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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내내 나들목 가정교회나눔터에서 그동안의 사진을 정리해서 보관하려고 블러그에 옮겨 담았다. 감회가 새롭고 심지어는 온라인과 먼 생활을 하던 탓에 첨 보는 사진도 있었다. 일부 사진은 비공개로 닫아두고 일부 우리 아이들 중심으로 한참 예뻤던 모습을 공개한다. 사랑으로 순간순간을 담아준 헤나의 맘과 손길에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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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내내 나들목 가정교회나눔터에서 그동안의 사진을 정리해서 보관하려고 블러그에 옮겨 담았다. 감회가 새롭고 심지어는 온라인과 먼 생활을 하던 탓에 첨 보는 사진도 있었다. 일부 사진은 비공개로 닫아두고 일부 우리 아이들 중심으로 한참 예뻤던 모습을 공개한다. 사랑으로 순간순간을 담아준 헤나의 맘과 손길에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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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방문했을 때 기도시간이었나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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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떠나기전 단체 샷~
현숙언니랑 은혜가 빠져서..먼가 허전하네요~~
사진 곧 올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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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 로버트 쉴러
절벽 가까이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다가 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눈물 많은
가슴 여리고
따뜻한 우리 승헌이
엄마의 주름살을 들여다보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꼭 내일이라도 생이별 할까
울컥 미어지는 심정을 주체치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울면 안되지요?”
뜬금없는 소리에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떨리는 음성은 어떻게 숨겼는데
긴장된 두 눈이 촉촉하고 발그레지고 있었다.
아무 물리적 자극이 없는데 ^^우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참아보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어쩌다 한번씩 경험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엄마에게 마음을 들이밀었다.
가끔 가르쳤다. 울어도 된다. 아파서 울 수도 있고 너무 화가 나거나 슬퍼도 울 수 있다.
다만 길게 울지는 말아라. ‘남자는 울면 안돼’ --- 너무 잔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 왔다.
승헌이는 오랜만에 내 품에 안겨 웃으면서 계속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주먹으로 훔쳐 내렸다.
“승헌아, 소리 내서 울어도 돼.”
정말 잠깐 엉엉 시원하게 울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가슴 아파 우는 아이가 애써 울음을 참는 것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어느새 터지는 울음을 참는 데 선수가 되어버린 걸까
삶이 고달프기가 일찍도 시작되었구나 자존심 강한 승헌이의 노력과 단련이 가상했다.
그리고 나서 10여분 뒤, 로봇 부속품 때문에 형아랑 다투다가 엉엉 서럽게 울었다.
어쩌다 승헌이가 울 때는 그렇게 ‘저 정도 울 일은 아닌데-----.’ 의아할 정도로 서러운 통곡이 한 자락 나온다.
쌓인 게 많은, 한 맺힌 사연이 쏟아지는 시간.
그 때마다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다 받아 주지 못하는 매정한 엄마.
그래도 내 속을 잘 읽어주고 날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날 위로하고 만져 주는 아이.
승헌이가 둘째라서 아래 위로 치어 안쓰러움이 많다는, 승헌이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여러 명이다.
그들은 승헌이를 더 많이 안아 주고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부탁한다(?)
양육이 쉬운 편이어서 잔소리 많이 안 하고 학습에 아직 신경을 못써주는 것이 미안한데
친구관계나 최근 관심사 등 세심한 주의를 못 기울이는 게 사실이다.
스스로 앞가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여섯 살이고, 내게서 분리시킨 건 벌써 네 살 때였다.
그러니 승헌이의 애정결핍은 소비욕구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 미안한 게 승헌이 뿐인가? (조 귀 헌 미안타)
그래도 승헌이의 서열상 그리고 타고난 기질상, 강점이 탁월한 점이 있으니
바로 이해심과 배려 그리고 동정심과 민첩한 친절, 세심한 수고 등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다리를 놓는 일꾼으로서 승헌이의 은사가 쓰일 데가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은 특별히 승헌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일찍이 깨달아
그 섬세한 감성으로 하나님께 반응하며 눈물로 찬양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품고 깨어진 세상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수고하고,
아픈 눈물 닦아주는 하나님의 손과 마음을 닮은 삶을 살길 꿈꿔 본다.
우리 승헌이에게 주신 이름대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웃으며 경주하는,
예수님을 기뻐하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드리길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히12:1)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 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12:2)
수연유진맘 [2006-09-04 11:48:42]
승헌이 눈물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의 눈물은 왜그리 엄마를 마음 깊이 부터 아프게 하는지... 울 유진이도 가끔씩 " 엄마 죽으면 안돼" 하며 슬픈눈을 할 때가 많은데.....
이런 아이들에게 몹쓸짓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소름돋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분명 그속에 저희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
꿈꾸는 헤나 [2006-09-05 08:56:52]
승헌이~ 말없이 있다가도 와락 달려와 안기는 귀염둥이!!
원래 둘째들이 성격이 좋아요!~~제가 둘째잖아요!!!ㅋㅋㅋㅋㅋ
승헌이가 여섯 살 때 이야기... 귀헌이도 그랬을 텐데 귀헌이에 대한 기억이 없네. 미안해라
엄마에 대한 그 애틋함과 사랑, 그리고 갑작스런 이별에 대한 불안함(그 때 즈음이면 '죽음'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또는 깊이 느껴지고 시간에 대해 (흐르는세월, 언젠가, 과거등 ) 막연하지만 예전보다 구체적으로 그 추상적인 개념이 지각되는 거 같다.
귀헌이와는 그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내가 그런 장면을 표현할 여건의 여지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모자간은 이 고생을 하고 있는것 같다. 소통의 부재, 의사소통의 나쁜 습관들의 악순환...
미안타.
정헌이는 이미 다섯 살때 부터 요즘까지 특히 잠들기 전이나 어마랑 가까이 붙어 있을 때, 내가 늙는 것에 대해, 자기가 아빠가 되면 엄마는 할머니기 되고 그 다음에는 어쩌나, 지금 할머니는 어떻게 되시나,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고 매우 감정적이다. 거의 영화를 찍는...ㅠㅠ 정말 정허니는 배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귀헌이 승헌이 정헌이 이렇게 무럭무럭 크고 있다.
<세아들 호성, 호준, 호윤> ---2008년 역시 세아들을 두게 된 두선자매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숲기도:
세아들 모두 그 평생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복을 누리고, 그것을 나누는 삶이 되게해주세요.
모태신앙으로 문화적이고 형식적인 기독교인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 끝없는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진
짜 기독교인으로 성장잫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무기도: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하셨는데 세아들이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평생의 든든한 친구가 되게 해주세요.
늘 곁에 좋은 스승과 친구들로 메꾸어 주셔서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지으실때 계획하셨던 꿈이 성취되길 바라고 , 각 아이들마다 본인에게서 특별한 하나님의
꿈을 감지해 나가길 바랍니다
--- 내용으로는 위의 내가 예전부터 하던 기도랑 상통하는데
표현의 차이가 있는 데에서 뭔가 더 풍성하고 따라 하고 싶어져서 옮겨 붙인다.
<예수원>에서 퍼온 풍경
시청 집회에서 한 절 배우다 (나들목 가교나눔 게시판에 올린 글)
글쓴이: 라일락(박혜성) : 날짜: 2008-07-05 14:18:41
집회를 다녀 오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집회 내내 집중하고 활짝 웃기도 잘하고
성가대에서도 누구 못지않게 볼륨업에 현기증나도록 최선을 다하고
아스팔트도 즐겁게 잘 걷고 (아침qt에서의 비장함은 내려 놓고)
위협과 위험이 별로 없는 ( 시간도 이르고, 미사 집회 덕으로 좀 누그러진) 현장에서,
오면서 급기도 부탁하려고 친구에게 전화 건 것이 무색한 분위기를 감사하며
어려움이 전혀 없엇지요.
그런데 집회내내 제 속에서 불편하게 꿈틀대던 불만과 포착한 거슬리던 것이 불평으로 간간히 툭툭 튀어 나오고
이틀내내 기회만 있으면 점점 강도 세게 비판같은 불평이 쏟아지더군요.
사실 말해 놓고도 별 소용없는 솔직한 심정, 누가 듣고 동조해 주길 원해서라기 보다
내 생각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 좀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다혈질은 아니지만 의외로 아주 고집스럽게 화를 내고
어떤 사실에 대해 '아니다' 싶으면 심하게 반응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남편 왈 "음, 앞으로 큰 일 하겠다~." 비웃는 건 아니고 ^^
기특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저를 진정시키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번 집회에서 또 하나의 "겸손"을 배웠어요.
저는 소시적 시위 현장에 두 번 정도 나가고 (사과탄 즉석흡입하고 지랄탄의 위협에 간단히 굴복)
지인을 돕기 위해 약간 위험한 곳에 한 번 가고
그 어지러운 시국에 별로 한 일이 없는 기독교인이었어요.
아마도 그 시절 울 남편을 만났으면 우리 사이에 높은 벽이 있어서 알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아주 소심하고 시대의 부름에 대해 책임을 자문하기에는 영적으로도 어렸지만
육적 한계가 너무 분명한 거였지요.
하지만, 심적으로나 지적으로는 많은 부분 공감하고 지지했었던 거 같아요.
그때 기도를 많이 했지요.
시국적 기도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런 위험한 현장과 억울한 양심적 사람들을 위해 악한 권력자들의 회개와 긍휼한 다스리심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에 대해
참 정의와 평화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긴 기도를 했지요.
잔인한 분노와 진실에 무지한 폭력... 그 증오의 끝이 가장 두려웠지요.
안전한 곳에서 기도만 노동 삼는 자의 한가로운 사색이라고
치부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의기소침해 하면서
용기있는 희생적인 인생에 늘 미안했지요.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오히려 내 편이라고 동조하는 운동권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비난도 적지 않앗어요.
내 눈의 들보는 당연하고, 악한 무리는 완전 제끼고......
지난 목요일, 집회에 참석하면서 그때의 불만---어쩌면 기대하는 자들에 대한 실망과 섭섭함---이
색깔도 퇴색 되지 않고 같은 레파토리로 분석이 되더군요.
더구나 기독교를 대표하는 현장이라고 다시 생각하니 난감하기도 하고
"싫다" 감정이 욱 하더군요.
내가 속아서 이 자리에 있나 싶기도 하고 유치하게 감정적으로 되는 상황 돌입
그러나, 성령께서 저를 타이르시고 가만 있어보라 하시니 급히 자신을 추스렸지요.
꼭 그 이유뿐일까 아니기도 하겠지만, 제가 '기장' (기독교장로회)분위기를 잘 모르느데
여러모로 거부감이 많았고 (...........................)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저를 삼킬 거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며( 저녁9시 귀가) 가득했던 생각들을 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쏟아놓자니
남편이 웃더군요. "실망 많았구나! 원래 그래~"
어느 집회고 집회측의 리더십은 기대 수준에 못 미치기 마련이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관과 기대수준을 갖고 있는데
그래도 핵심에 동의하기 때문에 여러 면에 있어 다른 색깔을 감수하고
한 목소리의 힘을 만드는데 가치를 두는 거라는 거지요.
그 생각을 못 한 건 아니었지만, 남편의 말을 들으니
나보다 더 여러 생각과 경험을 갖고 신앙적 견해로 상황을 대처하는 (실망도 많이 한)
선구자니 위로가 되더군요.
제가 얼마나 단단한 고정관념으로 기독교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일조를 하고 살았는지
여전히 나만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지
욕지거리 하며 다른 기독교인들을 폄하하는 무례한 기독교인들과 제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지요.
내가 옳다고 믿는 방법들이 본질 자체가 아니지만
상당히 본질을 건디는 것 같은 나와 다른 기독교인들의 방법에 분도 나면서
실상 그 분(화)이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의분을 방해한다는 것을 개달았어요.
그리고, "겸손"이란 이럴 때 발휘되어서
공의를 위해 내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아직 성장 중인 내 기독교 세계관을 맹신하지 않으며
성령께서 어떻게 이끄시는가 내 속에 질문이 있어야 하고
그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걸
선택은 가볍지 않고
듣는 마음은 겸허하고
순종은 용기있고 의지적이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정리 되었어요.
도대체 하나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는
지체 의식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섬김의 도를 말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덕이 되는 그리스도의 선물인가 때마다 감동하면서......
그 곳에서 왜 그렇게 낯설고 긴장되던지
아직 무지한 교파 간의 이질감, 뿌리깊은 갈등과 문제의식 등
현재 시국 앞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그러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가?
사실, 이번 시청 집회가 저는 촛불시위 시작후 처음 참가한 것이고
제가 기독교 집회에 기대한 것은
"부흥"에 갈급한 목마른 심령들이 현 시국을 규탄할 뿐 아니라
기독교의 통회과 각성이 뜨거운 기도집회가 되어서
대오각성이 불일듯 일어나길 성령의 불길이 덮어지길 바랬는데
"첫술에 배부르랴"였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시국에 이런 소망을 갖고 있지요.
하나 된다는 것에 대해서 좀더 유연한 생각을 갖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넘어
저의 기준이 좀더 겸손해 져야 한다는
때로는 손해도 볼 수 있다는 긍정적 포기에 동참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사회생활 제대로 안 해 보고
쉽고 편한 길로만 살아 왔고
교회의 안정된 울타리에서 성장한 저의 신앙이 보증수표 같았는데
어느새 목사의 아내가 되고, 공동체 안에서 리더의 자리에 서있는 제가
교회 밖도 나가 보고, 집 대문도 나서며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방콕' 스타일이라서 체질개선에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만 무엇이 가능하다고
그래야 좀더 완성도 높은 무엇이 되지 않을까 요지부동이던 제가
시행착오의 모험에 과연 의연할 수 있을지 불안하네요.
그러나, 이번의 깨달음
겸손히 나와 다른 무리와 자발적으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 하나 되는 것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한걸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기로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 들이는 열매입니다."
(약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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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이 있는 은혜 (나들목 가교나눔게시판에 올린 글)
글쓴이: 라일락(박혜성) 날짜: 2008-06-22 14:14:33
어제 우리 의 모임은 실로 감격이 충만했지요?
현숙언니의 인도로 진헁된 목자로서의 섬김이 시작되는 날이었답니다.
우리 한나는 가정교회에서 3번째 생일을 맞이했구요.
보고 싶던 현진이가 유부녀가 되어 신랑이랑 첫 참석을 했구요.
남산 가정교회를 섬기게 된 조목사님이 어떻게 함께 하게 되어
현숙언니가 한나 생일상이라고 풍성하게 차린 닭갈비에 춤추고
현숙언니의 첫 인도를 ( 찬양, 기도, 삶.... , 정석대로) 따르며 나누고 은혜받고
사랑스런 신혼부부에게 다 못한 덕담도 더해 주고 신랑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애틋한 우리 이쁜 한나 그 간의 성장을 추억하며 축복할 수 있어서
현숙 언니를 도와야 하는 목자로서 여유(?)있게 감격을 누렸답니다.
참, 내 생애 감격스런 것이 하나 더 추가 되는데 그것은 "감자" 입니다.
밥상에도 쪄서 올렸는데 그렇게 잘 생기고 맛 좋고 감동적인 감자가 또 있을까요?
2월에 멋지게 떠난 여름이네가 보낸 선물이에요.
문철형제가 학교에서 첫 수확한 감자를 한 박스 보냈어요.
그 하얀 얼굴이 구릿빛으로 변했을까?
예술하는 젊은 철학자 같던 진지한 모습이 그 밝고 장난끼 넘치던 소년의 모습이 그 좋은 땅과 아름답고 힘있게
어우러졌겠지요.
인터넷 깔고 좋은 것 중에 우리 여름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수영이의 다정한 글을 읽는게 길은 멀어도 '블러그맹'
이었던 제게 하나의 도전까지 주고 있습니다. 비장~~~~ (근데 댓글은 역쉬 아직 못해요.)
모임 전에 검정봉다리에 감자를 나눠 담으며
그리고 중보기도하며 눈물이 나는 건
마음 한켠이 뭉클뭉클 한 건
우리 각 사람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선한 역사 선에 있다는 감사와 감격 때문뿐 아니라,
그리움에 안쓰러움으로 목이 메이는 이름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제 함께 하지 못한
여름이네와 가일이를 포함한 일곱 명의 가족.
복잡한 거 유난히 힘들어 하고 바쁘고 몸으로 수고하는 거 무서워하는 게으른 족속인 제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결혼 전에 친정에서 명절 때나 추도예배 때나 경험하는 북적북적 식사모드를 해내야 하는 건
배운 바를 외면하고 좀 뛰어 넘고 싶은 김밥 한두 줄씩 먹고 하면 안 되나 딴 생각을 품게 하는 상황들이었지요.
그 동안 많이 간소화 되고 제 요리실력은 별 진전 없지만 현숙언니를 필두로 식사를 맛있게 당번제로 준비하시는
가족들에게 늘 고맙고 사실 기대도 하고 요구도 하고 좀 뻔뻔모드였지요.
은혜롭게도 제가 잘 못 해도 다들 잘 참는 또는 개의치 않는 모드로 개발되었을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그림을 그려 보겠지만 요즘 식사 풍경은 북적..은 아니에요.
그래도 상 두 개 모서리로 꽉 차지요. 두 번에 걸쳐 자리 넘겨 주며 식사하던 풍경은 아니고 애들이 한 자리씩 차지
하니까 자리가 남지는 않고.....^^
목사님이 남산 가정교회를 도우러 파송가셨고 현숙언니는 막 준비를 마쳤고 (사실 몇년째 코리더를 확실히 해 오
셨으니 그리 그 자리에서 인도하시는 건 낯설지는 않으실 거예요) 우리 가족이 중국에 가는 계획을 갖고 있을 때
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일의 됨을 정말 선하게 이끄셔서 우리가 협력하게 하신다는 걸 경험하네요.
아 서투른 자판실력으로 이렇게 길어지니 어깨는 아프고 이렇게 그만 쓸수도 없고 난감이란게 이거군요.
마무리를 거룩하게 지혜롭게 하겠습니다.
우리 서로 성령충만을 위해 계속 중보기도하고 격려합시다.
특별히
신생 목자, 유현숙 목자님이 사역을 일상 가운데 잘 감당 하 수 있도록 (그 고충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는 것들
다 맞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서있는 언니가 성령충망하여 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용기있게 그 은혜를 붙잡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멋진 삶을 살고 그 열매가 그 과정이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길
진정한 감사와 찬양이 주님의 사랑에 뿌리를 깊이 내리길 기도해 주세요.
은혜가 일찍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늘 은혜로 아름답고 진실하게 성장하길 축복해 주세요.
그리고,
이대선 집사님, 예담이와 김혜경 집사님
유가일과 아제르바이잔
심. 장. 원
장인태 형제, 신재경 자매, 수연이와 유진이
최문철 형제, 최수영 자매, 여름이
최현진 자매, 노 한 형제
김.한.나
조영권 목사님, 박혜성, 귀.승.정헌이
지금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그 깊은 사랑으로 우리 인생의 사연을 다루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앞날을 한 그림에 놓습니다.
바라기는 수영 자매가 홍성에 가서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준 안부메세제에서 읽혀지던
그 평안하고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시작이 선물처럼 우리 앞에 놓여지길 바랍니다.
치열한 수고와 땀방울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곘습니다.
오늘 우리의 한숨이 무겁고 영원할 듯 우리를 위축시키더라도
이 아픈 성장이 이끄심대로 인격적인 반응으로 성실하게 드러나서
장차 서로가 드리는 찬양의 화답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감격에 차 힘차게 부둥켜 안는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꿈꾸는 헤나 [2008-06-22 00:43:11]
3년동안 먹여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일락(박혜성) [2008-06-22 14:03:43]
함께 먹어서 즐겁고 한나의 존재는 내 삶의 축복이다.
은혜로하여*현숙 [2008-06-22 14:44:02]
긴 글 올리느라 힘드셨을 우리 혜성목자님 감사하게 잘 읽고 마음에 담아갑니다~ 실은즉, 제가 갈수록 응급상황에 대처를 잘해가는(능숙하게는 아니지만, 얼렁뚱땅 눈치는 파악되는^^) 나이값을 조금 하는지라, 감히 가정교회인도를 잘 준비하지못하고 권하시는대로 나갔는데, 제게 더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 은혜도 몇년에 한번 가정교회시간에 자는 역사적인 날이었죠^^ 그날밤 제 꿈속에서 못다한 인도를 계속 하면서....ㅋㅋㅋ.... 감사하구요. 우리 홍은가족들 참 많은데.....그 이름 하나하나 다들 애정어린 이름 불러보면서, 환한 얼굴로 다들 만나고 싶네요. 담주 조목사님 생일인데, 아~~~다 한자리에 모이면 얼매나 좋을까.......
문철 감자 넘 잘 먹을께~~
라일락(박혜성) [2008-06-22 21:19:44]
별 게 다 힘든 목자지요?^^ 댓글 달아 주니까 유치하지만 입이 귀에 걸리네요.ㅎㅎㅎ 어제 목사님 귀가마자 "내꺼 읽었어요?" "그래, 대단해 한 2시간 걸렸겠군! 수고햿어""2시간은 아니고 1시간은 넘게 걸렸을까?(뿌듯)" ---"근데 왜 댓글 안 달았어요? 조회수의 1/3은 내꺼야" "그게 쓰는 자의 悲哀지--::" 그간 본의 아니게 비애를 안겨 준 게 좀 미안해서 봐 주기로 하고 혹시라도 내게도 블러그라는게 신생된다면 ------ 참아 주는게 나으리라 봅니다. 몰 참느냐구요? 여러 가지요. 댓글 많이 달아 주세요 하던 초등생들이 생각나 웃음이 나네요.
재경 [2008-06-28 15:58:15]
그랬군요.. 언니가 인도하셨군요.. 함께 했음 참 좋았을 텐데... 아쉬운맘 가득.... 다들 많이들 보고싶네요.. 사모님.. .......................................................
Jubilee Letter9호(080702)
그리운 하늘가족 여러분께~
여름입니다
소식이 좀 늦었지요^^ 며칠 전 한국은 장마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신지요.
이곳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한낮에는 길에 다니기 힘들 정도입니다.
참고로, 7,8월의 바쿠는 강수량 ‘0’으로 나오네요^^ 워낙 건조합니다.
현지인들도 저녁 6시 이후 열기가 좀 식은 이후에나 동네 산책을 나오곤 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앞마당 겸 주차장에는 방학을 맞은 동네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공놀이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놉니다. 며칠 전에는 저도 끼어서 배구(?)를 한번 했는데,
쌩쌩하게 젊은 친구들과 친해지려면, 평소에 체력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던 에어로빅 수업도 여름을 맞아 학생들이 거의 오지 않고
땡볕 속을 걸어 센터에 가면 러시아인 선생님과 저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과외를 받는 기분입니다. 저도 7,8월은 집에서 운동할 길을 좀 찾아야겠습니다.
입맛도 별로 없고 낮에 책상에 앉으면 깜빡 졸기 쉬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처지기 쉬운 계절을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람찬 가을을 준비하면서요!^^
회의결과는 이렇게
지난번 바쿠대 학사회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팀원들과 현지인 동료들도 많이 신경쓰며 걱정한 회의였는데,
정말 주의 은혜로! 무난히 진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토록 완강하게 나오던 3개학과장 옥타이 교수가 며칠새 주장을 좀 완화해서
공식 강사 등록은 3명이 하고, 그 과목을 6명이 나눠서 가르칠 수 있도록 입장을 변경했더군요.
저와 장 선생님은, 한인팀리더분이 대사관을 통해 공문 보내는 것을 하루만 늦춰달라고 부탁드리고
회의 결과에 따라 입장을 다시 결정하자고 했는데, 회의가 잘 진행이 되어
서로 감정 상하거나 언성 높이는 일 없이 무난하게 진행이 됐습니다.
7월 중순이면 9월 학기 시간표가 확정되고, 강사 계약서도 작성하고
한국에서 주문한 교재가 도착하면 강의방법에 대한 회의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기도할 제목들은요
특별히 저는 배재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바쿠대 한국학과에서는 한국문학사과 국어학개론, 캘리그라피(한글 바르게 쓰기) 과목
커리큘럼과 교재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의 숙달이 필수적인데, 9월 중순까지 딱 6개월 산 언어 실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날 학생들에게도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교사로 잘 준비되도록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한국문학자료 등은 아제리어로 된 자료들을 구할 수가 없어서, 영어로 된 것을 번역하거나 러시아어 자료를 구해야 하는데,
적절한 자료 및 전문 인력이 잘 연결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에 더하여, 한국학과에 대한 재정지원요청을 위해(바쿠대에서는 강의실 외에 지원이 없으므로)
국제교류재단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해외학술지원이 가능한 단체를 찾아 교수직 설치에 따른 재정요청서류를,
사업추진자에 제 이름을 써서 작성해 보내는 역할을 받았는데, 사실상 이 일이 여러모로 제게 가장 부담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7월 말까지 필요한 서류들을 적절하고 정직하게 준비해서, 주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필요한 재정들을 공급받을 길이 열리도록,
제가 지레 지쳐서 일을 외면하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제르 안디옥 모임에서는
며칠 전 샤밀과 엘빈이라는 두 형제가 며칠 전 군대를 갔습니다. 샤밀은 한국어를 배우러 아카데미에 찾아왔다가
몇 년 전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장해 가던 형제이고, 앨빈은 전도를 받아 모임에 참석했지만 사람들과 축구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찾는이'입니다.
이 두 형제를 잘 환송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모임에서 처음으로 '말씀통독수련회'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지난 주 토요일(6/28)에 있었는데요.
1박2일로 지방에 가려고 여러 군데 장소를 알아봤는데, 여기는 수련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ㅠ.ㅠ
아카데미에서 몇 시간동안 사도행전을 아제리어로 한 목소리로 통독했습니다. 저야 뭐, 한두 단어로 전체 문맥을 짐작하는 정도였습니다만,
그래도 말씀은 말씀인지라,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신 성령님을 기다리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두 형제가 1년 후 제대할 때는 더욱 심령이 주님 안에서 강건해 있길 기도합니다.
2인칭으로 찬양하기
한 달에 한 번씩 나들목교회에서 보내주시는 예배실황CD를 기쁨으로 듣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틀어놓고 딴 일을 하기도 하는데, 공동체가 함께 성령님을 구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찬양하는 소리에,
그리고 불 같은 설교 말씀에 저도 함께 기도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소리내어 예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할 때 홀로 있을 때 예배자로 살 수 있도록 깨어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 아제리어 찬양 몇 마디가 계속 입속을 맴돌았는데, 그 가사는 아주 단순합니다.
"주님께 갑니다. 감사하며, 행하신 일 크고 놀랍네, 주의 사랑 강하다(X2)
높으신 주, 아름답고 높은 분, 세상 어느 무엇과 비교할 수가 없네"
한국어로 번역해 놓으면 그 맛이 안 사는데, 아제리어로는 이 노래의 모든 주어와 대상이 '당신(Sən)'입니다.
즉 '제가 지금 당신께 갑니다. 당신이 행하신 모든 기적들이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은 강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높으신지요, 아름답고 높으십니다! 당신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분을 바라보며 '지성소에서' 발할 수 있는 찬탄이자 고백이다 싶습니다.
저와 모든 동역자님들의 삶 속에서 아버지 앞에서 2인칭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두어 달 전쯤 봉선화 씨앗을 얻어 화분에 심었습니다. 어느덧 자라 꽃이 피었는데
보시다시피 색깔이 빨강, 자주, 주황, 분홍으로 모두 다릅니다. 놀라워라!
우리의 모습도 이처럼 색깔이 다르지만 모두 아름답고 생명력 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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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재정보고(6/1~6/30)
총수입: 821M(1066$)
후원금 681M, 배재대 81M, 잡수입 59M
총지출: 820M(1065$)
갚기(항공료, 4월 생활비) 413M
언어공부 120M
식비 100M
생활비 113M
헌금 74M
설교 : ‘고통’ / 김형국 목사님 (롬5:3-4, 롬5:1-2 )
< 예배 기도 >
하나님, 평안을 주시고 새 생명과 온전한 사랑이 되어 주심을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때문에 끊어졌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안에 참 평안을 주실 수 있고
우리가 그 평안을 제대로 누리고 나누고 전하길 원하시는 걸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평화를 춤추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 삶에 살아있는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고
예수님께서도 고통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화를 추구하지만,
좌절 가운데 고통당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고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아들이신 모습에서 자기 인생이 새롭게 조명되길 원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
말씀을 따라서 지혜를 얻고 기도하며 용기를 갖고 살기 원합니다.
고통 가운데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평화를 누리며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고통은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소망이 있기에 오히려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당하셨고 또 그 고통을 주는 세상을 십자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 능력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우리 삶에 가장 가치있는 자랑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 특별히 몸이 아프고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
주님의 치유의 손길로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영혼을 지키시고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삶이 드리는 예배가 되길 바라며 재물과 마음도 드립니다.
작정하여 드리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하게 쓰여지도록
우리 공동체에 분별의 지혜를 더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나들목교회가 깨어진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다리를 놓는 화평케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