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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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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8 라흐마니노프 '라일락'을 듣다가

라흐마니노프 '라일락'을 듣다가

2010. 6. 28. 12:54 | Posted by 허니즈맘
http://cafe.daum.net/tlffos1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직접 타이핑하려니까 넘 낯설다.
자주 안 쓰는 단어처럼 써 놓고는 내 발음이 맞았나 다시 확인까지 해 본다^^;;
오랫만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려고 음악카페에 들어갔다가
라흐마니노프에게 '라일락'이라는 곡이 있는 걸 첨 보고 흐뭇하게 듣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디가 라일락이어서 좋다고 한번 더 흐뭇해 하는 중이다. 

내 아이디는 라일락이다.
왜 그런 낯 간지러운 아이디를 택했는지...^^;;

어릴 때부터 라일락향기와 그 꽃 모양도 몰입해 보면서 무척 좋아했다.
내가 자란 집에는 꽃나무도 일년생 꽃도 많았다.
그리 넓지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 꽃이 지질 않았다.
그 집은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고 지금도 친정부모님이 사신다.
추억이 많고 집의 아늑함을 깊이 경험하고 살았다.
우리 가정사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을 지키신 부모님 덕이다. (감사하다)

여러 종류의 꽃을 보며 꽃모양과 향기를 맡으며 내맘에 가장 다정한 꽃은 라일락이었다.
집에 있는 라일락은 마루 창문 시야에서 벗어난 장독대 옆에 보라색과 흰색 꽃나무 두 그루이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피어나 은은하게 바람 타고 수줍게 자기 존재를 터치해 오는 라일락은 끝내 나를 집밖으로 불러내곤 했다. 일년에 몇번 가지 않는 장독대 계단에 올라
그 가지를 쥐고 
소박하게 피어난 꽃더미에 얼굴을 묻게 하고 그 자잘한 귀엽고 섬세한 우주를
시간도 잊고 관찰하게 했다.

때때로 가지를 꺾어 집안에 들이고 싶었는데 채 피지 않은 꽃망을들이 안타까워 차마 그러진 못했다. 그런데,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몇 가지를 잘라 탐스럽게 꽃병에 꽂아
놓으셔서 집안 구석구석까지 그 향기가 가득했다. 가족들을 위한 어머니의 라일락 개화 세리머니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고 그 이후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와 라일락의 매해 첫 만남은 해가 다진 한 밤중이었던 거 같다.
4월말이나 5월초의 바람은 쌀쌀하지도 않고 옷자락을 날려도 기분 좋은 그런 반가움인데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용히 걷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라일락 향기를 담은 바람 한자락을 느끼면
얼마나 설레이고 마음이 즐거웠는지 행복이 뭔지 알겠다 싶은 감동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눈을 뜰 때 "향기"라는 예쁜 말이 엄청난 파워를 지녔고 누구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소망하는 것이 평생의 과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향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좀 가벼운 듯 싶기도 했지만 
라일락 향기가  떠오르면서 인위적인 백화점 향수에 갇혀있던 "향기"라는 말이 매우 고상하고  새롭게 다가와서 평생의 '거룩한 부담'조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이루시리라 믿어지고 평안할 수 있었다. 

내가 내게 붙여준 아이디가 '라일락'인 것을 생각하면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닌 소망으로 간주하더라도 난 정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보인다.
그런데,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이 내 발목도 잡는 나이가 되어서 거울을 보면 헉~ 향기까지는 몰라도 좀 실망스럽다. ^^;; 맨날 애들에게 곱지 않은 인상을 쓰고 내가 바라지 않는 주파수가 발달되고 잡음이 심하고 신경에 거슬리는 소통을 자진하다보니 내 미간에 입가에 얼굴 근육에 사나운 긴장감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어쩌다 셀카를 찍을 때, 혼자 있다가 무심히 거울을 보았을 때, 아이들 야단치고 화장실 들어갔을  때, 누군가 찍어준 사진에서 낯선 모습을 보았을 때... 난 좀 심하게 실망한다.

난 욕심 많이(?)  안 부리는데 왜 더 순탄치 않을까?

왜 더 맘이 편하고 자유롭고 고상하고 평화로운 소통만으로 살 수 없는거지? 
바보같은 질문으로 내 남다른 욕심을 드러낸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이끄신 은혜의 역사가 없었다면 
그러한 나의 실망은 얼마나 깊은 절망과 좌절이었을까 아주 끔찍했을 것이다.
난 좀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많고 자기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 평생 영적 과제에 "자아도취" 그리고 "자기부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순탄한 성장기를 보낸 편인 내가 소박한 인생관을 갖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름의 자아도취에 빠져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함몰구덩이를 겨우 피해다니고 살았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시커면 구덩이를 직면하고서도 생명이 있는 길을 분명히 보게 되었고 그 좁은 길을 가는 것이 힘들어서 때때로 무기력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라일락 향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소망이 있는 내삶에 새 힘을 얻는다.

우리 동네에는 라일락나무가 거의 집집마다 있었다.
요즘은 옛날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건물, 가끔 다세대 건물 한켠에 좁은 땅에 심겨진 것을 본다.
라일락을 가로수로 심은 길이 있으면 어떨까 재미난 상상을 하다가 
라일락 향수를 하나 구해 볼까 문득문득 그 향기를 그리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외모나 이미지보다는 나의 영혼의 무게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 하는 그 사모함이 더 깊어지는 것이 간절함이 되어서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이 무엇인지 평생 알아가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한다고 절절히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향기는 내 생명이 어떤 생각과 소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라일락만큼 매력적인 색깔있는 향기는 아닐지라도 라일락처럼 소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삶이 되어서 반가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즐거운 손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009년 4월 친정집. 하얀 꽃나무가 라일락이고 그 뒤에 보라색 라일락이 하나 더 있다. 땅에 화분도 않은데 어둡게 나와 아쉽당^^; 부모님의 가정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는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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