~  십자가 내용 찬송가를 묵상하며 불러봐 기도가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붙잡게 된다~"

죄책감에 또 늘어져 있기는 예수님께 더욱 죄송하다. 화 많이 나셨을 텐데 담담히 나를 안고 가신다. 여행 가자고, 가던길 계속 걷자고...

난 오아시스 만나면 그 곳에 남겠다고 할 위인이다.
일행들에게 폐를 끼칠 돌발행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좀 조금은 더 성숙하게 나를 부인할 수 있길 노력하련다.
말씀을 떠나서는 나침반을 버리는 것이고
기도를 안 하면 지도를 짐짝 속에 두고 보지 않는 것이다.
예배는 고단한 여정 중 재충전이요
공동체의 교제는 생존을 위한 끼니이다

이 여행 중 이러한 생존 전략을 모르는 나그네를 만나면  
나는 즐거이 내 것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나침반과 지도를 보여 주고 사용방법도 가르쳐 줄 것이고
우리가 도착 할 곳의 소망과  꿈꾸게 하시는 분의 인격을 찬양하며
우리의 만남이 이 여행의 이유였다고 겸손하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도착지까지 고단한 여행을 하는 동안 서로 갖은 것을 나누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사랑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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