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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차 한잔에 그리운 쉼을 누리고 잠시 쉼에서 얻는 자유와 감사의 힘으로 peacemaker의 꿈을 꺼내 봅니다. 여전히 뒤죽박죽 작은 일들에 쫓기며 정신 없지만 내 안에 심어 주신 기쁨들 누리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 한 잔 추가~.^^
허니즈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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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에 해당되는 글 2

  1. 2010.12.17 지금 사는 모습 괜찮나요? (2)
  2. 2010.12.16 이승호 어르신께

지금 사는 모습 괜찮나요?

2010.12.17 23:54 | Posted by 허니즈맘
난 아직도 내가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꿈같을 때가 있다.
이런 내가 정말 신기하다.
머리 속에 형이상학적인 것만 가득하고
뒤돌면 보이는 어지러진 살림과 쌓여있는 아이들의 소품들 속에서
난 아직도 내 자리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지리한 줄다리기가 언제 마침표를 찍을까...
내가 블러그를 쓰고 까페에 가서 열심히 진지한 댓글로
정성스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현실부적응의 모습일까
아니면 현실을 살아가는 생존법일까
그게 그 말일 거 같다.

좀더 명료하게 그리고 화끈하게 바뀌어서 내가 살림에 올인하면
몸은 많이 고단해도 단순한 삶이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몸은 고단해도 내가 좋아 하는 것으로 흥청거리니까 정신은 자유로운데
뒤돌아 보면 널부러진 현실의 기다림이 정신적 유희와 넘 간극이 크다.
가시적인 나의 일상은 머리를 쓰지 말고 그저 단순하게 일하면 된다.
물론 사랑으로 기쁨으로 밭을 갈듯이 추수를 기대하며...

난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한다.
나의 성장은 다만 하고 싶은 것이 바뀌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이 달라진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저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불안하다.
걱정이 늘어지진 않고 혼란도 별로 없지만
내 맘이 편하고 좋은 것이 좀 미안하고 불편하다.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잘 안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과 단절되어 있다.

그 상태로 비추면 난 집 나간 자식 같다.
그런 내가 애셋을 거느리고 있다.(아니 애들이 날 세워주고 있다)
남편은 당신이 알아서 하리라 믿어...하고 옆에서 자기 할 일 열심히 한다.
그래서, 고맙기도 한데 미안하다. 

2010.10.27.승헌이가 차려준 생일. 찍사도 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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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어르신께

2010.12.16 21:25 | Posted by 허니즈맘

나들목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주신 이승호어르신께서 갑자기 오늘 저녁 소천하셨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ㅜㅜ
갑자기 맹추위가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부고 소식이 들리는데...
지난 주일, 늘 앉으시는 자리에 두분이 안 계실길래 주초에 꼭 전화문안드려야지 했는데...
이 정신없는 내가 까맣게 잊었다.
정말 너무 죄송하다.
인사드리러 간 게 몇주 전인가, 한달 전인가..
여전히 안색이 좋아 보이셨는데...
권사님 말씀은 이제 영 안 좋으시다고 하셔서
전혀 그렇게 안보이신다고 한주 기운 다 아끼셨다가 오시는가 봅니다
참 건강해 보이신다고 철없는 소리 했는데....
많이 죄송하다.

벌써 몇년 전, 어르신께서 내게 묵직하게 출력한 원고를 주시며 
손자가 크는걸 보고 쓰신 육아일기라고 읽어보라고 선물로 주셨다.
뒤늦게 드린 감사편지를 다시 올려 본다.

"이승호 어르신,
만 3년 동안 위암선고 후 수술없이 기적같이 살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 은혜로 감사드리고,
말없이 견디신 고통 중에 주일예배를 함께 해 주신 그 진정과 정성에
하늘가족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고통없는 하나님의 집, 어르신의 본향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승호 어르신, 부인 되시는 천필순 권사님.  나들목 가.교 나눔터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하늘천사님 올리심,    2008. 7.  이화 가정교회)



이승호 어르신께

안녕하세요? 조영권 목사의 처되는 박혜성입니다. (꾸벅)
보내 주신 귀한 선물 받고 변변한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해 지난 이주 동안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주일 1부 예배 마치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2층 멀찌감치 자리한 데에다 굼떠서 두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막내가 찬양까지 드리고 유치부를 가는데 요즘은 좀 목소리를 키우고 장난을 쳐서 2층 뒤로 갑니다. 어른 예배 분위기를 사모하고 여러분과 인사 하는 걸 유난히 즐거워해서 위의 형들과 달리 특혜를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늘 앉으시는 곳에서 곧은 모습으로 말씀을 경청하시는 두 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고요...... 예년과 달리 5월치고는 상당히 바람이 차가워서 감기나 건강에 어려움이 더하시지는 않나 짧은 걱정도 했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늘 만면에 함박웃음 가득하신 다정함과 여운이 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자상함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냥 든든함과 친밀함으로 지원해 주시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좀더 자주 가까이 가서 뵙고 안부를 여쭙고 해야 하는데 하는 일 없이 분주한 젊은이의 변명만 앞서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분을 처음 뵌 지도 좀 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부터니까요. 소망관 1층 좁은 복도에서 어르신을 자주 뵈었고 어쩐지 좀 낯설어 불편하신 듯 보이셨지만 (나중에 김목사님 외삼촌이시라는 걸 알았어요) 꾸준히 은혜의 자리를 지키시는 특별한 분들로 인상에 남았고 저의 인사를 늘 반갑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림에 와서는 권사님께서 봉사하신 밥도 많이 먹었지요.(정말 수고가 많으셨지요)      

어르신께선 참 건장한 체격이시고 밝은 인상이신지라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대로시네~’ 싶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천권사님과 이권사님께서 “그래도 통증이 없는 편이니 참 놀랍고 감사하고 다른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심신이 편하실 거야” 말씀하시니 저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통증이 있다니까 맘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썰렁한 대강당 한기 들이치는 1층 그 쪽 자리가 좀 염려스러웠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예배 드리시는 모습은 여전히 힘있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짧은 걱정과 분주함으로 수선 떠는 제 자신을 무색하게 하시고 저에게 격려가 되어 주셨지요.

 “내가 세 아이들을 위해 줄 글이 있는데......” 뜻밖의 말씀에 한자로 뜻깊은 시를 써 주시려나 감사하면서 약간 긴장도 되었지요.(못 읽으면 어쩌나^^) 이제껏 어르신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은 모르지만 한시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서요. 예전에 <도시락>에 기고하신 걸 기억합니다. 
 
2주 전, 저녁이 다 되어서야 교회를 나서는데 남편이 건네준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저는 시댁에 가는 동안 내내 주신 ‘선물’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첫 손주에 대한 할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순수하고 애틋한--에미애비가 흉내도 낼 수 없고 아주 오랜 훗날에야 가능할--사랑이 옥구슬처럼 정성스럽게 그리고 성실로 한결같이 꿰어져서 몇 해동안의 시간이지만 어떻게 처음처럼 계속 그러셨을까~그 마음과 특별한 손길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의 시부모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도도 특별하지만 첫 손주가 아니고 어릴 땐 지금보다야 자주 뵈었지만 아이들의 양육을 가까이 보시지는 못하셨고 목회가 늘 우선이셨기에 저는 가까이 사시는 친정 부모님의 외손주 사랑을 익히 보고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큰 아이는 외가에서 나고 제가 좀 부족해서 친정 어머니의 손길로 크다시피 했습니다. 아이를 셋 낳았지만, 말 그대로 그 사실이 벼슬처럼 저를 유하게 보이게 하는데 사실 모유수유만 잘 했지 살림도 아이 건사도 여직 잘 못 합니다. 어미가 머리 속만 뭐가 가득하지 몸이 민첩하지 못해 아이들이 고생이고 더불어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지요.
아이 셋 양육도 사실 친정 부모님께서 가까이 계셔서 함께 고생해 주신 것이고요. 제 친정 아버지의 손주 사랑도 참 특별하셔서 자랑스럽고 존경합니다. 큰 아이가 몇 개월 차이로 손주로는 둘째이지만 외조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지지는 아이에게 참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우 둘 보는 동안 제가 상처를 많이 주었지요. 
 
시간이 지나가니 아이들이 크고 이제 좀 낫냐(몸고생)는 질문을 들으면 물론 매작년보다 낫다고 하는데 둘째가 입학하고 큰 아이랑 제가 서로 모나게 닮은 꼴이라 심신의 고단함은 만만해질 기미가 없는 형편이라서 제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언제나 적신호가 옵니다.

 <세 아이들을 위한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어르신께서 그 글 쓰실 때는 아직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으셨을 때 같은데
아마도 그 이유는 어르신의 가슴에 사랑이 많고 선함이 남들보다 더 풍성하셨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정곤이의 일상이 조부님의 희노애락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권사님의 한 말씀으로 정곤이의 일상을 대변하시고 두 분 삶의 생기발랄한 주인공으로 정곤이를 세우신 것도 이미 품고 계신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어르신의 생이별한 조카에 대한 이야기에 젖어 있는 그  진실하고 수십 년 후에도 생생한 애틋한 사랑은 저를 울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예수님을 믿기전후 다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 안에 사랑이 부족함에 당황 절망하고, 희생없는 사랑의 부질없음에 아연해 하고 비로소 저의 죄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큰 고생 없이, 어려움은 피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제 속은 어리고 이기적이고 부실하기 그지없는데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여서 쉽게 살아 왔던 겁니다.  
요즘도 저는, 사모로서 공동체에 대한 영적 부담감과 거룩한 사명으로 불타기 보다 집에서 아이 셋과 고군분투하며 성령에 의지 못하는, 자기부인을 제대로 못하는 저와 싸우며 고단해 하고 있습니다. 사모로서 의연하고 일꾼으로서 승승장구하는 힘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는 못할망정 궁상스런 소리나 하고 있지요? 
공동체에 대한 영적 부담은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다루시는 연단은 자녀양육에서 가장 뚜렷하고 집중적이고 영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고, 최첨단의 맞춤 자녀양육을 한다손 치더라도 인격적 반응과 끝없는 인내와 희생 없이는 자녀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걸 통해 저도 자라고 저를 통해 공동체가 영향을 받고......

사랑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야 온전함을 입고,
그 온전함을 따를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고           
그 은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순종할 때만 누려진다는 것입니다. 

어르신!  자녀에 대한 아니 그 보다 더한 손자에 대한 사랑을 어느 조부보다 깊이 누려 보셨으니 감히 짐작컨대 아마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그 공의와 사랑 긍휼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정곤이와 지원이도 벌써 중고생이 되었겠네요.
어릴 때 체격도 좋고 총명하고 활달했던 정곤이가 키는 조부님만큼 컸을까요?
 
저희 아이들도 그렇게 훌쩍 커 버리겠죠?  순식간인 듯 싶지만 엄마의 지극한 따뜻한 사랑과 현실적인 시간을 먹고 자라겠지요? 
헌이(獻) 삼형제에게 주시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저희 부부를 귀하게 여겨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에 나누어 주신 축복과 지혜처럼
자손들에게 믿음의 유업을 전해 주시는데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가족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소망 가득한 기도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는 삶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분의 삶이 영육이 더욱 강건하시고

사랑과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그 비밀한 축복,
평안을 가득하게 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2008. 5. 18
                         조영권 목사의 아내, 귀승정헌의 엄마, 박혜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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