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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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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야고보서 "지혜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 1



예수원>에서 퍼온 풍경

야고보서 3장~5장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3:11,12)
악한 것에 속한 언행들의 특징도 같은 본질의 열매로 씨앗을 흩뿌린다. (3:14~16)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를 받지 않고 파종의 영향에 급하게 반응하게 되면 (대부분 감정이 앞서는)
오히려 처음 씨앗보다 더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를 낳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악한 것에 쉽게 반응하고
자신을 방어하려고 치졸하게 자기 것을 자랑하고
때로는 겸손한 척 자랑은 안 하지만 다른이를 폄하하여 스스로를 높힌다.
그렇게 양심에 꺼림을 외면하거나 인과응보라고 일축하며 스스로를 속인다.

나는 자녀와의 갈등상황에서는 늘 감정이 과다노출 되지만
그 밖에는 갈등 자체에 과민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화를 잘 안 내고 좋게좋게 넘어 가려고 조절하는 편이다.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는게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기도 할 거다.
그런데, 어쩌다 내 예민한 기질이 확 평정을 잃고 분개하는 상황이 생기면
속사포의 독설이 면면히 분석파워 최강으로 오르고
치사하게 육하원칙에 근거한 과거사를 들춰 대면서 나의 비난의 근거가 얼마나 선명한가
줄을 그으며 명백한 논리를 쏟는다.
대부분 그런 상황의 대상은 모호한 불특정 다수이거나 나말고도 다른이를 열받게 하는 공통분모를 들이댄 사람...등

그리고, 그렇게 피곤한 내용을 피곤한데도 들어주는 사람은
억울하게도 울 남편이다.
나는 간만에 마이크를 잡고 그 동안 다 못한 말수를 채우려는 듯 흥분하여 오버 프러스하며
방백을 한다. 사실 맞장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울 남편은 시끄러운 스피커 바로 앞에 앉아서 듣는다.
처음에는 공감하는 차원도 보이며 경청의 자세를 보이고 - -
시간이 지나면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지만 침묵과 함께 어항을 바라보고 - -;
몇일 후 내 뼈가 상하는 자조와  변함 없는 반복구조가 보이면
엄한 권면을 한다.  "이제 그만 하지?"
그 말이 좀 기분 나쁜 건 아무 맞장구도 필요 없고 혼자 떠들고 싶은 무아지경을 즐겼기 때문인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럽고
그 고약한 냉소를 들어서 영혼이 피곤했을 남편에게 넘 미안하고
첨에는 좀 야속해도 남편이 또 존경스럽다.

난 거룩한 의분에도 민감하지만
내 기질과 취향을 배경으로 객관적인 사실보다 과도하게 "이런 건 싫다"라고 반응하는 상황이 있다.
먼저 돌을 던진 건 내가 아니지만
가끔 나는 나도 몰랐던 돌이 가득한 바구니를 옆에 두고 마구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그 코 앞에는 안 던졌지만
결국 내 곁에 있던 내 남편과 내 자신이
돌이 떨어진 곳이 얕은 구정물통이라서 그 더러움을 온통 뒤집어 쓴 결과를 보게 된다. (3:1~12)

어쩌다 이렇게 해로운 폭풍이 지나고 나면 나는 영혼이 몹시 상한다. 몸이 아프기도 하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았기에 그 죄가 나를 상하게 한 것이다. (4:17)


나를 비겁함으로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며 (연단중인 사연으로) 용납하고
화평케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친절하고 온순한 언행으로
주께 드리듯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3:17)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사30:15)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때로는 이렇게 성령의 다스리심을 잊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선한 의지에 대해 '가증스럽다, 또 다른 위선이다'라고
자신의 편견으로 방어와 공격을 휘두른다.
매우 씁쓸하다.

열쇠는 '언제 멈추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3:13)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지혜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의 안정된 규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랜 세월 한 개인에게 주신 연단이 인내를 통하여 탁월한 성품과 선한 영향력을 끼칠만한 삶을 빚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완료"된 온전함은 없다.
다만, 그 훌륭한 지체는 동일한 혼란 가운데 속사람의 두 가지 마음의 다툼에 대해
얼마나 민첩하게(자연스러울정도로)  자신의 소욕를 내려 놓고 성령을 의지하느냐
거기에서 질적으로 성숙한 삶으로 구분이 보인다.(4:1~10)  

그리고, 참고 견디는 달인이 되어야 한다. (5:7~9)
이른비와 늦은비의 때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으니 그 은혜의 경험으로
주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마음을 지켜야 한다.
크신 사랑과 풍성한 긍휼로 우리를 만지시는 주님을 바라며
그 긍휼을 받은 자로서 내 안에서 그 긍휼이 흘러 가도록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않고 (맹세하지 말고) 참아야 하는 것이다.
참지 않으면 긍휼이 흘러 갈 수도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날 수도 없고
그곳에는 생명이 평안이 자랄 수 없게 된다. (5:10~12)


'지혜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
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갈 것이다.
이름하여, 피스메이커 또는 '화평케 하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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